남정욱 객원 칼럼니스트
남정욱 객원 칼럼니스트

기원전 494년 로마에서는 아주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다. 시민들이 총파업을 벌인 것이다. 로마는 외부의 침입이 없을 때는 대부분 내전 상태였다. 귀족과 평민이 항상 각을 세우고 대립했다. 그러나 이렇게 노골적인 총파업은 처음이었다. 당시 로마의 머리 위에는 상습적 위협인 에트루리라가 있었고 등 쪽에는 삼니움 그리고 주변 산지에는 아이퀴인들과 볼스키인들이 틈만 나면 로마를 집적거렸다. 전투를 마치고 돌아오던 로마의 병사들은 자기들의 개혁 조건을 원로원이 무시했다는 소식을 듣고 집으로 가는 대신 아니오 강에서 5킬로미터 떨어진 몬스 사케르로 몰려갔다. 그들은 자기들이 없으면 로마가 어떤 전투도 치를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병사들에 이어 그들의 가족들도 대열에 합류했다. 원로원은 난리가 났다. 결국 아그리파라는 원로원 귀족이 이들을 설득하기 위해 몬스 사케르로 달려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로마의 호민관 제도다. 대가 센 로마의 평민들은 이렇게 실력으로 그들의 요구를 관찰시켰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기업에 대한 악랄한 조치들을 보고 있자면 이분들도 한번쯤은 자기 목소리를 제대로 내야 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든다. 바로 기업인들의 총파업이다. 유래 없고 앞으로도 없을 일이지만 이 지경까지 왔으면 있어도 하나 이상한 일이 아닐 것이다. 이 문제를 헌법과 연관해서 정리해 봤다. 현행 헌법 제119조 1항과 2항은 다음과 같다.

제 1항 대한민국의 경제 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
제 2항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

개인과 기업의 자유와 창의가 기본이다. 한편 제헌헌법 해당 조항은 다음과 같다.

제84조 대한민국의 경제 질서는 모든 국민에게 생활의 기본적 수요를 충족할 수 있게 하는 사회정의의 실현과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기함을 기본으로 삼는다. 각인의 경제상 자유는 이 한계 내에서 보장된다.

둘 사이에는 절대 화해할 수 없는 간극이 있다. 무엇보다 ‘기본’이 다르다.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는 나라와 ‘사회정의의 실현과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기함을 기본’으로 삼는 나라는 절대 같은 나라가 아니다. 후자의 경우 경제적 자유는 이 한계 내에서만 보장되기 때문이다. 아시다시피 제헌헌법은 1919년 바이마르 공화국의 ‘사회’민주주의 성향 입법의 세례를 받은 헌법이다.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실현하는 헌법이라면 이런 조항은 나올 수 없다. 앞에 붙은 수사가 뒤에 따라오는 내용을 규정한다. ‘사회’민주주의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사회주의다. 제헌 헌법의 이 같은 독소조항(나는 그렇게 생각한다)은 제 3공화국 헌법에서 정상화된다. 3공 헌법의 111조는 다음과 같다.

제1항 대한민국의 경제 질서는 개인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
제2항 국가는 모든 국민에게 생활의 기본적 수요를 충족시키는 사회정의의 실현과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위하여 필요한 범위 안에서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한다.

세 헌법의 경제 주체는 각기 다르다. 제헌헌법과 3공 헌법은 ‘개인’이다. 그러나 87년 헌법은 ‘개인과 기업’이다. ‘기업이 추가되어 있다. 헌법이 제정된 배경을 삭제하고 보자면 아주 올바르게 진화해 온 셈이다. 참고로 5공 헌법 제120조는 다음과 같다.

제1항 대한민국의 경제 질서는 개인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
제2항 국가는 모든 국민에게 생활의 기본적 수요를 충족시키는 사회정의의 실현과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위하여 필요한 범위 안에서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한다.
제3항 독과점의 폐단은 적절히 규제·조정한다.

87년 헌법을 만든 사람들은 ‘경제의 민주화’라는 단어를 넣는 데 골몰하다보니 그만 ‘기업’을 핵심 경제 단위에 집어넣는 실수를 저질렀다. 그래서 그 헌법을 개정하고 싶은 것이다. 물론 개정 방향은 제헌헌법이겠다. 그러나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 현실 정치권력은 이미 헌법을 넘어서서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행 헌법대로라면 ‘개인과 기업의 자유와 창의 존중’이 기본이 되고 2항에 해당하는 ‘규제와 조정’은 그 기본을 흔들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정부는 헌법 파괴 정부다. 헌법 파괴 했다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개헌을 하기는 해야 한다. 아마 이렇게 하고 싶을 것이다.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종을 할 수 있음을 기본으로 삼는다.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 자유는 이 한계 내에서 보장된다.

조정이 아니라 ‘조종’이다. 한반도 5천년 역사에서 처음 찾아왔던 ‘자유’의 정신은 이렇게 끝장이 날 것이다. 마르크스는 외쳤다. 만국의 프롤레타리아는 단결하라. 2018년, 나는 이렇게 외치고 싶다. 대한민국의 기업가들은 모두 단결하여 파업하라. 파업하여 자신들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기업이 없으면 나라도 없다는 사실을 권력에게 주장하라. 만날 눈치보고 뜯기는 봉이 아니라 자기들이 이 나라의 근간임을 온 세상에 널리 알려라. 자유진실시장멸공

 

남정욱 객원 칼럼니스트(작가)

로마의 평민들이 총파업을 벌인 '몬스 사케르' 언덕이다. 표지판에는 ‘몬테 사크로’라고 되어 있고 주민들은 그 언덕을 홀리 마운틴이라고 부른다
로마의 평민들이 총파업을 벌인 '몬스 사케르' 언덕이다. 표지판에는 ‘몬테 사크로’라고 되어 있고 주민들은 그 언덕을 홀리 마운틴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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