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트루스포럼(대표 김은구)이 영화 ‘1987’을 보고 감동받았다는 후배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서울대 트루스포럼은 편지에서 “1987년 6월 항쟁을 주도했던 세력은 크게 김일성과 김정일을 추종하며 인민민주주의를 추구했던 NL계열 주사파와 순수하게 정의감의 발로에서 참여했던 사람들, 그리고 보다 나은 근로조건 또는 정치적 지위를 확보하고자 했던 그룹이었다”며 “영화 ‘1987’을 순수하게 보기 힘든 것은 북한을 추종한 주사파 세력이 1987년 6월 항쟁을 순수한 민주화로 포장하며 그 안의 거짓과 위선을 감추고 젊은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대한민국을 부정하고 헌법가치에 반하는 주사파들이 6.10운동을 주도했고, 공산주의 운동을 민주화운동으로 가장하며 민주화의 모든 공로를 독식하고 있으며, 작년 탄핵정국과 대선을 통해 이들이 현 정권의 주요 요직을 차지하게 되었다”며 “이들이 국정을 운영하면서 자신들이 꿈꿔왔던 사회주의 국가에 대한 향수와 민족적 감성에 치우쳐서 지상 최악의 노예국가 북한을 옹호하고, 한미동맹에 균열을 내면서까지 사회주의 일당독재 국가인 중국을 두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음은 서울대 트루스포럼의 <영화 ’1987‘을 보고 감동을 받았다는 후배에게> 전문이다.

오늘 우연찮게 1987년 6월 항쟁을 주도하셨던 좌파진영 교수님과 점심을 같이하며 얘기를 나눴습니다.

그 분 설명에 따르면 1987 6월 항쟁의 주된 세력은 크게 셋으로 나눌 수 있어요.

첫 번째, 항쟁을 주도한 운동권 세력입니다. 주의할 것은 70년대 비교적 순수했던 학생운동과는 달리, 80년대 학생운동은 NL(National Liberation) 민족해방 진영에서 주도하게 됐는데 문제는 NL계열 학생운동을 주사파에서 장악하게 된 것입니다. 이들은 감상적인 민족주의에 빠져서 북한의 현실을 외면하고 김일성과 김정일을 추종하며 인민민주주의를 추구했던 세력입니다.

이들은 표면적으론 민주화를 내세웠지만, 위수김동(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 친지김동(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동지)를 외쳤던, 사회주의 혁명을 갈망한 그룹입니다. 이들은 조직적인 정치 운동 그룹이고, 주사파가 주도하는 이 운동권 세력이 제가 학부생으로 있었던 90년대 중후반까지 대학의 학생회를 장악해 왔어요. 그리고 지금까지도 학교 안에 과격한 사회주의 운동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두 번째 그룹은 어제 설교를 진행하셨던 박 목사님처럼 순수하게 정의의 발로에서 참여하신 분들이에요. 이 분들은 순수하게 민주화를 요청하신 분들입니다. 하지만 첫 번째 세력처럼 치밀하게 조직화된 운동 세력은 아니었어요. 오늘 함께 말씀을 나눈 교수님은 소위 좌파 리더 분들과 매우 가까운 분이신데, 자신을 두 번째 그룹의 한 사람으로 소개하셨어요.

세 번째 그룹은 노조와 같이 항쟁을 통해 보다 나은 근로 조건 내지 정치적 지위를 확보하고자 했던 그룹입니다. 이들은 전국적인 거대한 조직이었어요.

문제는 87년 이후, 두 번째 그룹은 조직력을 갖추지 못하고 일상으로 돌아갔고, 첫 번째 그룹이 세 번째 그룹을 전략적으로 교육해 온 것입니다. 그 분 설명으로는요.

그리고 민주화의 공로가 사실상 가장 큰 것은 두 번째 그룹인데, 사회주의 혁명을 꿈꿨던 첫 번째 그룹이 민주화의 공로와 명분을 독점하고 있다며 우려를 표하셨습니다. 그리고 첫 번째 그룹이 이석기 같은 친북적 성향의 인사들을 견제하지 못하고 성장하게 방치한 점에 관해서도 심각하게 우려하셨어요.

그분 말씀은 대부분 공감이 갔는데, 저와 생각이 완전히 같지는 않았습니다. 한국사회가 시장경제의 폐해를 보완하기 위해 사회민주주의를 보다 포용해야한다고 하셨는데, 저는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사민주의가 숙주로 사용되는 위험성을 크게 봤습니다. 또 그런 연장선에서 통진당 해산에 관해 그분은 그 조직이 내부적으로 스스로 붕괴될 때까지 그냥 두는 것이 더 좋았을 거라고 하셨지만, 저는 해산결정이 필요하고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사회를 좌/우, 보수/진보로 나누는 구분이 적절해 보이지는 않지만, 양심적인 진보와 양심적인 보수가 서로 공감하고 함께할 수 있는 영역이 분명이 있겠다는 생각이 든 것은 큰 소득이었습니다.

아무튼, 영화 1987을 순수하게 보기 힘든 것은 문화권력까지 점령한 첫 번째 그룹이 이런 진실을 감추고 1987년 6월 항쟁을 순수한 민주화로 포장하며 그 안의 거짓과 위선을 감추고 젊은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하기 때문입니다.

PD계열에서 운동권 활동을 하셨던 83학번 선배님 한 분은 신림동에 ‘박종철 거리’가 생기는 것 자체에 반대하지는 않지만, 박종철과 그가 속했던 제헌의회 그룹, 그러니까 위에서 말한 첫 번째 그룹이, 민중혁명으로 세상을 뒤집은 뒤에 제헌의회를 소집하자는 공산주의 운동 단체였다는 사실은 정확히 알려져야 한다고 지적하셨습니다.

“영화 ‘1987’, 난 안 봐! 토가 나올락 하네!”

제가 이런 이슈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건, 학부시절 운동권 선배들의 모습을 보며 저도 고민했기 때문이고, 인간의 혁명을 추구하며 하나님 되신 예수그리스도를 부정하고 예수님을 혁명가로 전락시킨 민중사관, 민중신학의 이해가 잘못된 것이라는 반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운동권 내에서도 혁명이론에 확신을 갖지는 않았지만, 어떤 형태로든 저항하는 것이 시대적 소명이라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6.10 현장에 있었던 수많은 사람들 중 공산주의 이념으로 무장된 공산주의자는 절대로 다수가 아니었습니다. 그 중에는 공산주의 체제를 확신하고 추구했던 세력과, 학습은 했지만 프롤레타리아 혁명이나 식민지 또는 반미의 개념을 받아들이지 못한 사람, 그리고 그밖에 세상이 바뀔 때가 됐다고 생각한 다수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대한민국을 부정하고 헌법가치에 반하는 첫 번째 그룹의 사람들이 6.10운동을 주도했고, 공산주의 운동을 민주화운동으로 가장하며 민주화의 모든 공로를 독식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그룹은 오히려 조용히 있는데 말이죠.

그리고 정말 큰 문제는 작년의 탄핵정국과 대선을 통해 첫 번째 그룹의 사람들이 현 정권의 주요 요직을 차지하게 되었고, 이들이 국정을 운영하면서 자신들이 꿈꿔왔던 사회주의 국가에 대한 향수와 민족적 감성에 치우쳐서 지상 최악의 노예국가 북한을 옹호하고, 한미동맹에 균열을 내면서까지 사회주의 일당독재 국가인 중국을 두둔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래는 장신대 김철홍 교수님께서 영화 1987에 관해 쓰신 글입니다. 참고하세요.

[김철홍 칼럼] 1987년 실제와 영화, 그리고 2017년

양연희 기자 yeonhee@pennmike.com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작권자 © 펜앤드마이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