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son』 지 기사에서 편집부장인 브라이언 도허티(Brian Doherty)는 최근 독자들에게 “문화 마르크스주의”(cultural Marxism)는 “음모를 꾸미는 우파”(conspiratorial right)가 “다문화주의 및 동성애자의 권리 및 급진적 페미니즘”에 대한 그들의 증오를 가리기 위해 불러 낸 편집증일 뿐이라고 믿게 하고 있다.1

그는 최근 수 십 년간 분명히 심화되어 온 정체성의 정치(identity politics)가 “우리를 노예로 만들기 위한 공산주의자들의 사악한 음모와 어떤 관련이 있다”는 생각을 공개적으로 조롱한다.

도허티에 따르면, 전통적인 마르크스주의의 경제적 “계급”(class)이란 정체성을 대체하고자 인종, 민족 및 성(gender) 정체성에 바탕을 두고 연합을 형성하려는 합치된 노력들이 단지 “미심쩍은 음모 이론”을 넘어선다고 믿는 사람은 “오해를 한 것”(mistaken)이거나 “어리석다”(foolish)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주의 지도자들이 수 십 년 동안 이런 전략에 대해 글을 써왔었다는 걸 감안하면 도허티의 태도는 참 황당하다.

그 한 예가 사회주의 이론가인 에르네스토 라클라우(Ernesto Laclau) 및 샹딸 무프(Chantal Mouffe)가 쓴 1885년도 책 『헤게모니와 사회주의 전략』(Hegemony and Socialist Strategy)이다. 사실, 그 책을 쓰도록 영감을 준 생각들은 라클라우와 무프가 “사회주의자의 전략, 다음에는 어디로 갈 것인가?”(Socialist Strategy, Where Next?)라는, 더 많은 것을 말해 주는 제목으로 1981년 1월호 『오늘날의 마르크스주의』(Marxism Today)에 쓴 논문 속에 들어 있다.

그 논문은 저자들이 “사회주의 정치 투쟁”은 새로운 지평 위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선언하면서 시작된다. 그들은 “계급투쟁 및 자본주의의 경제적 모순에 중점을 둔 전통적인 마르크스주의 담론은 받아들이기에는 큰 어려움이 있어 왔다”고 주장했다.

라클라우와 무프는 이 도전을 어떻게 극복하고 “계급투쟁이란 개념을 효과적으로 수정”하여 하나의 경제적 “계급”(class)으로 쉽게 분류되지 않는 집단들을, 그것과 생산 수단과의 관계에 따라 포용할 것인가 라는 문제와 씨름을 했다.

그들이 원한 것은 “여성, 민족적, 인종적 및 성적 소수자들, 반핵 및 반체제 운동 등의 새로운 정치 문제들”을 전통적으로 계급에 의해 사람을 인식하는 사회주의 운동 속에 어떻게 통합시킬 것인가를 알아내는 것이었다.

그들이 주장한 바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진화된 이 새로운 혁명 전략은 “정치 문제들이란 계급과는 다르고 계급보다는 더 광범위한 것이며, 또 그것이 사회주의 세력들이 고려해야 했었고 또 드러낼 수 있어야 했던 민주주의의 수많은 모순들을 통해 구성된다고 인식할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는 도허티가 인용하는 론 폴(Ron Paul)의 페이스북 게시 글과 아주 유사하게 들리는데, 그 글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그들의 특징적 언어인 ‘착취’(exploitation)라는 말을 이제 막 문화(culture)로 바꾸었다는 것이다: 남성에게 착취받는 여성, 양성애자에게 착취받는 동성애자, 젊은 층에게 착취 받는 노인들 혹은 그 반대의 착취들 등등.. 이런 사항들은 계속 이어진다”고 쓰고 있다.

흥미롭게도, 도허티는 론 폴의 말의 진짜 내용은 회피한 채 그 게시 글에 딸려 있는 만화를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몇 문단 후 도허티는 굳이 평범한 사람들의 눈에도 수십 년 간 너무도 분명한 점을 마지못해 인정한다: “대학 속 좌파들이 몇몇 그들의 관심사들을 경제에 특정된 관심으로부터 문화 정체성에 토대한 것으로 옮겨 간 것은 사실이다”고.

그러나 이걸 인정한 직후 도허티는 본래의 제 입장으로 되돌아가 “동성애자, 흑인 또는 여성의 불만이 미국 역사가 아니라 공산주의에 토대한 것처럼 가장하는 자”들은 “그들을 둘러싼 세상을 오해하는 것일 뿐”이라고 훈계했다.

그러나 라클라우와 무프라면 사회주의 혁명과 ‘정체성의 정치’ 사이의 연계성을 아무렇지 않게 다루려는 도허티와는 다른 입장을 취하려 할 것이다.

실제로 그들은 사회주의 목표를 달성하는 유일한(only) 길은 “착취 받는 계급”(exploited class)에 관해 새로운 개념을 만드는 것이며, 그것은 전통적인 마르크스주의 경제적 조건 속에서는 규명될 수 없고 경제적 착취와는 다른 지배 형태에 의해서 규명될 수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사회는 참으로 자본주의 성격을 띠지만 이것이 이 사회의 유일한 특징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은 인종주의적(racist)인 것이 될 수 있음은 말할 것도 없고, 성차별적인(sexist) 것과 가부장적인(patriarchal) 것도 될 수도 있다”고 그 저자들은 설명한다.

라클라우와 무프는 계속해서 주장한다. “이 새로운 정치 문제들: 곧 여러 반체제 투쟁 및 생태주의 투쟁 뿐 아니라 여성, 학생, 청년, 인종 및 지역적 소수자 문제는 생산 관계라는 수준에서는 위치를 매길 수 없고. . . 그 꼭대기에서 그것들은 그들의 목표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규정한다.”

라클라우와 무프에 따르면 “노동 운동”(worker’s movement)이란 용어 뒤에서 쉽게 단합하는 프롤레타리아처럼, 쉽게 확인될 수 있는 정치적 “계급”(class)을 다른 것으로 대체하는 것은 혁명의 새로운 선도자들에게는 과제들을 야기했다. 그렇게 광범위하고 다양한 이익의 집합들이 각각 성, 인종 및 성적 지향 등에 바탕을 두고 있는 제 집단들을 위한 이익 추구의 요구들을 하는 경우에는, 각각의 집단들은 자율성을 갖게 되고 특정한 요구만을 표출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사회주의 운동을 진전시키기 위해서는 이 모든 집단들로 구성되는 연합 전선(united front)이 필요한데, 왜냐하면 “반(反)자본주의 투쟁은 이 새로운 분야의 투쟁들이 추가됨으로써 강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사회주의의 인식에 대한 이미지를 급히 바꾸어 이들 각 집단들이 그것을 자기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라클라우와 무프는 주장한다.

이 새로운 통합된 사회주의 투쟁은 “계속적으로 재정의 되고 재협상되는 거대한 동맹 체제들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이념적 준거체제, 곧 새로운 집단적 의지에 대한 접합제의 역할을 하는 ‘유기체적 이념’(organic ideology)의 개발 없이는 진정으로 통합될 수 없다.”

페미니즘 운동을 좌파연합에 끌어들이기 위한 노력을 살펴보자. “그것은 사회주의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기존의 요구들에 단지 여성의 요구들을 덧붙이는 문제가 아니다; 사회주의와 페미니즘을 연결하는 것은 사회주의라 하면 으레 인식되어져 온 방식으로, 즉 생산 수단의 사회화(socialization of means of production)와 같은 급진적 변화를 수반해야 한다. 이것은 오늘 근본적인 것이라고 여겨지는 우선순위도 변화됨을 의미한다.”고 그들은 주장한다.

라클라우와 무프가 말하는 이 새로운 “유기체적 이념”organic ideology) 및 “우선순위의 변화”는 “모든 지배 관계들을 억누르고 사회의 모든 수준에서의 진정한 평등과 참여를 만들어 내는데 필요한 투쟁 범주를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보다 익숙한 용어로 말한다면, 새로운 사회주의 혁명은 “‘착취’(exploitation)라는 그들의 특징적 말을 문화(culture)로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남성에게 착취 받는 여성, 양성애자에게 착취 받는 동성애자, 젊은 층에게 착취 받는 노인들, 그리고 그 반대의 경우들로”

론 폴(Ron Paul)은 정확히 보았던 것이다.

도허티가 오늘날의 정체성 정치(identity politics)를 현대 사회주의 운동의 도구라고 인식하는 사람들을 경멸하는 것은 무식한 것 아니면 순진한 것이다. 라클라우와 무프와 같은 잘 알려진 사회주의 정치이론가들은 바로 이 전략을 수 십 년 간 공개적으로 떠들어 왔다. “문화 마르크스주의”(cultural Marxism)라는 정체성 정치가 오늘날의 사회주의자들이 선호하는 전략이라고 정확히 규명하는 것이 “바보 같은 음모 팔아먹기”(conspiracy mongering)나 단지 “교활한 언어 날조”(clever rhetorical deck-stacking)인 것은 아니다.


1) (역주) 도허티는 문화 마르크스주의와 관련해 마르크스를 옹호한다. 그는 정치적 정답주의(PC: political correctness)는 공산주의의 음모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 글의 저자인 밸포어 이전에 이미 론 폴이나 팻 뷰캐넌도 도허티의 주장에 대한 반박을 통해, 오늘날 만연하고 있는 PC를 포함한 ‘정체성의 정치’는 결국 마르크스주의가 계급을 경제적 의미에서 페미니즘, 동성애, 인종주의 등으로, 즉 경제로부터 문화로 진영을 옮겨서 전개하는 진화된 마르크스주의임을 지적한 바 있다.


글쓴이) Brian Balfour

브라이언 밸포어는 자유 시장을 옹호하는 기관인 Civitas Institute의 집행 부회장 이다. 정부가 기업처럼 효율적으로 운영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You Can't Run a Government ‘Like a Business’”, 경제가 곧 사람인데 따라서 경제를 기계나 도구로 비유함은 잘못된 인식이라는 “Why the ‘Economy Is an Engine’ Metaphor is So Wrong” 등을 미제스 와이어에 기고한 바 있다.

옮긴이) 김행범 (부산대학교 교수)

▶원문) https://mises.org/wire/why-marxism-shifted-economics-culture

▶자유와 시장경제에 관한 더 많은 글을 「미제스와이어」(www.mises.kr)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작권자 © 펜앤드마이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