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스턴 처칠을 그린 영화 ‘다키스트 아워’와 ‘인투 더 스톰’
또다시 찾아온 대한민국의 가장 어둡고 거센 풍랑의 시간
“얼마나 더 무릎을 꿇고 비위를 맞추며 얼마나 더 빼앗겨야 정신을 차릴 거야?”
어떤 희생을 감수하고라도 내 나라, 내 국민을 지키겠다는 리더는 어디에 있는가.

김규나 작가
김규나 작가

처칠은 버스를 한 번도 타본 적 없다. 지하철은 꼭 한 번 타봤지만 길을 잃고 헤맸던 끔찍한 기억이 있다. 달걀 정도는 삶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글쎄. 그는 현실에서 무능한 사람이었으며 경솔하고 냉소적이고 무례한 똥고집쟁이에 판단력이 부족한 정치인이라고 평가되었다. 실제 그의 전력은 실패의 연속이었다.

1차 대전 시 해군 수장이었던 처칠은 25만 명이 전사한 갈리폴리 전투에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덩케르크에 고립되어 있던 33만 8천 명의 아군을 성공적으로 구출했지만 4천 명의 젊은 병사들이 몰살될 수밖에 없는 작전을 수행한 결과였다. 보수당이었다가 자유당이었다가 다시 보수당으로 당적을 바꾸기도 했으며 인종주의자로 알려져 있고 독가스로 쿠르드족을 죽이라고 명령한 적도 있다. 식민 통치에 저항하는 시위대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많은 희생자를 냈을 뿐 아니라 수많은 인도인이 굶어죽은 벵골 대기근에도 정치적 수장으로서 책임이 크다. 그 외에도 실수와 오류와 부족함은 너무나 많다. 그런데도 왜 윈스턴 처칠은 위대한 정치인으로 손꼽히는 것일까.

“호랑이 아가리에 대가리를 처넣고 어떻게 호랑이랑 대화를 한다는 거야?”

처칠은 아돌프 히틀러가 대화나 타협의 상대가 아님을 일찌감치 파악했고 그들과의 전쟁에서 패배하면 “세상은 암흑시대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리고 세계를 구했다. 그가 히틀러와 싸웠기에 일본이 항복하는 계기가 마련되었고 당시 한반도는 식민 치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런데 친일을 우리 역사 최고의 악으로 설정한 사람들, 처칠을 찬양해야 할 텐데 그의 영웅적 리더십을 그린 영화 <다키스트 아워Darkest Hour, 2017>는 흥행하지 못했다. 개봉 당시 전국 상영관 수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고 그마저도 얼마 가지 않아 일제히 사라졌다.

“우리는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바다와 대양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감과 힘을 길러 하늘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들판과 거리에서 싸울 것입니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영국을 지켜 낼 것입니다. 우리는 절대로 항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히틀러를 평양의 김정은으로, 무솔리니를 중재자로 내세워 히틀러와 대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정치인들을 자유 대한민국을 전복시키려는 세력으로 대치해 보면 처칠의 주장에 구구절절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동시에 주적을 정확히 지목하고 절대 항복하지 말자며 내 편을 설득, 국민을 결집시키는 정당, 어떤 희생을 감수하고라도 공산주의와 전체주의로부터 내 나라, 내 국민을 지키겠다는 정치인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궁금해진다. 왜 상영관이 적었는지, 왜 홍보가 되지 않았는지 어렴풋이 이해되는 순간이다. 어떤 정치적 리더를 원해야 하는지 국민이 깨닫게 될까 두려운 사람들이 많은 것은 아닐까, 의심스러워지는 대목이기도 하다.

빛이 밝은 만큼 음지는 깊다. 위대한 영웅으로 평가되는 사람일지라도 인간일 뿐이다. 잘못된 판단이든 최선의 선택이든 전쟁에 따르는 수많은 인명피해, 수없이 들어야 했을 비난과 스스로 느낄 수밖에 없을 자책은 처칠이 우울증을 심하게 앓아야 했던 이유였을 것이다. 독한 시가와 술을 평생 입에 물고 살아야 했던 까닭이기도 했을까. 그는 90세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나는 많은 걸 이루었지만, 결국 이룬 건 없다.”며 괴로워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2002년 BBC가 100만 명을 대상으로 ‘위대한 영국인 100명'을 조사한 결과 1위에 링크된 이름은, 영국인들이 그토록 자랑스러워하는 셰익스피어도 아니고, 엘리자베스여왕이나 아인슈타인도 아니었다. 바로 윈스턴 처칠이었다.

“공산주의 정책은 영국의 자유 개념에 비추어 볼 때 극도로 혐오스러운 것입니다. 날카로운 비판과 거칠게 불만을 표현하는 자유를 허락하는 공산주의 정부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인간적 결함과 연이은 정치적 실책에도 불구하고 처칠이 위대한 정치가로 기억되는 이유는 전체주의와 공산주의로부터 영국과 자유세계 진영을 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긴 전쟁으로 많은 희생을 치러야 했던 당시 영국 국민들은 히틀러와의 전쟁이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또 다시 공산주의와 싸워야 한다는 것에 진저리를 냈는지도 모른다.

“다들 각하가 한물갔다고 해요. 이제 노동당의 시대라고요.”

“영국을 사랑하는 그의 마음은 끝이 없어요.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영국을 지켜내고 싶어 해요.”

“각하께서 생각하는 영국이란 애당초 없었는지도 몰라요.”

또 다른 시각에서 처칠을 그린 영화 <인투 더 스톰into the Storm,2009>에서 그의 아내와 보좌관이 나누는 대화이다. 총선을 앞두고 처칠은 국민의 재신임을 확신하지만 세상은 이미 달라진 뒤였다. 2차 대전을 성공적으로 지휘했으나 영국과 연합군의 승리가 확정되기 한 달 전인 1945년 7월, 처칠은 노동당과 공산주의자들에게 밀려 차기 수상 선거에서 실패하고 만다.

국민에게 버림받은 날 저녁, 처칠은 아내와 함께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연극을 보며 어두운 극장에 앉아 남몰래 눈물짓는다. 자신의 뜻을 몰라준 국민에 대한 서운함, 무엇을 더 어떻게 해야 했을까, 그때 그 일은 하지 말았어야 했던 것일까, 많은 질문들이 그 자신을 외롭게 했을 것이다.

“영광스럽게도 구국의 영웅께서 오늘 이 자리에 함께하셨습니다. 윈스턴 처칠 각하이십니다.”

그때 뜻밖에도 연극을 끝낸 배우가 객석에 앉은 그를 소개한다. 조명이 그를 비추고 관객들은 모두 일어나 처칠을 향해 환호와 감사의 기립박수를 보낸다. 선거결과가 민심의 모든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처칠에게 등을 돌린 지 5년 후, 영국 국민은 그를 다시 수상으로 선택한다. 노동당 아래 살면서 공산주의와는 타협할 수 없다는 것을 경험하며 자신들이 어떤 리더를 원하는지 비로소 절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싸워 이겨야만 자유와 평화가 내 것이 된다는 것을, 처칠과 같은 올곧은 정치인이 강단 있게 밀고 가야만 나라가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으로 배웠던 것이다.

처칠에 비해 인간적 결점이 뒤지지 않는 것으로 인식된 정치인이 우리에게도 있다. 그런데도 이제와 보니 적중에 포위되어 있는 동안, 참 많은 일들을 해냈다. 전교조 법외 노조화, 민노총 무력화, 공무원 연금 개혁, 좌편향 교과서 국정화, 4기 원전 건설 합의, 만년적자였던 코레일 흑자전환 등을 성공시켰다. 한미 우주협력 협정, 쿠웨이트 정유공장 건설 수주, 원전 운영권 수주 확보 등 통상외교에서도 괄목할 만한 성과를 냈다. 무엇보다 국가안보에 투철했다. 그의 요청으로 강력한 '대북 제재안'이 UN안보리를 통과했고 통진당 해산, 개성공단 철수, 사드 배치 결정 등을 통해 한미동맹을 강화했다. 북한인권법을 국회에서 통과시켰고 북한인권 센터도 설립했다. ‘통일은 대박’이라고 외침으로써 노예보다 못한 생활을 하고 있는 북한 주민들에게 자유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으로 평양의 뿌리를 흔들었다. 처칠이 전체주의와 공산주의를 혐오하고 축출해야 할 악으로 판단했던 것처럼, 그는 북한이 대화와 타협의 대상이 아님을 명백히 직시했던 것이다. 그 결과 대통령은 저들이 그토록 자랑하는 ‘촛불혁명’에 희생되어 사기 탄핵 당했고 현재까지 수감되어 있다.

지금 권력을 쥔 자들은 처칠을 반대하던 노동당과 공산주의자들처럼 오로지 평화만을 노래하며 대한민국의 안방을 적에게 내줄 궁리에 몰두하고 있다. 미군철수를 목표로 세계를 돌아다니며 종전선언을 구걸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올해 안에 김정은이 서울을 방문할 수 있도록 추진 중이다. 돈과 쌀, 석탄과 기름이 남한에서 평양으로 수송되고 있는 게 아닌가, 의심하며 유엔이 금융제재를 경고하고 있는데도 개성공단 기업인 150명의 방북이 기획되고 있다. 군사분계선 일대에 배치된 군 병력을 후방으로 옮기는 방안이 모색되는 가운데 JSA 비무장과 DMZ 지뢰제거 작업이 완료되었다. 11월부터는 남북한 일반인의 판문점 자유왕래가 허용된다고 한다. 이제 김정은과 인민군이 서울 시청 광장까지 내려온다 해도 총과 대포로 무장한 우리 군인들이 항전하는 그림은 더 이상 그려지지 않는다.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촛불과 인공기를 흔들며 환영할 태세다.

“대화만이 해결책입니다.”

“대체 언제 정신을 차릴 거야? 얼마나 더 무릎을 꿇고 비위를 맞추며 얼마나 더 빼앗겨야 정신을 차릴 거냐고?”

처칠을 다시 선택한 영국 국민들처럼 우리도 깨닫게 되는 날 올까. 지금 우리 국민 다수는 히틀러와 싸우다 지친 그때의 영국 국민들과 다르지 않다. 히틀러의 아우슈비츠보다 무서운 평양 공산주의 집단이 뱀처럼 혀를 날름거리고 있는 줄 모르고 평화 통일이 임박했다며 박수치고 있다. 저쪽의 시커먼 속셈은 계산하지도 않고 우리가 반갑게 손 내밀면 저들도 미소 지으며 손잡아 줄 거라고 순진하게 꿈꾸는 것이다. 그들이 오면 꿈 꿀 자유마저 빼앗긴다는 것을 까맣게 모른 채.

깨어나라, 개인이여! 일어나라,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이여!

TMTU. Trust Me. Trust You.

*‘TMTU. Trust Me. Trust You’는 김규나 작가가 ‘개인의 각성’을 위해 TMTU문화운동을 전개하며 ‘개인이여, 깨어나라!’는 의미를 담아 외치는 캐치프레이즈입니다.

김규나 객원 칼럼니스트(소설가, 소설 <트러스트미>, 산문집 <대한민국의 시계는 거꾸로 간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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