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성욱 변호사
황성욱 객원 칼럼니스트

지난 26일 서울중앙지법 형사16단독 최미복 판사는 정보통신망법 위반(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윤서인 시사만화 작가와 김세의 전 MBC 기자에게 각각 벌금 700만원을 선고했다(2018. 10. 26. 펜앤드마이크 보도). 자유민주주의, 법치주의, 권력분립의 가치가 언제부터인가 희미해지고 법은 더 이상 여론으로부터 지켜주는 방파제가 될 수 없다는 시대를 살고 있기에, 이 땅에 사는 국민으로서 예상 못할 바도 아니었다. 그러나 일선에서 소송을 수행하는 법률가로서는 사실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한편, 판결이 났음에도 정확한 공소사실과 적용법조문을 뉴스로 파악하기가 힘들었다. 언론들이 정확한 팩트보다는 진영논리에 따라 허위사실을 마음껏 보도하는 대한민국에서는 피고인 윤서인 작가와 김세의 기자가 무슨 법에 의해, 거짓말을 했는지 욕을 했는지, 그도 저도 아니면 무슨 내용으로 처벌을 받은 건지 정확하게 보도하는 언론은 드물었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고 처벌을 받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에 대해 오보를 날려도 아무런 거리낌이 없는 사회가 작금의 대한민국이다. 허긴 하급심 판결문이 사실상(?) 공개되지 않는 대한민국에서 기자들만 탓할 것도 아니다.

공소장을 보니 김세의 기자는 애초 정보통신망법 제70조 제1항으로, 윤서인 작가는 제2항으로 기소되었다가 윤서인 작가는 재판 중에 제1항이 예비적으로 추가되었다. 제1항은 사실을 적시해서 명예를 훼손하는 경우를 말하고 제2항은 허위사실을 적시해서 명예훼손을 하는 경우에 처벌하는 조항이다. 형법상 명예훼손과 그 구조와 법리가 동일하나 차이점이 있다. 형법보다 정보통신망법의 형량은 세지만, 정보통신망법은 형법과 달리 비방의 목적이 있어야한다는 제한을 두었다. 인터넷과 통신망의 발달로 과거와 달리 명예훼손의 피해가 광범히 해진 현실을 고려하여 처벌 수위를 높이면서도 표현의 자유와 여론형성의 기능을 축소하는 부작용을 방지한다는 어떻게 보면 상호모순적인 취지가 담겨있다.

그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명예훼손과 모욕을 했다고 ‘국가’가 나서서 사람을 처벌하는 나라는 별로 없다. 사실적시와 모욕에 해당되지 않는 의견의 표명은 그 구별도 매우 애매하고 자칫 이를 적극적으로 해석하는 순간 여론 및 공론의 장이 축소될 뿐만 아니라 다수의 생각과 반대되는 소수의 견해를 억압하는 도구로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가권력이 나서기보다는 민사적 해결이 바람직하다는 견해가 꾸준히 우리 법조계에서도 제기되어왔다.

법원은 그동안 어떻게 해왔을까. 법원은 언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가 우월적인 기본권이라는 인식하에 공적인물이거나 공론화된 사안에 대해서는 가급적 형사처벌의 범위를 좁혀 왔다. 온 나라를 이상한 방향으로 몰고 갔던 광우병 보도나 세월호 사건 당시 온갖 허위사실 적시에 대해서도 법원은 면죄부를 주었다. 예술이란 미명하에 여인의 누드화에 사람의 얼굴을 덧대어 온갖 조롱을 퍼부어도 공적인물, 공적사안이란 이유로 검찰도 검찰권을 자제해왔다. 정보통신망의 발달은 한편으론 역작용도 있지만, 쌍방향 통신이란 특성으로 인해 피해자의 반론권도 충분히 보장되는 측면도 있다. 그래서 공론화된 사안을 국가권력이 재단한다는 것은 가급적  금기시해야한다는 것이 법조의 일반적인 정서였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언론을 통해 다수의 국민이 논의에 참여하는, 즉 공론화된 사안에서 ‘허위사실’이 아닌 ‘사실적시’ 표현은 실무에서 ‘형사처벌’과는 관계가 없는 것으로 인식되어 왔다. 언론계 종사자나 일반국민들도 그것을 우리 사회의 기준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민사사건에서는 형사처벌과는 별개로 이론상 배상판결이 있을 수 있지만, 공론화되고 찬반양론이 이미 여론을 통해서 경쟁하는 사건은 배상보다는 반론권 보장 정도로 마무리되는 게 관행이었다.

놀라왔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 사건은 사실적시에 따른 명예훼손에 대한 처벌이었다. 결국 공론화된 사건에서의 사실적시 표현 중에서도 법원이(정확히는 판사에 따라) 엄벌할 사안은 따로 있다는 것이다. 물론 법원이 그렇게 판단기준을 내세운다면 존중해야한다는 견해도 있을 수 있겠지만, 문제는 법적용의 일관성과 시대상황이다. 

국민들은 그동안 이와 다른 판단을 보아왔다. 특히 자유주의적 가치관을 가진 국민들은 다른 가치를 가지고 있는 인사들의 수많은 허위사실 적시와 모욕적 표현에도 법원이 면죄부를 주었던 것을 보아왔다. 많은 국민들은 민주화의 대표적 수혜로 대통령을 욕해도 된다고 생각해왔고, 대한민국은 대통령에 대해서는 육두문자를 써도 괜찮은 자유의 나라라고 생각해왔다. 실제로 소위 보수정권의 대통령은 저잣거리의 안주보다 못한 취급을 받았고 일부 국민들은 ‘이 정도까지 표현의 자유가 허락되는 것은 심하다’라는 법감정도 있었지만 그것이 자유민주주의라고 받아들였다.

그러다 고영주 변호사가 기소되는 걸 보고 모두들 깜짝 놀랐다. 형사재판에서 고영주 변호사는 1심에서 무죄를 받았지만, 민사 1, 2심에서는 위법하다면서 배상하라고 했다. 법은 그렇다 치고 권력자가 국민을 향해 처벌과 배상을 요구하는 것은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때마침 정부 여당은 가짜 뉴스를 엄벌하겠다고 한다. 실정법상으로는 명예훼손과 모욕을 적극적으로 적용하겠다는 얘기다. 

세상이 바뀌어서 그런 것인가? 자유의 축소가 이 시대의 정신인가? 
우리는 윤서인 작가와 김세의 전 기자 사건을 보면서, 여론과 권력으로부터 독립을 그토록 외쳤던 사법부가 자유의 축소를 시대정신으로 받아들인 것인가 묻고 싶다.

황성욱 객원 칼럼니스트(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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