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부품업계 지원방안, 결국 금융지원으로 해결하나
협력사까지 약 20만명에 달하는 국내 자동차업계의 여신은 28조원
대출 상환 연장하고, 기술개발지원 자금 조성하는 정부의 해결책은 한계있다는 지적

최근 국내 자동차업계의 실적 악화 여파로 줄도산 위기에 처한 국내 자동차 부품업계가 정부에 3조원 규모의 금융 지원을 요청했다.

22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한국자동차산업협동조합이 최근 자동차부품업체들을 대상으로 한 자금 수요 조사 결과, 부품업체들은 은행권 대출 상환 연장과 시설투자, 연구개발(R&D) 등에 약 3조1천억원의 자금이 필요하다고 요청했다. 산업부는 이같은 요청을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에 전달했다.

그동안 산업부는 자동차부품업계를 지원할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지역별 간담회를 열어 업계 어려움을 청취하고 300여개 부품업체를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했다. 이 과정에서 부품업체들은 은행들이 자동차업계를 고위험 업종으로 분류하고 대출 만기 연장 등을 잘 해주지 않는다고 호소했다.

이에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지난 17일 "금융회사의 리스크 관리는 필요하지만, 개별기업의 신용도를 바탕으로 자금지원이 이뤄져야지, 같은 업종이라고 획일적으로 취급하는 행태는 바람직하지 않다"며 자동차 부품업계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기도 했다.

그러나 일각에선 내부 혁신이나 구조조정 없는 금융지원은 정부가 이들에게 산소호흡기로 연명해주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 자동차 산업의 생태계는 완성차 업체를 중심으로 1·2·3차 협력업체가 공생하고 있다. 현대자동차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면서 부품별 내부 원가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왔고, 협력업체들은 이를 따라가는 구조였다. 따라서 완성차 업체의 실적이 악화되면 자연스레 중소기업들도 대기업에서 주는 일감을 챙길 수가 없게 된다. 

올해 상반기 국내 자동차 생산량은 200만4744대로 작년 상반기보다 7.3% 줄었다. 국내 완성차 대표업체인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의 영업이익은 작년 2분기 이후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이처럼 완성차 업체들의 실적이 악화되자 현대차 1차 협력사인 '리한'은 지난 6월 산업은행에 워크아웃(기업구조개선)을 신청했다. 한국GM의 1차 협력사인 JPC오토모티브는 2015년까지 매년 100%가 넘었던 공장가동률이 올해는 60% 이하로 떨어졌고 상반기 매출액도 전년동기대비 절반 수준으로 감소했다. 현대·기아차 1차 협력사인 화신, 평화정공, 에스엘 등도 매출이 급감했다. 중견 부품사인 다이나맥, 금문산업 등은 줄줄이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갔다.

전문가들은 국내 완성차업체가 독일의 BMW와 벤츠같은 브랜드 파워를 가지고 있지 못하고, 중국이 가격경쟁력으로 빠르게 추격하고 있는 상황에서 강성 노조들로 인해 해고나 임금을 조정하지 못하니, 이같은 폐단이 부품업체들까지 번져 전반적인 자동차 산업이 도태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진단한다. 

국내 자동차업계는 851개의 1차 협력사와 5000여 개의 2차 협력사, 3000여 개의 3차 협력사에 종사하고 있는 인원이 약 20만 명에 달한다. 그동안 국내 고용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자동차업계가 무너지면 실업자는 폭증하게 된다.

국내 자동차 부품업체들이 은행 등 금융권에서 빌린 돈은 무려 28조원에 달하며 이 중 10%는 이미 자본잠식 상태이다. 또 올해 1분기 상장한 1차 협력부품업체 89개사 중 42개사(47.2%)가 영업적자이며, 28개사(66.7%)는 적자로 전환했다. 자동차업계에 대한 불안이 확산되자 은행들은 이에 대한 리스크를 높게 산정하고 만기 연장 거부 및 대출 회수에 나서면서 결국 부품업체들은 정부 권력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지경까지 내몰린 셈이다.

정부는 그동안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금융위가 은행들을 상대로 대출회수 자제를 요청하고, 산업통상자원부나 중소기업벤처부는 4차 산업혁명을 대비한 민관공동기술개발이라는 명목으로 기금 조성에 혈안이었다.

산업부는 올해 6월 250억원을 올 하반기 자동차부품기업 R&D에 집중 투입하겠다는 발표를 내놨고, 중기부는 7월 르노삼성, 대·중소기업·농어업협력재단과 총 150억 원의 민·관공동기술개발 투자협약기금 조성협약을 체결, 중소기업의 기술개발을 지원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는 '선택과 리스크'에 대한 문제와 관련해 관료중심의 제도적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업계관계자는 "이는 자동차업계 뿐만이 아니다. 4차산업은 기존 추격주의 방식과는 다르게 아무도 가지 않는 전인미답을 개척하는 일"이라며 "정부가 업계 관계자들을 초대해 아무리 기금을 조성해봤자, 기술에 대한 가치 평가나 리스크에 대한 책임에서 공무원들이 자유로울 수 없다"고 말한다.

또 "해외 선진국들의 사례를 보면, 특히 미국같은 경우엔 민간에서 조성된 벤처캐피탈이 신기술에 대한 투자로 연결되는 생태계가 잘 조성되어 있다. 지방정부에서 조성된 기금조차도 그 분야의 전문가에게 맡겨 전권을 위임하는 형식으로 운용된다"고 말하며 "국내의 관(官)주도적인 방식으로는 신기술에 판단도 공무원, 투자의 리스크에 대해서도 공무원이 책임을 질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 조성되어 있기 때문에 성공이 불가능한 구조다. 국정감사만 봐도 알수있지 않느냐"라고 말했다.

이어 "시장에서는 가장 뛰어난 기술이 성공하는 것이 아닌, 완성차업체에 잘 팔아 임베디드(결합)되고 최종적으로 소비자의 선택을 받아 시장 점유율을 장악하는 것이 성공하는 것"이라며 "그렇게 되려면 중소·중견기업들이 대기업으로 올라서려고 하면 온갖 규제와 정부의 권위주의식 조사에 질겁하는 환경이 아닌 기업들이 떼돈을 벌게 해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하는 것이 정부가 할 일"이라고 꼬집었다.

홍준표 기자 junpyo@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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