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핵화까지 제재' 美 방침에 강력 반발…리용호 "제재로 굴복은 망상"
"美北공동성명 비관은 美행정부 정치적 반대파들이 훼방 놀리는 것" 이간책
"美가 우리보다 먼저 핵보유해 불신"…美 핵 철수 전제한 '조선반도 비핵화' 개념 되풀이
6.25 침략 책임회피하고 "美가 공화국 첫날부터 적대시, 전쟁 때 원자탄 투하 공갈" 핑계
北 당 기관지는 "美 제 할바 하지 않고 압박타령…제재-대화 절대로 양립불가"

북한 김정은 정권이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비핵화 완료까지 제재' 방침에 반기를 들고, 대내외적으로 선(先) 핵폐기 거부를 공언하고 나섰다. 

한미군사동맹 와해 우려를 낳는 이른바 '미국의 상응조치'와 함께, 핵개발 강행으로 인한 대북(對北)제재 해제를 종용했다. 특히 미국이 자신들을 사실상 '무조건 신뢰'하지 않으면 6.12 미북공동성명도 "지난 시기 실패한 다른 합의들과 같은 운명"이 될 수 있다고 압박했다.

리용호 북한 외무상이 29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의 유엔본부에서 행한 제73차 유엔총회 일반토의 연설에서 비핵화와 문제에 대해 미국의 동시 행동과 단계적 실현 방침을 재차 강변하고 한국전쟁 종전선언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의 대북제재 완화를 요구했다.(사진=연합뉴스)
리용호 북한 외무상이 29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의 유엔본부에서 행한 제73차 유엔총회 일반토의 연설에서 비핵화와 문제에 대해 미국의 동시 행동과 단계적 실현 방침을 재차 강변하고 한국전쟁 종전선언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의 대북제재 완화를 요구했다.(사진=연합뉴스)

리용호 북한 외무상은 29일(미 현지시간) 뉴욕 유엔본부에서 행한 유엔총회 기조연설을 통해 "비핵화에 대한 우리의 의지는 확고하다"라고 전제한 뒤, "그러나 미국에 대한 신뢰 없이 우리 국가의 안전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없으며 우리가 일방적으로 먼저 핵무장을 해제하는 일은 절대로 있을 수 없다"고 강변했다. 이는 자신들이 '비핵화 노력'이라고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일부 조치들의 대가로 미국이 상응하는 조치를 내놓아야 한다는 이른바 '북미 동시행동 원칙'을 되풀이한 것이다.

리용호는 연설에서 "우리는 조미(북-미) 수뇌회담이 진행되기 이전부터 핵시험과 대륙간탄도로켓(ICBM) 발사시험을 중지하고 핵시험장을 투명성 있게 폐기하는 것과 같은 중대한 선의의 조치들을 먼저 취했으며, 지금도 신뢰 조성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러나 우리는 미국의 상응한 화답을 보지 못하고 있으며 미국은 우리에게 선비핵화만을 요구하고 있고, 제재 압박 도수를 높이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경제제재로 우리를 굴복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의 망상에 불과하지만, 제재가 우리의 불신을 증폭시키는 게 문제"라는 명분을 댔다.

미국 언론들은 리용호의 이런 발언을 긴급뉴스 등을 통해 신속하게 보도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대북제재를 완화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한 데 대한 강한 불만의 표시이자 협상에서 '밀리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인 것이라는 취지의 분석이 나오고 있다.

북한은 자신들이 불신을 자초해 놓고, 미국 측의 문제 제기를 단순 '국내정치 문제'로 치부하는 논리도 폈다.

리용호는 "미국에서 조미(북-미)공동성명의 리행 전망에 대한 비관의 목소리가 계속 울려나오고 있는 것은 결코 공동성명의 그 어떤 부족점이 있어서가 아니라 미국의 국내정치와 관련되는 문제"라고 규정했다.

그는 "미국의 정치적 반대파들은 순수 정적을 공격하기 위한 구실로 우리 공화국을 믿을 수 없다는 험담을 일삼고 있으며, 우리가 받아들일 수 없는 무리한 일방적 요구를 들고 나갈 것을 행정부에 강박해 대화와 협상이 순조롭게 진척되지 못하도록 훼방을 놀리고 있다"고 행정부보다도 더 강고한 대북 경계론을 유지하고 있는 미 정치권을 비난했다.

리용호는 "강권의 방법에만 매달리는 것은 결코 신뢰조성에 도움이 되지 않으며, 오히려 상대방의 불신만을 더욱 가증시키게 될 뿐"이라며 "상대방을 불신할 이유에 대해서 말한다면 미국보다 우리에게 그 리유가 훨씬 더 많다"고 강변했다.

이어 "미국은 우리보다 먼저 핵무기를 보유하였으며 세계에서 유일하게 핵무기를 실전에 사용한 나라"라고 미국의 핵 보유를 문제삼았다. 김정은 선대 김일성·김정일 유훈으로 알려진 '조선반도 비핵화' 개념이 미국 핵 철수를 전제로 한 것과 궤를 같이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리용호는 또 "미국은 70년전 공화국이 탄생한 첫날부터 우리에 대한 적대시 정책을 실시해왔으며, 자국 기업들이 우리나라와 나사못 한 개도 거래하지 못하게 하는 철저한 경제봉쇄를 감행하고 있는 나라"라고 '피해자'를 자처했다.

그는 "우리는 미국 땅에 돌멩이 한 개 날아간 적 없지만, 미국은 조선전쟁시기 우리나라에 수십 발의 원자탄을 떨구겠다고 공갈한 적이 있는 나라이며, 그 이후에도 우리의 문턱에 끊임없이 핵전략자산을 끌어들인 나라"라고도 했다.

그러면서 "만일 조미 두 나라가 과거에만 집착하면서 서로 상대방을 무턱대고 의심만 하려든다면 이번 조미공동성명도 지난 시기 실패한 다른 합의들과 같은 운명을 면치 못하게 될 것"이라고 엄포를 놨다.

9월30일자 북한 조선노동당 기관지 '로동신문' 6면 사설 일부
9월30일자 북한 조선노동당 기관지 '로동신문' 6면 사설 일부

한국시간으로 30일 북한 조선노동당 기관지인 '로동신문'은 <제재와 대화는 절대로 량립될수 없다>는 제목의 사설을 냈다.

로동신문은 "지난 14일 미 국무장관 폼페이오는 '조선반도 비핵화를 위해서는 대조선(대북)제재 이행이 결정적'이라고 역설하면서 유엔제재결의들을 계속 이행하려는 미국의 입장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며 "제 할 바는 하지 않고 제재압박 타령만 하고 있는 미국을 보는 국제사회의 눈길이 곱지 않다"고 주장했다.

로동신문은 "유엔주재 미국 대표가 일부 나라들이 대북제재를 약화 혹은 방해하고 있는 문제를 논의하는 유엔 안보리 긴급회의(현지시간 17일 개의)를 소집할 것을 요청한 문제도 그렇다"며, 러시아와 중국의 반발을 예로 든 뒤 "제재를 문제해결의 만능수단으로 삼는 미국에 의해 복잡한 문제들이 계속 산생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 신문은 리용호 연설과 마찬가지로 "미국이 명백히 알아야 할 것은 제재압박이 우리에게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제재와 대화는 절대로 양립될 수 없다. 미국이 제재압박의 도수를 높이면서 상대방과 대화하자고 하는 것이야말로 모순이 아닐 수 없다"고 했다.

한기호 기자 rlghdlfqjs@pennmike.com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작권자 © 펜앤드마이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