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망했다고 하는데 내 생각은 좀 다르다. 이만하면 잘했다. 선거를 말아먹기 위해 당 지도부가 총력전을 펼치는 가운데 얻은 소득치고는 나쁘지 않았다는 얘기다. 선거 초반부터 마지막까지 일관성 있게 흔들리며 지지표를 털어낸 선거였다. 표를 주고 싶어도 “저한테 왜 이러세요” 손을 뿌리친 선거였다. 전대미문의 선거였고 앞으로도 보기 어려운 선거일 것이다. 공천 과정에서 김을 빼는 건 이 당의 유구한 전통이다. 지도부 말 안 듣는다고 홍준표, 김태호를 잘라냈고 동지인지 적인지도 확인도 안 해 보고 공천을 줬다 망신을 불렀다. 탈脫원전
조국 전 법무장관이 정암 조광조가 되었다. 열린민주당 비례대표 중 한 분이 검찰개혁을 외치며 조국을 조광조에, 윤석열 검찰총장과 윤대진 사법연수원 부원장을 윤임과 윤원형에 비유했다. 성姓만 같으면 아무렇게나 갖다 붙여도 된다고 생각 했나본데 사람 웃기는 방법도 참 가지가지다. 조광조가 누구인가. 개혁을 한답시고 시도 때도 없이 중종을 괴롭혀 노이로제에 빠뜨린 인물이다. 말은 많아 남이 끼어들 틈을 주지 않았고 젊은 만큼 체력도 좋아 사흘 밤낮 꿇어앉아 주청을 해도 지치는 법이 없었다. 조광조가 입궐하면 중종은 머리부터 싸맸다. 그런
혼자 광화문 거리를 걸었다. 정부서울청사에서 동화면세점까지 갔다가 발길을 돌려 교보문고와 미국대사관을 지나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스산하다. 스산하고 스산하고 또 스산하다. 별 생각 없이 쓰던 이 표현이 이렇게 실감나게 와 닿은 적이 없다. 사람들의 표정은 오로지 무채색이다. 기쁨이나 희망은 어느 날부터 자유라는 단어와 동반으로 사라졌다. 그렇다고 절망과 분노가 마구 솟구치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그냥 무기력이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온통 비자발적 무기력이다. 흥미도 의욕도 없는 멍한 얼굴들이 곁을 지나쳐 간
복 받은 세대다. 같은 숫자가 연달아 오는 해는 천 년에 한 번 뿐이다. 1010년이 왔었고 3030년이 올 것이다. 그러니까 2020은 대체로 우주적인 숫자다. 생각만큼 이를 축하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나는 적어도 2020년이 2000년보다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막상 2020년의 풍경은 황량하다. 특히 대한민국이 그렇다. 갈등만발이다. 젊은 놈은 늙은 놈이 싫고 오른 쪽에 있는 놈은 왼쪽에 있는 놈이 밉다. 영남은 호남이 호남이라서 싫고 호남은 영남이 영남이라서 짜증난다. 가난한 사람은 부자를 부러워해야 하는데 그러기는커녕
일찍이 콜롬보 선생께서는 범죄 현장에서 세 가지를 주목하라 알려주신 바 있다. 있었는데 없어진 것, 없었는데 있는 것 그리고 위치가 옮겨진 것이다. 개인의 범죄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다. 집단 혹은 국가의 범죄라고 다를 리 없다. 2020년 현재 대한민국은 거대한 반反문명적이고 반反이성적인 범죄가 저질러지고 있는 현장이다. 있었는데 없는 것 중 대표적인 게 원전이다. 탈脫원전에 대한 이 정부의 신념은 신앙에 가깝다. 전기 요금 상승, 전력 수급 불안, 온실 가스 배출이라는 빤히 예상되었고 이제는 현실로 다가오는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알
자유한국당이 현역 의원 50% 이상을 물갈이 하겠다고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 이상도 가능하다고 한다. 솔직히 말씀드려 그게 가능할지 그리고 무조건 숫자로 딱 찍어놓고 밀어붙이는 것이 합리적인지 잘 모르겠다. 일단 50%에 해당하는 뛰어난 인재들이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갑자기 나타난다는 비현실적인 생각에 동의하기 어렵다. 신이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겠다고 했을 때 아브라함은 야훼와 딜deal을 한다. 처음에는 선한 사람 백 명을 면책조건으로 했지만 그게 줄고 줄어 열 명까지 내려왔고 그나마 그 열 명도 채우지 못해 도시는 불길에
솔직히 나는 한국당이 그렇게 싫지 않다. 신문 매일 보는 게 귀찮아서 일주일, 열흘 치를 몰아서 보는 편인데 그나마 내게 웃음을 주는 것은 한국당 관련 기사뿐이다. 어이가 없어서 웃기도 하고 배를 잡고 웃기도 한다. 웃기려고 작심한 게 아니라 자기들은 안 웃기려고 하는데 웃기니까 더 웃기다. 그러니까 한국당이란 존재는 나에게 즐거움을 주는 당이지 우파 이념이니 보수의 가치 같은 걸 추구하고 실현하는 집단이 아닌 것이다. 사실 지금 한국당 의원들도 좀 억울할 것이다. 그저 입신양명 차원에서 혹은 돈도 벌고 사회적인 성공도 거두다보니
1517년 10월 31일은 개신교의 창립일이다. 맞다. 변두리 신학자 마르틴 루터가 95개조 반박문을 발표한 날이다. 그런데 그게 왜 개신교의 창립일이냐고? 보통은 면벌부에 대한 문제 제기 정도로 알고 있지만 실은 그 이상이다. 루터는 가톨릭이 결코 수용할 수 없는, 넘지 말아야 할 위험한 선을 과감하게 넘어버렸다. 그는 선행善行과 회개 그리고 예배에서 구원이 온다는 기존의 교리를 다 엎어버렸다. 루터는 구원이란 신에 대한 복종과 해방에 대한 믿음에서 온다고 말했다. 선행의 결과가 구원이 아니라 선행이 구원의 결과라는 주장이었다.
같은 집에 사는 남녀가 아침에 함께 집을 나선다. 문 앞에서 둘은 사이좋게 하트 표시를 서로에게 날리고 각자 차에 올라탄다. 남편은 법무부로 출근하는 길이고 부인은 검찰청에 조사를 받으러 가는 길이다. 이런 황당한 광경을 우리는 며칠 안에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 별로 놀랍지는 않다. 지난 한 달여 조국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력이 생겨서 그렇다. 처음 사노맹 이력이 나왔을 때만 해도 단편 영화인 줄 알았다. 사모펀드, 웅동 학원 이야기가 나오면서 장편이라 생각했다. 아니었다. 미니시리즈였다. 딸 문제, 아들 문제는 꼬리를
은퇴한 선배 한 분의 일과는 우파 매체들을 검색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좌파를 공격하는 동영상을 찾아보고 그걸 또 다른 사람에게 보내준다. 시간 여유 있으면 좌파 매체에 들어가 어깃장 놓는 댓글을 단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 분의 하루일과를 통해 좌파, 우파의 총량 변화가 있었을까. 없다고 본다.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과 의견을 공유하고 신념을 다졌을 뿐이다. 총량 변화 제로! 물론 좌파와 싸우는 자유우파 활동도 중요하다. 정권에게는 일종의 브레이크 효과다. 사안마다 성명서 내고 집회하면 제동은 걸린다. 그러나 길게 보자. 중요한
음모론이라는 게 참 묘하다. 심증은 가나 물증이 없어야 음모론이다. 이 음모론은 공작(工作)과 함께 움직인다. 그런데 성공한 공작은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공작이 성공해야 비로소 음모론이 완성되는 기묘한 역설이다. 최근 한반도를 둘러싼 음모론이 무성하다. 미국이 한국을 제치고 일본, 북한과 모종의 거래를 하고 있다는 시나리오다. 명색이 동맹인데 차마 직접 때리지는 못하고 일본을 시켜 한국을 두들겨 패고 북한과는 딜을 해서 대중국 전선(戰線)의 틀을 새로 짠다는 얘기는 정황상 아귀가 딱딱 맞는다. 이른바 신(新)가쓰라-테프트 음모론이
“계급적 적들을 증오하라. 철저하게 증오하라.” “남조선에서 민중혁명이 일어나면 최우선으로 사회의 반동세력들을 철저하게 죽여 없애야 한다. 그 숫자는 대략 200만 명 정도는 될 것이다. 그래야만 혁명을 완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좌익 사상범 김정익이 교도소에서 남민전(남조선민족해방전선)의 전사戰士였던 김남주에게 받았다는 사상교육이다. 섬뜩하다. 당시 대한민국 인구가 4,000만 명 정도였으니까 5% 정도를 바퀴벌레 눌러죽이듯 도륙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거 김남주가 오리지널이 아니다. 북한의 이른바 ‘계급교양’이 본판이다
충분히 예상 가능했던 일이다. 시간강사들이 무더기로 대학에서 밀려나고 있다. 올 4월에만 1만 6천 명이 실직했다. 전체 시간강사 수가 7만 6천명 내외이니 무려 5분의 1이 일자리를 잃은 셈이다. 강사법 때문이다. 2010년 한 지방대 시간강사가 처지를 비관해 자살한 사건에서 촉발되어 이듬 해 제정된 강사법은 시간강사의 교원 지위 인정, 1년 이상 임용 및 최장 3년까지 임용을 보장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여기에 사회보험 의무화와 퇴직금 지급까지 들어있으니 이보다 아름답고 고마울 수가 없다.문제는 대학이 이 강사법을 감당할 체력이
2019년 10월의 어느 날, 광고회사에 다니는 김진실씨는 아침부터 설레는 마음에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1년 전 프랑스 배낭여행에서 만났던 영국인 친구 윌리엄이 한국에 오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나라도, 성(性)도 달랐지만 둘은 죽이 너무 잘 맞았다. 게스트하우스 주방에서 우연히 만나 컵라면을 먹으며 시작된 둘의 대화는 밤새도록 이어졌고 다음 날부터는 마치 십년지기처럼 파리 시내를 쏘다니며 수다를 떨었던 기억이다. 귀국 후에도 가끔 이메일을 주고받기는 했지만 다시 보기는 어려울 것이라 생각하던 터라 재회의 기쁨은 남달랐다. 황혼
1945년, 일본에 최악의 달은 언제였을까.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진 게 8월 6일과 8월 9일이니 당연히 8월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실은 3월이다. 시작은 3월 9일 밤에 시작되어 다음 날 새벽 5시에 끝난 도쿄 공습이었다. 8만 명이 넘는 사람이 죽었고 5만 여명이 부상을 당했다. 여기에 행방불명자까지 합치면 거의 20만 명 가까운 사람들이 그날 지옥을 구경했거나 아예 천국으로 가버렸다. 도쿄의 밤하늘을 헤집고 다닌 B-29에서 떨어뜨린 폭탄은 일반 고성능 폭탄이 아닌 젤리 모양의 새로운 휘발유 혼합물인 네이팜탄이
인간의 생물학적 기억력은 40대 중반을 정점으로 감퇴하기 시작한다. 물론 많이 웃고, 많이 걷고, 똑같은 일상을 반복하지 않으면 그 시기가 늦춰진다. 반대로 잠을 제대로 못자고, 화를 많이 내며 입에 욕을 달고 살면 30대 중반에도 기억력의 급속한 감퇴를 달성할 수 있다. 여기에 폭음과 흡연까지 더하면 금상첨화다. 사회적 기억은 생물학적 기억과 다르다. 기억의 방식이 자연발생적이 아니라 인위적이고 집단적이다. 당연히 권력관계나 정치역학에도 크게 좌우된다. 그래서 사안에 따라 일 년에 끝나는 사회적 기억도 있고 십 년 이상을 가는 경
‘괴짜 경제학’이라는 책으로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스티븐 래빗은 천재와 괴짜라는 경계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 경제학자다. 그가 세상에 던진 질문들은 공통점이 있다. 죄다 기상천외한데다 얼핏 봐서는 경제와 완벽하게 무관하게 들리는 얘기들뿐이라 이 사람이 진짜 경제학자 맞는지 프로필을 확인하게 만들 지경이다. 서른여섯 살의 나이에 시카고 대학 경제학과 교수가 되었지만 그는 경제학은 잘 모른다고 태연하게 털어놓는다. 대신 그가 제기한 질문들은 하나같이 흥미롭다 ‘마약 판매상들은 왜 어머니와 함께 살까’ 같은 제목의 글은 읽지
지금 자유한국당 최대 계파는 친박도 비박도 아니다. 농담을 조금 섞자면 지난 2월 11일 자유한국당 최대 계파인 씨네마당이 탄생했다. 가입인원이 무려 95명이다. 씨네마당은 ‘cinema +당(黨)’ 혹은 ‘cine + 마당’의 중의어로 단순히 영화를 사랑하는 동호회가 아니라 영화를 ‘문화전쟁’의 한 전선(戰線)으로 이해하는 모임이다. 해서 이 모임의 발족은 매우 역사적이다. 자유민주주의를 대한민국의 기본 이념으로 확신하는 국회의원들과 전투의 최전선에 있는 영화 예술인들이 문화전쟁에서 최초로 반격에 나선 사건이기 때문이다. 잘하면
아무리 바보라도 잘하는 게 하나는 있다. 이 정부가 딱 그렇다. 허공에 돈 뿌리는 재주 하나는 타고 났다. 작년에는 최저임금 파동 무마해보겠다고 일자리 안정자금이란 걸 만들어 마구 뿌렸다. 요건이 안 되는 사업장. 신청을 하지 않은 업체라도 상관없었다. 1개월 이상 고용을 유지해야 신청 할 수 있다는 규정은 지켜지지 않았고 지원 조건만 맞으면 신청하지도 않은 사업장에도 돈을 지급했다. 그 돈이 지난해 2조 9708억 원이었고 올해는 2조 8188억 원이다. 대략 6조원인데 이번에는 그보다 액수가 네 배나 크다. 정부는 24조원 규모
당시 일본은 축제분위기였다. 나라 전체가 들떠 있었다. 근대화의 우등생인 일본은 서양이 수 백 년 걸린 개혁을 불과 십 수 년 만에 압축 달성했다. 그리고 300년만의 리턴 매치에서 숙적인 중국의 무릎을 꿇렸지만 그래봐야 결국 지역구였다. 그런 일본에 손을 내밀어 훌쩍 몇 체급을 끌어올려 준 나라가 영국이다. 1902년의 영일동맹으로 일본은 지역구에서 전구구로 올라섰다. 신의 선물과도 같았던 영일 동맹을 ‘메이지 다이쇼 견문사(明治大正見聞史’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영일동맹이 35년 무렵 체결되었다. 당시 이 소식에 기뻐하지 않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