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2월22일 환경부 4대강 조사·평가기획위원회는 보가 생긴 이후 녹조가 심해지고 하천 생태계 파괴가 심각해 일부 보의 해체가 불가피하다고 발표했다. 개별 보의 해체 여부는 보를 철거할 경우 수질과 생태계 회복, 보 유지 관리비 절감 효과 등을 종합한 ‘편익’과 보를 철거하는 데 드는 ‘비용’을 비교해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국책사업 반대, 미국 쇠고기 수입 광우병 시위, 전직 대통령 탄핵 및 구속, 대법원장 구속 등 비정상적인 행동을 일삼던 세력들이 권력을 잡고 설치는 것을 보면서 4대강 조사·평가기획위원회가 무모하게 보를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을 돌이켜 보면 1988년 서울 올림픽, 1989년 독일 통일, 1991년 소련 해체로 이어지는 세계사의 대전환기였다. 당시 석학들은 이제 냉전(冷戰)은 끝났고 다가오는 21세기는 이념과 정치가 아니라 실용과 경제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1988년 7월 30일에 초판 1쇄가 발행된 유시민의 [거꾸로 읽는 세계사]는 이러한 세계사적 흐름에 정면으로 맞서는 책이다. 그가 앞으로 다가올 독일 통일과 소련 붕괴를 예측하였다면 감히 이 책을 출판할 생각을 하지 못 했을 지도 모른다.그렇다면 저자가 이 책에서 어떠
[文革春秋: 現代中國의 슬픈 歷史] 30회. “차르(Czar)의 유토피아” 1. 대약진의 신기루 대약진운동의 깃발이 중국 전역에 나부낄 때, 인민의 유토피아는 어디에도 없었다. 유토피아란 차르(Czar)의 의식을 점령한 신기루일 뿐이었다. 모두가 차르의 신기루를 바라보며 유토피아의 꿈을 강요받던 시절이었다. 중공중앙의 고위급 관료부터 산간벽지의 농민들까지 모두가 한 입으로 거짓말을 해야 했다. 모두가 스스로 내뱉은 거짓부렁에 속아야만 했다. 불가능을 꿈꾸며 굶어죽던 시간이었다. 기만과 허위의 계절이었다. 농촌의 현실에 입각해 생산
지난 11월 24일 열린 중등교사 임용시험의 역사교과 지원자들이 치른 역사 과목의 문제들은 한마디로 가관이었다. 어찌 그리 현 집권 세력과 그 동조자들의 왜곡된 생각과 편향된 세계관을 그대로 반영했는지 놀라울 따름이다.그중 한 문제는 특히 필자의 이목을 끌었다. 중국적 공산주의의 아버지라 불리는 리다자오(李大釗, 한국식 발음은 이대교 이대조 이대소 등 여러 가지이다)이 “신청년(新靑年)”에 기고했던 글을 그대로 실었다. 리다자오는 중국 자유주의, 실용주의, 그리고 점진적 개량주의의 거성인 후스(호적 胡適)를 비판하면서 아래와 같이
인류사최대의 기근 (2): "정치가 인민을 굶겨죽이다!"[文革春秋: 現代中國의 슬픈 歷史] 28回. “人類史 最大의 饑饉”(2) 대약진은 대기근으로 귀결되었다. 1958년-1962년 중국 전역에서 3천6백만에서 4천5백만 명이 아사(餓死)했다.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굶어죽어야만 했을까? 인류사 최악의 대기근의 와중에 대체 중공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었나? 살아남은 사람들은 무엇을 했던가? 1998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아마르티아 센(Amartia Sen, 1933)은 “언론의 자유가 있는 민주국가에서 대규모 기근이 발생한 사례는
[文革春秋: 現代中國의 슬픈 歷史] 27회. “人類史 最大의 饑饉” 1.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 지금껏 “문혁춘추”에선 중화인민공화국의 성립과정 및 1950년대 사회주의 건설과정의 역사를 살펴보았다. 이제 본격적으로 대약진운동(1958-1962)에서 문화대혁명(1966-1976)까지 18년간 중국 전역을 휩쓸었던 혁명의 노도(怒濤)와 광풍(狂風)을 돌아본다. 그 시기 중국의 역사는 무지와 망상, 광기와 폭력, 배신과 반역의 연속이었다. 과연 왜 중국인들은 그토록 참혹한 시행착오를 겪어야만 했을까? 대약
처칠은 버스를 한 번도 타본 적 없다. 지하철은 꼭 한 번 타봤지만 길을 잃고 헤맸던 끔찍한 기억이 있다. 달걀 정도는 삶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글쎄. 그는 현실에서 무능한 사람이었으며 경솔하고 냉소적이고 무례한 똥고집쟁이에 판단력이 부족한 정치인이라고 평가되었다. 실제 그의 전력은 실패의 연속이었다.1차 대전 시 해군 수장이었던 처칠은 25만 명이 전사한 갈리폴리 전투에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덩케르크에 고립되어 있던 33만 8천 명의 아군을 성공적으로 구출했지만 4천 명의 젊은 병사들이 몰살될 수밖에 없는 작전을 수행한
[文革春秋: 現代中國의 슬픈 歷史] 26回. “江물과 人間의 鬪爭” (2) 1. 댐이 무너지다 1975년 8월 5일부터 7일까지 사흘에 걸쳐 하남성 주마점시를 강타한 태풍은 1천 밀리미터가 넘는 폭우를 쏟아 부었다. 목격자의 증언에 따르면, 빗줄기는 흡사 소방관의 호수에서 쏟아지는 소화액과도 같았고, 그 빗줄기에 맞은 새떼들이 화살처럼 땅바닥에 내리꽂힐 정도였다. 남반구 호주의 기류와 남태평양의 기류가 충돌해 일으키는 태풍은 일반적으로 중국 동남부지역을 지역을 때리면서 약해지지만, 그해 여름의 태풍은 돌연히 북상해 장강과 중원지역을
[文革春秋: 現代中國의 슬픈 歷史] 25회. “江물과 人間의 鬪爭” 1. 회하유역의 슬픈 역사 1975년 8월 태풍이 하남(河南, Henan)성 주마점(駐馬店, Zhumadian)시를 강타했다. 광풍이 몰아치면서 하늘 뚫린 듯 단 사흘 만에 530밀리미터의 폭우가 쏟아졌다. 높이 116.34미터의 판교댐은 저수지를 가득 채운 5,083입방미터의 물을 막고 있었다. 한계치를 훨씬 웃도는 양이었다. 정부의 발표에 따르면, 판교댐의 수문은 1천에 한 번 일어날 확률의 큰 홍수를 대비해 설계되었지만, 판교댐은 급속한 방류 과정에서 무력하게
[文革春秋: 現代中國의 슬픈 歷史] 23回. "참새大虐殺 寸劇" 한국어에서 몽상은 주로 '헛된 생각'을 뜻하지만, 현대중국어에서 “몽상(夢想)”은 긍정적 의미로 쓰인다. 일례로 2017년 10월 제8차 인민대표대회에서 중국공산당 총서기 습근평(習近平, 시진핑)은 중화민족의 부흥이야말로 중화민족의 “위대한 몽상"이라 말한 바 있다. 중국어에선 미래적 희망과 이상을 뜻하는 "몽상"이라는 멋진 단어가 왜 한국어에선 부정적 의미로 쓰이게 되었을까? 공산주의는 유토피아의 실현을 지향하지만, 자본주의는 현실의 한계를 수용하기 때
북한 경제가 쪼그라들었다. 지난해 마이너스 3.5% 성장으로, '고난의 행군' 시절인 1997년의 -6.5%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여파가 컸기 때문으로 보인다. 여기에 극심한 가뭄과 만성적인 에너지 자원 부족 문제까지 겹치면서 산업 전반이 크게 위축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행이 20일 발표한 '2017년 북한 경제성장률 추정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북한의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전년 대비 3.5%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 1997년 기록한 -6.5% 성장
[文革春秋: 現代中國의 슬픈 歷史] 14回. “文字獄: 낙인찍고 재갈물리고” (1) 1. 혁명과 反혁명 지난 회에 소개했던 모우식(茅于軾) 선생은 과연 무엇 때문에 홀로 80대 후반 노구(老軀)를 이끌고 모택동을 비판하며 중공정부에 항거하고 있을까? 아니, 왜 오늘날 중국에선 더 많은 사람들이 정부의 억압에 결연히 맞서 투쟁하지 못하는 것일까? 중국내 관변 이데올로그나 친중 성향의 학자들이 주장하듯, 중공정부의 유능한 협치(協治, governance) 능력 때문일까? 아니면, 중국에 비판적인 외국학자들이나 중국내 소수의 반체제 지식
[文革春秋: 現代中國의 슬픈 歷史] 13回. "毛澤東神話批判" 1. “신성(神聖) 모택동” 오늘날 중국은 모택동의 나라다. 자금성(紫禁城) 천안문 앞엔 1949년 10월 이래 줄곧 모택동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옛날 중화문(中華門)이 있던 천안문 광장의 중앙에는 모택동의 시신이 안치된 거대한 모택동기념관(毛澤東紀念館)이 들어서 있다. 중국 전역의 어느 대학을 가도 캠퍼스 중앙에는 그의 동상이 우뚝 세워져 있다. 전국의 소학교 모든 교실에도 그가 직접 쓴 “好好學習, 天天向上!”(잘 배우고 익혀서 날마다 쭉쭉 자라자!)”라는 문구의
[文革春秋: 現代中國의 슬픈 歷史] 9回. “나는 皇帝로소이다 ” 1. 모택동사상의 부활 최근 중국공산당은 1982년 개정헌법에 명기된 5년 중임의 임기 규정을 파기하고 습근평(習近平, 시진핑) 주석에게 종신집권의 길을 터줬다. 등소평 지도 아래 채택된 5년 중임 임기규정은 실상 모택동식 일인지배를 막기 위한 헌법상 안전장치였다. 등소평 지배 이후 거의 30년 유지된 중국 특유의 집단지도체제가 이제 안전장치를 상실한 채 바야흐로 일인지배체제로 전환되고 있다. 홍콩 자유언론(Hong Kong Free Press)은 공산당의 그 결정을
[文革春秋: 現代中國의 슬픈 歷史] 8回. “人民民主獨裁의 悲劇" 1. 문혁(文革)의 기원 왜 우리는 “문혁”을 탐구하기 위해 부득이 1940년대 국공내전까지 거슬러 올라야만 했나? 중화인민공화국은 국공내전의 승리를 통해 성립되었기 때문이다. 중국헌법에 따르면, 국공내전에서 중국공산당의 승리는 “모택동 영도 아래 중국의 인민들이 장시간의 무장 투쟁을 통해 제국주의, 봉건주의, 관료·자본주의를 무너뜨린” 위대한 “신민주주의혁명”이다. 헌법 전문(前文, 서언)은 “중국의 인민이 국가의 독립, 민족해방 및 민주자유를 위해 간단없이 영웅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