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헬조선"은 어디로?몇 년 전 코리아에선 “헬조선”이란 말이 크게 유행했었다. 세계 10위권의 IT 강국, 세계 최고의 의료보험제도를 갖춘 대한민국을 날마다 "헬조선"이라 외쳐대며 저주하던 사람들은 문정권이 들어서자 곧바로 그 무시무시한 단어를 내다버렸다. 정권 하나 바뀌니까 지옥이 천당이 되었나? 그들은 어떻게, 왜, 그리도 쉽게 입에 달고 살던 “헬조선”이란 괴상한 신조어를 담배 끊듯 딱 끊어버렸나? 하늘에서 만나라도 내려왔나? 모두 복권이라도 맞았나?“헬조선”은 지난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 좌파집단이 급조해낸 심리전의 무
1. 왜 다시 문혁인가? 여전히 중국현대사를 찬양하면서 한국현대사를 폄훼하는 사람들이 많은 듯하다. 욱일승천하는 중국의 위상을 살피고 대응할 겨를도 없는데 왜 하필 지금와서 문혁을 들춰내냐 묻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 중공정부에서 공식적으로 발표한 문혁 피해 관련 통계를 하나만 돌아 보자. 1978년 11월 10일부터 12월 15일까지 북경에서는 중국공산당 제11기 중앙위원회 공작회의가 개최됐다. 모택동 사망 2년 2개월 후, 사인방 체포 2년 1개월 후의 일이었다. 형식상 당시의 국가주석 화국봉(華國鋒, 1921-20
광복홍콩(光復香港), 시대혁명(時代革命)을 외치는 홍콩 자유 시민들의 투쟁이 눈물겹다. 특히 젊은 학생들이 처절하게 대학 캠퍼스에 갇혀 끝까지 무자비한 경찰 폭력에 맞서는 모습은 전세계에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일깨워주고 있다. 11월 20일 기준으로 체포된 홍콩인의 수는 5천600명을 넘어선 가운데 중국공산당은 벌써 몇 달동안 홍콩인 압살을 계속하고 있다. 따로 계엄령을 내릴 필요가 없을 정도로 폭압적이다. 다른 형태의 천안문 사태가 재연되고 있다고 평가하는 이도 있다.이틀 전 홍콩폴리텍대학(香港理工大)에서는 일주일 이상 농성을
[文革春秋: 現代中國의 슬픈 歷史] 28回. “責任지라, 빅브라더” 1. 꿈꾸는 빅브라더 빅브라더는 60대 중후반의 나이에도 여전히 역사의 비약을 확신했다. 15년 안에 영국과 미국을 추월하자 부르짖었다. 사회주의를 넘어 지상(地上)의 공산유토피아를 만들자 호소했다. 부강하고 정의로운, 풍요롭고 평등한 새로운 중국을 건설하자며 지친 인민들을 다독였다. “수정주의자” 흐루쇼프의 소련을 대신해서 이제 중국이 사회주의 종주국으로 우뚝 솟아야 한다고 그는 믿었다. “더 많이, 더 빨리, 더 좋게, 더 아끼자”며 그는 온 사회를 흔들고 쑤시
인류사최대의 기근 (2): "정치가 인민을 굶겨죽이다!"[文革春秋: 現代中國의 슬픈 歷史] 28回. “人類史 最大의 饑饉”(2) 대약진은 대기근으로 귀결되었다. 1958년-1962년 중국 전역에서 3천6백만에서 4천5백만 명이 아사(餓死)했다.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굶어죽어야만 했을까? 인류사 최악의 대기근의 와중에 대체 중공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었나? 살아남은 사람들은 무엇을 했던가? 1998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아마르티아 센(Amartia Sen, 1933)은 “언론의 자유가 있는 민주국가에서 대규모 기근이 발생한 사례는
[文革春秋: 現代中國의 슬픈 역사] 12回. “中國의 인텔리들, 어쩌다 自由를 잃었나?” 1. 중공정부가 외치는 자유와 민주란? 오늘날 중국 전역에선 2012년 12월 중공 18차 전국대표대회에서 채택된 24자 12단어의 “사회주의 핵심가치관”을 흔히 볼 수 있다. 공공게시판, 건물벽, 관공서, 대학교정, 호텔로비, 택시계수기, 심지어는 화장실벽에도 어김없이 사회주의 핵심가치관이 적혀 있다. 국가의 목표로서 “부강, 민주, 문명(文明), 화해(和諧),” 사회적 지향으로서 “자유, 평등, 공정, 법치,” 공민(公民)의 덕목으로서 “애
[文革春秋: 現代中國의 슬픈 歷史] 11回. “빼앗긴 民國의 꿈, 改憲에 부쳐" 1. 사회주의 군주제? 철학의 빈곤 지난 3월 11일 중국에선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2980명 중 2964명이 표결에 참여했다. 그 중 찬성 2958명, 반대 2표, 기권 3표, 무효 1표의 거의 만장일치(99.8프로) 찬성으로 개헌안이 통과되었다. 모두 21개의 수정 조항 중 11개는 반부패 운동을 주도할 국가감찰위원회를 정부 내 막강한 독립조직으로 정립하는 절차이다. 나머지 10개 조항은 습근평(習近平, 시진핑) 개인의 권위를 절대화하는 규정
[文革春秋: 現代中國의 슬픈 歷史] 9回. “나는 皇帝로소이다 ” 1. 모택동사상의 부활 최근 중국공산당은 1982년 개정헌법에 명기된 5년 중임의 임기 규정을 파기하고 습근평(習近平, 시진핑) 주석에게 종신집권의 길을 터줬다. 등소평 지도 아래 채택된 5년 중임 임기규정은 실상 모택동식 일인지배를 막기 위한 헌법상 안전장치였다. 등소평 지배 이후 거의 30년 유지된 중국 특유의 집단지도체제가 이제 안전장치를 상실한 채 바야흐로 일인지배체제로 전환되고 있다. 홍콩 자유언론(Hong Kong Free Press)은 공산당의 그 결정을
[文革春秋: 現代中國의 슬픈 歷史] 7회. “土地改革殘酷史!” 국공내전이 한창일 때 공산당이 점령한 “신(新)해방지”에선 급속하게 공산혁명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 핵심은 토지개혁이었다. 공산당 지도부는 당시 중국 전역의 농촌에서 대략 10프로의 농민이 지주(地主) 혹은 부농(富農)이라 단정했다. 토지개혁은 바로 그 지주와 부농 소유의 토지를 압류해 중농(中農)과 빈농(貧農)에 재분배하는 과정이었다. 중국정부의 선전에 의하면, 토지개혁은 지주, 한간(漢奸, 친일매국노), 국민당부역자, 토호 등등 소수의 적인(敵人)을 제거하고 다수의
[문혁춘추: 현대중국의 슬픈 역사] 3회. “1948 장춘 홀로코스트 (I)” 오늘날 중국헌법 전문에는 중국공산당의 지도 아래 모든 중국 인민들이 대단합하여 "제국주의, 봉건제도, 관료자본주의의 지배"를 무너뜨리고 "신민주주의 혁명"을 통해 중화인민공화국을 건립했다고 기술되어 있다. 그런 중국공산당의 자체 선전과는 별개로 "중화인민공화국"은 과연 어떤 과정을 통해서 성립되었는가? 어떤 정치적 결단, 군사적 전략을 통해서 그 참혹한 국공내전에서 군사적 열세를 극복하고 "위대한 승리"를 쟁취했던 것일까? 앞으로 3회에 걸쳐 중국인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