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활 칼럼] 평양行 ‘억지동행’하는 기업인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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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승인 2018.09.16 15:34:33
  • 최종수정 2018.09.25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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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헌의 비극’ 결코 잊지 말고 조심, 또 조심하라

 

권순활 전무 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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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가 18일부터 23일 일정으로 예정된 문재인 대통령의 평양 방문에 동행할 방북단 명단을 16일 발표했다.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이 평양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장 자격으로 공식수행원과 특별수행원 명단 발표를 맡았다.

방북단에 포함된 인물 중 문재인 정부의 공직자나 정치인, 지방자치단체장에는 관심이 없다. 내가 주목한 사람들은 특별수행원 자격으로 문 대통령의 방북길에 동행하는 기업인들이었다. 이재용 삼성 부회장, 최태원 SK  회장, 구광모 LG 회장, 현정은 현대 회장, 최정우 포스코 회장 등이 포함됐다. 4대 그룹 중 현대자동차그룹은 유일하게 오너가()인 정몽구 회장이나 정의선 부회장 대신 전문경영인인 김용환 부회장이 방북에 동행하는 것이 눈길을 끌었다.

주요 기업인들의 방북 동행은 자발적으로 원해서라기보다는 정부의 요청을 묵살했다가는 나중에 유뮤형의 보복을 당할 것을 우려해 마지못해 받아들인 것이라고 본다. 다만 이왕 가기로 결정됐다면 나중에 후회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 몇 가지 충고 또는 조언을 하고자 한다.

탈북자 김태산-국회의원 김진태의 경고

과거 체코 주재 북한무역 대표를 지낸 뒤 2003년 한국에 망명한 탈북자 김태산 씨는 이달 1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번 평양 정상회담과 관련해 글을 올렸다. 그의 페이스북을 소개한 펜앤드마이크의 기사는 많은 호응을 얻으면서 이 칼럼을 쓰는 16일 오후 현재 독자들이 최근 1주일 사이에 많이 읽은 기사 2위를 기록하고 있다.

김태산 씨는 지난날 햇볕정부 10년 시절에 많은 남한의 정치가들과 경제가들, 그리고 언론인들과 종교인들이 무슨 큰일이라도 칠 것처럼 풀렁거리며 북한을 다녀왔다그런데 이상하게도 북한을 다녀온 거의 모두가 북한을 다녀와서는 찍소리도 못하고 지금도 북한의 개처럼 살아가는 인간들을 우리는 적지 않게 보고 있다고 썼다. 그는 또 이번 청와대의 초청은 마치도 무슨 대단한 혜택이라도 베푸는 듯이 보이지만 철저히 김정은이와 짜고 치는 매우 무서운 올가미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특히 청와대가 경제인들의 동행을 희망한다고 밝힌데 대해 김태산 씨는 이렇게 분석했다. “돈이 많이 나올 수 있는 경제인들을 동행시킴으로 지난날에 김대중이 현대그룹을 김정일의 돈주머니로 바쳤던 것처럼 현 좌파정부도 또 다른 경제인들과 대기업들을 김정은의 돈주머니 노릇을 하도록 만들려는 수법이다.” 그는 남한의 정치가들과 경제인들, 언론인들과 종교인들도 자신들의 남은 인생을 마음고생하지 않고 편하게 살아갈 것을 원한다면 불필요한 북한 방문이나 접촉은 피하는 것이 상책(上策)임을 경험자로서 충고한다고 글을 맺었다.

김진태 자유한국당 의원이 14일 페이스북에 올린 <평양에는 가고 싶은 사람이나 가라>는 제목의 글도 참고할 만한다. 김 의원은 정치인은 거절이라도 하지 기업인은 거절도 어렵다그동안 적폐로, 양극화 주범으로 몰아 그렇게 괴롭히더니 필요할 땐 손을 벌린다. 염치없기가 이만저만이 아니다라고 문재인 정권을 질타했다. 그는 또 “UN 대북제재가 시퍼렇게 가동 중이라며“ 4대 그룹 총수가 압박에 못이겨 북한에 투자의향을 밝혔다가 UN제재를 받으면 어떻게 책임질 건가? 정부가 우리 기업을 위해 글로벌 경제외교를 펴도 모자란 마당에 사지로 몰아넣고 있다고 꼬집었다.

2007년 방북 기업인들이 對北투자 꺼린 이유

이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문재인 대통령이 비서실장으로 일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퇴임을 불과 넉 달 앞둔 2007년 10월 역시 평양에서 김정은의 부친인 김정일과 정상회담을 갖기 위해 방북하면서 특별수행원 자격으로 기업인들을 대거 동행시켰다. 약  11년 전의 일이다.

그러나 평양 방문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온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구본무 LG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대북(對北)투자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한결같이 언급을 피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을 대신해 방북한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북측이 시스템과 제도를 갖추고 통신 통행 통관 등 3()을 보장한다면 신규 투자를 검토하겠다며 원론적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부정적 견해를 밝혔다.

현 정권과 마찬가지로 노무현 정권도 계속 우리 기업들에 대해 대규모 북한 투자를 적극 종용했다. ‘살아있는 권력과 남북의 좌파정권의 홍위병역할을 한 상당수 언론이 북한에 대한 근거 없는 환상을 부추기던 상황에서 기업들이 정권의 요구를 거절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4대 그룹을 포함한 주요 대기업들은 권력의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 범()집권세력 인사들에게 각종 혜택을 베풀었지만 대북 투자 요청만은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나마 어느 정도 알려진 기업이 북한에 진출한 것은 박성철 회장의 신원과 장치혁 회장의 고합 정도였지만 이들 기업은 모두 나중에 부실기업으로 전락했다. 김대중 정권 시절 권력과 손잡고 대북 경협에 무리하게 뛰어든 정주영-정몽헌의 현대가 남북 권력자들에게 이용만 당하다 처절하게 실패한 교훈이 생생하게 남아있던 시절이었다.

한국인들은 기억해야 할 과거를 너무 쉽게 잊는다. 언론 역시 마찬가지다. 요즘 친여(親與) 좌파 성향 언론을 중심으로 심심찮게 나오는 대북경협 효과보도를 접하면 한심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과거 김대중 노무현 정권 때 보던 행태와 너무나 닮았다. 그 이후의 처절한 남북 경협 실패를 그들은 정녕 모르는가, 아니면 알고도 모른 척 하는 것인가.

재산권과 생명 위협받는 곳에 누가 투자하겠는가

경제학 원론만 들여다봤더라도 기업들이 투자처를 결정할 때 정책의 일관성, 투명성, 예측 가능성이 낮은 곳을 기피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재산권 보호와 계약의 자유 및 준수, 신의성실의 원칙은 그보다도 더 앞서는 기본적 필요조건이다. 금강산관광사업과 개성공단사업에서 극명하게 드러난 북한 정권의 계약 파기와 자의적 몰수, 직원 억류의 기억이 생생한데 제정신이라면 그런 곳에 누가 투자하겠는가. 김정은 정권은 김정일 정권과 다르다고 착각한다면 바보가 아니면 사기꾼이 아닐까.

영국의 경제평론가 윌리엄 리스모그는 자기 재산과 생명마저 언제 잃어버릴지 모르는 곳에 가치 있는 것을 지으려 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했다. 나는 우리 기업들이 여건이 충족돼 자율적 판단으로 북한에 진출해 새로운 투자 활로를 찾거나 북한 주민의 삶을 향상시키는데 반대하지 않지만 적어도 지금은 그런 환경이 아니다. 다른 것 다 제쳐두고 북한 정권이 대북투자기업의 재산권과 생명을 확실히 보호한다는 믿음을 구체적인 행동으로 보여주기 전에는 어설픈 대북경협 환상은 버리는 것이 옳다.

권력과 손잡고 사운(社運)을 걸고 섣불리 대북경협에 뛰어들었다가 기업은 물론 본인도 비참한 최후를 맞았던 현대 정몽헌의 비극은 다시는 재연되면 안 된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이번에 자신은 물론 아들인 정의선 부회장의 방북도 끝내 거절한 것은 현대가()의 아픈 상처와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아마도 무거운 마음으로 18일부터 평양을 방문할 이재용 부회장, 최태원 회장, 구광모 회장 등 기업인들은 말 한마디, 행동 하나 조심하고 또 조심하길 바란다.

권순활 전무 겸 편집국장 ksh@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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