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터키에 이어 남아프리카공화국, 브라질, 인도네시아 등 신흥국 연쇄 위기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신흥국에 풀린 자금, 美 금리 인상으로 회수되면서 부채·재정적자 문제 불거져

구제금융을 받는 아르헨티나 정부의 초긴축 정책과 경제난에 항의하는 시위대
구제금융을 받는 아르헨티나 정부의 초긴축 정책과 경제난에 항의하는 시위대

아르헨티나, 터키 등에서 시작된 경제불안이 여러 신흥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에 미국의 경제 호황으로 추가 기준금리 인상이 예고돼 신흥시장에 위기가 닥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미국의 금리 인상이 달러 강세와 신흥국 통화 가치 하락을 초래하고, 신흥국들의 외자 유출과 외화 부채 상환부담이 확대된다는 것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는 오는 25∼26일(현지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열어 기준금리를 결정한다. 지난달 회의에서 FOMC 위원들은 "향후 경제지표가 전망치에 부합한다면, 곧 추가적인 조처를 하는 게 적절하다"며 9월 인상을 예고했다. 이번 FOMC에서 기준금리는 2.00∼2.25%로 0.25%포인트 인상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상당수 신흥국에서는 주가와 통화 가치 급락세가 장기간 이어지고 있으며, 그로 인해 각종 경제지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수준으로 나빠지거나 오히려 그보다 더 악화되고 있다.

현재 신흥국들의 경제 성장률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수준보다 낮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신흥국의 경제 성장률을 4.9%, 내년 5.1%로 전망하고 있다. 이는 2007년(8.5%)은 물론이고 2008년(5.7%) 성장 수준에도 이르지 못한 것이다.

경상수지 적자도 위기설을 뒷받침하는 요소 중 하나다. IMF에 따르면 올해 전체 신흥국의 GDP 대비 경상수지 적자는 0.07%로 2015년(0.20%), 2016년(0.31%), 2017년(0.08%)에 이어 4년 연속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2분기 기준 각국 GDP 대비 경상수지는 한국이 4.54%, 말레이시아는 3.26%로 탄탄한 편이나 취약국으로 지목되는 터키, 아르헨티나는 각각 -6.52%, -5.17%에 달한다. 2008년 2분기 터키는 -5.86%, 아르헨티나는 1.50%였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3.3%, 브라질은 -0.66%로 금융위기 때보다는 수치가 높아졌지만, 여전히 불안한 상태다.

역대 최대 수준으로 커진 부채도 불안 요소다. 국제금융협회(IIF)에 따르면 중국을 포함한 신흥국 부채는 지난해 말 기준 63조달러로 2007년 21조달러의 3배로 불어났다. GDP에 대한 부채 비율도 145%에서 210%로 급등했다. 이 기간 미국을 포함한 선진국 부채가 146조달러에서 174조달러 19%가량 늘어난 것과 비교하면 월등히 빠른 속도로 증가한 셈이다. 신흥국과 선진국을 통틀어 세계 부채는 올해 1분기 기준 247조달러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으며 세계 GDP 대비 부채 비율은 318%에 달했다. 부채 중에서도 외채, 특히 최근 강세를 보이는 달러 표시 채권이 많다는 것은 신흥국의 위기를 촉발할 뇌관으로 지목된다. 지난해 말 신흥국 외화 부채 규모는 8조3천억달러다.

해마다 1조5천억달러 이상의 부채가 신흥국들에게 만기 도래하지만, 이중엔 재정수지와 경상수지가 모두 적자인 '쌍둥이 적자'를 보이는 불안한 신흥국들이 상당수다. 터키와 아르헨티나, 파키스탄은 GDP 대비 재정수지·경상수지 적자가 10% 안팎이며 인도, 브라질, 인도네시아, 남아공, 우크라이나는 5% 이상이다.

사티아짓 다스 블룸버그 칼럼니스트는 이런 수치를 교과서적으로 보면 신흥시장이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면서 "터키와 아르헨티나가 특별한 사례일지 모르지만, 펀더멘털 문제로 봤을 때 다른 신흥시장도 압박을 받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위험자산인 신흥국 자산에 대한 시장 심리도 악화됐다. 신흥국 자산가치 자체는 기존 위기 때보다 낮아지지는 않았으나 약세가 계속된 기간(고점부터 저점까지 걸린 기간)은 그보다 훨씬 긴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6일 블룸버그 집계에 따르면 신흥시장에서 주가는 222일, 통화는 155일, 외화 채권은 240일간 약세를 보였다. 이는 2011년 유로존 재정위기 때(주가 155일, 통화 70일, 외화 채권 62일)나 2013년 테이퍼 탠트럼(172일, 111일, 47일) 때보다 훨씬 긴 것이다.

이같은 종합적인 문제들이 신흥국들의 '위기설'을 뒷받침하고 있다. 각 경제지표가 2008년 금융위기보다 악화하면서 터키와 아르헨티나의 외환위기는 지난달부터 남아프리카공화국, 인도네시아 등지로 번지는 양상을 보이기도 했다. 노무라증권은 신흥국 중 환율위기를 겪을 위험이 있는 나라는 현재 스리랑카와 남아프리카공화국, 아르헨티나, 파키스탄, 이집트, 터키, 우크라이나 등 7개국을 꼽았다. 이들 나라 가운데 남아공과 파키스탄을 뺀 5개국은 이미 현재 위기에 처했거나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고 있다.

신흥국들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 등 선진국 중앙은행들의 양적 완화 정책으로 저금리와 약달러의 수혜를 입었고, 풀린 자금은 고수익을 찾아 신흥시장으로 쏠렸다. 향후 미국의 금리 인상으로 신흥국들에 풀린 돈이 회수되기 시작하고, 자금 조달 비용이 늘어난다면 1990년대 중반부터 멕시코, 태국, 한국, 인도네시아, 러시아 등에 충격을 주었던 국제적인 국가부도 사태가 얼마든지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다.

홍준표 기자 junpyo@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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