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0만 촛불 받드는 무게 사법부와 입법부라고 다를 리 없다" 공언
입법부에 정기국회 일정 '훼방', 정상회담 동행 '압박'…사법부엔 불신조장·정치화
野, 與 '사법농단 의혹 법관 탄핵' 공언도 지목해 "靑·與 사법독립 침해에 맞설 것"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진의 정치 행태가 과거 자신들이 야당 시절 정부를 공격할 때 주장하던 '제왕적 대통령' 수준을 한참 넘어섰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우선 행정부 차원에서 집권 초 장담하던 '책임총리·책임장관'은 무색해진 지 오래다. 특히 문 대통령이 행정부 외에 입법부와 사법부까지 마치 '하부조직'으로 여기는 듯한 행보가 늘어나고 있다. 집권 명분으로 삼아 온 이른바 '1700만 촛불정신'이나, 남북 정권간 '평화 프레임'을 앞세우면서다.

집권당인 여당이야 그러려니 치더라도 엄연히 반대세력인 야당이 존재하는 입법부가 '곤욕'을 치르는 양상이다.

여야는 문재인 정부 출범 후 국정을 면밀히 점검하기 위한 100일간의 정기국회 의사일정에 지난달 30일 합의했으나, 이달 6일 행정부에서 18일~20일 평양 남북정상회담 일정을 끼워넣었다. 행정부는 '정기국회의 꽃'이라 불리우는 대정부질문과 국정감사를 통해 '검증대'에 서야 할 주요 장관들을 줄줄이 교체하기로 해 인사청문회 일정을 밀어넣기도 했다.

지난 9월13일 더불어민주당·자유한국당·바른미래당 원내수석부대표간 합의로 대정부질문 이틀차부터의 일정이 10월초로 연기됐다.
지난 9월13일 더불어민주당·자유한국당·바른미래당 원내수석부대표간 합의로 대정부질문 이틀차부터의 일정이 10월초로 연기됐다.

이에 따라 대(對)정부질문은 물론 인사검증 작업도 낮은 여론의 주목도 아래 졸속으로 진행할 위기에 처했다. 다만 자유한국당·바른미래당 등이 강력히 반발해 14일(외교·통일·안보)·17일(경제)·18일(교육·사회·문화) 대정부질문을 각각 10월 1일·2일·4일로 조정하기로 교섭단체간 합의를 이뤘다.

이와 함께 19일로 예정됐던 정경두 국방부 장관 후보자, 이종석 헌법재판관 후보자 인사청문회를 17일로 앞당겼다. 19일과 20일에는 각각 여당 현역 의원인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 청문회도 예정돼 있다.

최근에는 청와대가 국회의장단과 여야 5당 대표를 평양 남북정상회담에 총동원하려는 계획을 밝혔다가 여당 출신 국회의장으로부터도 거부당하는 '역풍'을 맞기도 했다.

3부 중 2부(행정부·입법부) 요인이 대통령 해외순방에 동행한 전례가 없는데, 비핵화를 확약하지도 않은 북한 땅을 밟자고 대통령보다 '비서실장'이 먼서 나서서 대국회 제안을 했다. 국회에서 여야간 정상회담 계기 방북은 하지 않기로 공감대를 이룬 상황에 예고없이 공개 제안한 것이었다.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이 지난 9월10일 춘추관에서 '초청 기자회견' 형식을 통해 국회의장단과 국회 외교통일위원장, 여야 5당 대표 9명을 지목해 9월18일 평양 남북정상회담에 동행할 것을 공개 제안했다. 야권과 국회 측에선 사전 협의 없이 대통령의 비서실장이 나섰다는 등 이유로 즉각 거부했다.(사진=연합뉴스)

지난 10일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의 이런 '초청 기자회견'이 언론에 보도되자 제1·2야당 대표는 즉각 거절했다. 보도 1시간여 만에 문희상 국회의장마저 야당 소속 부의장들과 협의해 '평양 동행 거부' 입장을 냈다. 국회 측에서는 "청와대가 무례했다"는 불만이 제기됐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이튿날(11일) 문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국회와 야당에 "제발 '당리당략'을 거두라"고 다그쳤다. 대통령의 비호를 받은 임종석 실장도 '페이스북 글'을 통해 "주요 정당 대표분들이 우리 정치의 '원로급 중진'들"이라며 "이미 '당리당략'과 정쟁으로 어지러운 한국 정치에 '꽃할배'같은 신선함으로 우리에게 오셨으면 한다"고 거들었다.

이런 행태를 두고 김성태 한국당 원내대표는 "정당 대표가 장기판의 박카스 뚜껑(卒)도 아닌데 왜 이렇게 졸 취급을 받는지 납득가지 않는다"며 "정기국회는 대의기관의 꽃인데, 국회는 망쳐도 추석 밥상에 자신들만의 '평화 잔칫상'은 꼭 챙기겠다는 남북간 일정관리에 탄식이 절로 나온다"고 개탄했다.

임 실장은 지난 4월초 청와대 참모진 주도로 국무회의의 충실한 심의절차 대부분을 건너 뛴 대통령 헌법개정안 처리와, 개헌 절차 내 위헌소지를 제거하기 위한 국민투표법 개정을 정치권에 공개 촉구하면서도 '월권 논란'을 빚은 바 있다.

자료사진=연합뉴스
자료사진=연합뉴스

사법부를 대상으로 한 '제왕적 대통령' 행보 역시 도마 위에 오른다. 지난 13일 문 대통령이 대한민국 사법부 70주년 기념사는 주류 언론에서조차 '헌법 위의 대통령'이라는 우려를 낳게 했다.

기념사 내에는 공정한 사법을 상징하는 '삼권분립'과 '사법부 독립'이라는 어휘가 등장했지만, 현 정권발(發) 구호인 '촛불'과 '민주화' 등 정치적 용어가 따라붙었다.

대한민국 건국 70년과 함께한 사법부 역사에 대해서도 이른바 '민주화 운동'에 입각한 관점으로만 논했다.

특히 문 대통령은 "1700만개의 '촛불'이 헌법정신을 회복시켰고 그렇게 회복된 헌법을 통해 국민주권을 지켜내고 있다"고 전제하며 "저는 '촛불정신'을 받든다는 게 얼마나 무거운 일인지 절감하고 있다. 그 무게가 사법부와 입법부라고 다를 리 없다"고 압박했다.

또한 "지난 정부 시절의 사법농단과 재판거래 의혹이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뿌리째 흔들고 있다"고 단언한 뒤 "의혹은 반드시 규명돼야 하며 만약 잘못이 있었다면 사법부 스스로 바로잡아야 한다"고 '훈시'했다. 대통령이 앞장서서 사법부 신뢰를 훼손한 격이 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13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중앙홀에서 열린 사법부 70주년 행사에 참석해 있다. 오른쪽부터 이진성 헌법재판소장, 문 대통령, 김명수 대법원장.(사진=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13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중앙홀에서 열린 사법부 70주년 행사에 참석해 있다. 오른쪽부터 이진성 헌법재판소장, 문 대통령, 김명수 대법원장.(사진=연합뉴스)

이른바 '사법농단·재판거래 의혹'은 자신이 '법관 기수 파괴' 논란을 빚으면서도 임명한 좌파 법조인단체 회장 출신 김명수 대법원장이 전임 양승태 대법원장 체제를 겨냥해 조장해 온 것이다. 

문재인 정권에서 소위 '양승태 사법농단 프레임'을 조장하자, 북한 정권과 그 추종세력 등은 이를 종북적 당 강령 추구로 인한 구(舊)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을 부정하는 근거로 운운하기 시작했다.

문 대통령은 한술 더 떠 "(사법부가) 나아가 '사법부의 민주화'라는 대(大)개혁을 이뤄낼 것", "일선 법관들의 진정성 있는 개혁 노력에서 사법부의 희망을 볼 것"이라고 했다. 기념사에서 거론한 '사법부 독립'이 한층 무색해졌다는 지적이다.

김명수 대법원장도 같은날 기념사에서 문 대통령의 하명(下命)을 받들 듯 "현안(사법농단, 재판거래 의혹 등)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과 관련자들에 대한 엄정한 문책이 필요하다"고 사견(私見)을 밝혔다.

그러면서 "대법원장으로서 일선 법관의 재판에는 관여할 수 없으나"라고 일부 '아쉬움'을 드러낸 뒤 "사법행정 영역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수사 협조를 할 것"이라며 대통령과 나란히 "진실 규명"을 주장했다.

윤영석 자유한국당 수석대변인(경남 양산시갑·재선).(사진=연합뉴스)

이와 관련해 야당에서는 "3권 분립의 근간을 흔드는 매우 위험한 '제왕적 권력'의 발언"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윤영석 한국당 수석대변인은 14일 오후 논평에서 "대통령이 사법부 수사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내리고 3권 분립의 한 축인 대법원장이 이를 받든 것"이라며 이같이 지적했다.

또 "오늘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도 (사법농단 의혹 관련) 국정조사나 법관 탄핵, 특별재판부 관련된 입법을 진행하겠다는 주장이 나왔다"며 "대통령과 민주당을 비롯한 정치권의 사법부에 대한 흔들기와 개입은 사법부의 독립성을 훼손하고 민주주의 근간인 3권 분립 정신에 위배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영석 수석대변인은 아울러 "사법부에 촛불정신을 받들라는 것은 결국 특정 성향의 판결을 강요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사법부에 대한 특정 코드 인사, 사법 수사 개입, 촛불정신 강요 등 사법부 흔들기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흔드는 것"이라고 성토했다. 이어 "한국당은 대통령과 집권 여당의 사법부 독립성 침해행위에 강력히 맞설 것이며, 사법부가 3권 분립의 토대 위에 국민의 신뢰를 다시 회복할 수 있도록 앞장설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기호 기자 rlghdlfqjs@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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