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PenN 기자

더 이상 어울리는 수식어가 없을 정도다. 7월 고용참사에 이어 최근 발표된 통계청의 8월 고용 동향 통계는 '고용학살'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올해 7월 전년동기(同期) 대비 고용이 5000명 증가한데 이어 8월엔 3000명 증가했다. 이같은 현상에 대해 '인구 고령화에 따른 생산가능인구의 감소 탓'이라고 TV토론회까지 나와 주장하는 몇몇 부류의 곡학아세(曲學阿世) 인사는 정치병에 걸린 앵무새들에게 한 순간의 위안이 되었을지 모르지만, 피부로 느낄만큼 일자리는 학살되고 있다.

통계는 거짓을 말하지 않지만 똑같은 통계를 가지고 정반대의 말을 한다면 한쪽은 분명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지금은 완전고용수준이다. 취업자수 감소는 생산가능인구를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추가로 "1958년 개띠가 죄다 퇴직했으니 1년 전보다 일할 수 있는 사람이 줄어 들어 취업이 줄었다"는 주장도 있다.

'인구구조 탓'에 대해선 지난달 22일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본인 스스로도 "새로운 노동 공급구조에선 (전년동기대비) 최소 10만명에서 15만명이면 정상적인 취업자 증가 수"라고 말한 바 있지만, 그놈의 '인구구조 탓'은 모든 것들이 남 탓인 그의 추종자들을 거쳐 '이명박근혜 탓' 정도의 흔한 정치적 레토릭으로 변질되어가고있다. 

취업자 증가폭이 감소한 것은 인구구조의 변화도 한 요소로 작용하는 점을 전적으로 부인하진 않는다. 하지만 학자들 사이에서 검증되지도 않은 소득주도성장론이 무조건 옳다는 맹목성이 국민들을 끝까지 실험실의 쥐로 남겨두고 있다.

심지어 몇몇 '방구석 평론가'들은 자기가 취업을 하지 못하거나, 주변 가족이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피해를 입어도 "경제의 체질이 바뀌면서 수반되는 통증"이라는 청와대의 해명에 고개를 끄덕거린다. 국가가 망해도 차베스를 끝까지 사랑하는 베네수엘라 국민들을 보고 있자면, 사실 대한민국만 유별나게 이상한 것은 아닐지 모른다.

그렇지 않아도 국내에서 소위 유명강사를 자처하는 한 사람이 베네수엘라는 정부의 실패가 아닌 석유가격의 하락으로 망했다고 주장하는 유튜브 영상도 있다. 조회수가 무려 20만이다. 석유가격이 하락해서 망했다는 논리라면 사우디아라비아·러시아·이라크·미국·중국·이란·브라질·카타르·쿠웨이트·멕시코 등 주요 산유국들은 70년대 오일쇼크가 끝나는 시점에서 베네수엘라와 함께 다 망했어야 한다. 베네수엘라는 부의 양극화를 해소하고 서민들도 살만한 나라를 만들겠다며 ‘최저임금 인상’, ‘정부 의료지원’, ‘무상교육’, ‘저소득층을 위해 음식 가격 보조금 지급’ 등을 내세웠고, 베네수엘라의 최대 석유회사인 PDVSA를 국유화했다. 그 과정에서 국유화를 반대하는 경영진들과 직원들 18000명을 해고했으며 결과는 석유 생산량 20% 감소로 이어졌다. 이 강사는 최근 고용쇼크는 인구구조의 변화 탓이며, 소득주도성장이 옳다는 강의를 하고 있다.

최근 발생하고 있는 모든 경제난을 전부 '인구구조 탓'으로 돌리는 조악함에 일조하고 싶지는 않았던지 경제분야의 대표적 국책 연구기관인 KDI는 8월 고툥통계가 나오기 하루 전인 11일 "7월 취업자 수 증가폭(5000명)의 급격한 위축은 인구구조 변화와 경기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정도였다"고 일종의 '양심선언'을 했다. 이처럼 KDI 마저 '인구구조 탓 좀 그만해라'라는 신호를 보내자 청와대가 이번엔 "경제의 체질 개선에 따른 통증"이라는 해명을 내놓았다.

기어코 자신들의 정책이 문제가 아니라 '체질'이 문제라는 청와대의 해명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대기업이 적어서 문제인 한국 경제에서 연 매출이 대기업 수준인 독일의 중견기업들을 기어코 '중견'기업이라고 우기며 비교대상으로 두고, '한국 경제의 체질적 문제'는 끝까지 '대기업의 경제력 집중'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보통 2,30대 사이에선 이것을 '쉐도우 복싱'이라고 부르는 데, 스스로 무언가를 상상으로 만들어내고 허공에 펀치를 날린다하여 '쉐도우 복싱'이라고 표현한다. 멀쩡한 경제 생태계에 정부가 나서서 쉐도우 복싱을 해대니 기업들이 투자는 함부로 못하겠고, 기업의 본질인 수익창출과는 거리가 먼 상생 경제가 유행이니, 기업들은 정부 눈치를 보며 고용을 늘리긴 해야하는 상황이다.

청와대가 말한 체질 개선이란 공정거래위원회가 기업의 지배 구조에 대해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강요하고, 원가에 대한 기준을 정부가 세우고, 토지공개념이 헌법에 있다며 재산권에 대한 보호라는 개념은 쏙 빼놓아 놓는 것 등을 일컬어 '체질 개선'이라 통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체질 개선은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정부의 시장개입', 나아가 '사유재산의 침해'다.

예시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과격한 소득주도성장론은 학계 그 어디에서도 제대로 인정받은 곳이 없지만, '정부의 시장개입'과 그로인한 '사유재산의 침해'가 국가 경제를 악화시킨다는 이론은 널리고 널렸다. 최근 청와대가 새로 내세운 '포용적 성장'이라는 단어를 본래 처음 등장시켰던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의 저자인 대런 애쓰모글루와 제임스 로빈슨 조차도 남북한 제도를 비교하며 '사유재산의 보장'을 가장 중요한 차이점으로 꼽았다. 하지만 경제학자들이 말한 '포용적 성장'이란 단어는 한국에 들어와선 어찌된 일인지 다같이 잘살자는 사회주의적인 수사로 둔갑되어버렸다. 삼성같은 기업 10개만 있으면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도약한다는, 에쓰모글루가 방한 당시 했던 한 마디는 한국 사회에선 '친대기업', '친재벌', 심지어 '극우 경제학자'로 몰릴 만큼 위험한 발언이라는 생각에 한국이 선진국으로 갈 길은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대학 교수가 극우 경제학자로 몰린 바 있다. feat. 이데일리의 장영락 기자)

아직 내 주변에 취직을 못한 친구들이 많다. 청년실업률은 10%를 넘었고, 알바하면서 괜찮은 직장을 생각하는 친구들까지 포함한 넓은 의미의 청년실업률로 본다면 역대 최고인 23%까지 올라갔다. 내가 능력을 키워서 좋은 일자리를 가지려는 노력이 첫째이긴 하겠지만, 내 일자리는 투표와 선거로 만들어지거나 지켜지기도 한다. 선거와 투표에 던져지는 표 하나가 소중한 권리라는 것은 다들 알지만, 누군가는 그 소중한 권리로 일자리 감소에 일조했을지 모른다. 그에 따른 책임이나 경각심은 상대적으로 가볍기 때문이다.

홍준표 기자 junpyo@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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