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訪北 동행요구 거절당한 뒤 文의 '당리당략' 비난에 동참
앞서 9.5 대북특사단 출발 이틀전 '대통령급 훈시'…7월엔 대통령과 동시 휴가
'비서실장의 비서실장' 격 靑정책조정비서관 신설, "대통령 인사권" 탁현민 사표 반려도
6월28~29일 대통령 병가휴식 중 靑비서실이 업무보고 열람 막아
4.27 판문점 회담, 2월 평창 北대표단 방한 때도 '앞장서는' 행보 일관
對국회 개헌·국민투표법 개정 압박, 피감기관 출장사례 공개 지시, 前정부 때리기 전력
反美親北 학생운동권 '전대협' 출신으로 강령 동의여부 물은 野의원에 반발

청와대가 문재인 대통령의 평양 남북정상회담에 국회의장단을 비롯한 입법부 요인들을 '따라 오라'고 공개 제안한 지 1시간여 만에 무산되는 일이 10일 있었다. 당초 예상된 야권(野圈)뿐만 아니라 문희상 국회의장까지 즉각 회담 동행 거부 입장을 정하는 '변수'가 작용한 데 따른 것이다. 당초 국회 주도 남북국회회담을 도모하던 문희상 의장이 "(청와대의 공개제안은) 입법부 수장(首長)으로서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라고 불편한 심기마저 드러냈다는 후문이다. 한 언론 보도에 따르면 국회 내에서는 "청와대가 무례하다"는 말까지 나왔다.

이를 대북(對北)문제에 있어 이례적인 당청(黨靑)간 갈등이 발생한 것으로 정치권 안팎에선 주목한다. 전례 없이 행정부·입법부 2부 요인을 국외 일정에 총동원하겠다는 제안을 대통령이 아닌 그 비서실장이 내놓은 게 '선을 넘은 것'이라는 평가마저 나온다. '2018 평양정상회담 준비위원회 위원장' 직함을 달고 있었다고 하나, 국회·정당에 대한 정상회담 동행 요구를 한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의 '월권(越權)' 논란이 커지고 있다.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이 지난 9월10일 춘추관에서 브리핑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이 지난 9월10일 춘추관에서 브리핑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정규재 펜앤드마이크(PenN) 대표 겸 주필은 이와 관련해 "임종석은 지난번에는 대북 특사에 때 아닌 '대통령급 훈시'를 내놓아 사람을 놀라게 하더니 '대통령 위의 비서실장'이라는 세간의 풍문을 입증이라도 하듯 이런 발표를 내놓았다"며 "무엇보다 북한 핵폭탄에 대해선 '아무래도 좋다'는 식이다. 참 이런 저질국가에서 살아야 하나"라고 논평했다.

임종석 비서실장의 월권행위를 빗대어 '상왕(上王)설', '비서실세', '십상시(중국 후한말 영제 때 섭정·전횡한 환관 10명)'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박근혜 정부 시절 몇몇 청와대 비서를 두고 말이 많았지만 임 실장의 행태는 '비서의 전형적인 국정농단'이라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9월11일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 페이스북 글 캡처.

문 대통령은 11일 오전 국무회의에서 임종석 실장을 비호하듯 방북 동행을 재차 요구하면서, 국회와 야당에 "제발 '당리당략'을 거두어주기 바란다"고 비난하고 나섰다. 이를 기다렸다는 듯 임 실장은 이날 오후 개인 페이스북을 통해 '당리당략'을 거론하며 여야 대표들에게 초청을 수용하라고 요구했다.

그는 "우연인지 몰라도 주요 정당의 대표 분들이 우리 정치의 원로급 중진들이다. 저는 이분들의 복귀 목표가 '권토중래'가 아니라 '희망의 근거'를 보여주는 것이었으면 한다"면서 "이미 '당리당략'과 정쟁으로 어지러운 한국 정치에 '꽃할배(꽃보다 할배)'같은 신선함으로 우리에게 오셨으면 한다"고 적었다. 정치적 수사를 동원했지만 사실상 문 의장과 야권의 반대를 '당리당략'으로 치부하며 압박했다는 해석이다.

'대통령의 그림자'라는 비서의 본분을 망각한 듯한 임 실장의 행보는 하루 이틀이 아니다. 전임 박근혜 대통령의 마지막 두 비서실장(한광옥·이원종)을 "허수아비"라고 깎아내렸던 현 집권당도 임 실장과의 '상명하복' 식 공조에 한계를 느끼기 시작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박근혜 정부 때 이미 해체된 자문그룹을 소재로 삼은 '십상시 프레임'을 조장하고, 결국 '사인(私人) 최순실이 국정을 좌지우지했다'는 근거가 부족한 낭설로 탄핵 정변에 성공한 여당 측에 임 실장의 행보는 득보다 실이 많을 것이라는 게 정치권 안팎의 중론이다.

가장 최근 사례를 보면, 임 실장은 지난 3일 청와대 직제상 의전서열이 높은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을 수석으로 한 9.5 대북특별사절단에게 '페이스북 훈시'를 했다.

'북한 비핵화'를 직접 목표로 거론하지 않은 채, 북한도 아닌 미국을 설득하는데 어려움에 직면했음을 시사하며 특사단에 "시대사적 전환"을 독려하고 나서는 모습이었다.

같은날 문 대통령이 오후 2시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특사단 파견 취지를 직접 설명하기에 약 4시간 앞서, 특사단 훈시에 먼저 나섰던 것이기도 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7월30일부터 닷새간 여름휴가를 보낼 동안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도 이례적으로 동시에 휴가를 떠났다.

임 실장은 지난 7월30일부터 닷새간 여름 휴가에 돌입한 문 대통령과 같은 기간 휴가를 보낸 적도 있다. 과거 실장들이 대통령과 휴가 기간을 별도로 잡았던 것에 비하면 이례적이다.

특히 대통령비서실장은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국정감사 등 출석 요구가 있어도 민정수석비서관과 동시 출석을 하지 않는 게 관례일 정도로 청와대 내부에선 중책(重責)으로 꼽힌다. 하지만 당시 청와대는 "대통령과 비서실장이 교대로 휴가를 가면 오히려 업무 공백이 길어진다"는 이유를 댔다.

6월말부터 '임 실장의 업무가 과중하다'는 청와대 내부 판단에 따라 '업무조정비서관'이 신설될 것으로 알려진 것도 '비서실세 정치'를 가늠케 했다. 

한달여간 청와대 안팎에선 '비서실장의 비서실장' 격인 이 직의 신설 가능성이 거론됐고, 실제로 8월6일 더불어민주당 싱크탱크 민주연구원 부원장 출신 김영배 '정책조정비서관'이 임명됐다.

청와대 임종석 비서실장과 탁현민 의전비서실 선임행정관.(사진=연합뉴스)

'문재인의 연출가' 탁현민 청와대 의전비서관실 선임행정관이 임명 초부터 지속된 '왜곡된 성(性)인식' 논란에 부담을 겪은 듯 6월말 "이제 정말 나가도 될 때가 된 것 같다"며 사의를 표명했을 때, 7월초 임 실장이 나서 "첫 눈이 오면 놓아주겠다"며 사표를 직접 반려한 것도 월권 의혹을 낳았다.

임 실장은 지난해 8월22일 국회 운영위 전체회의에 출석, 탁현민 행정관 사퇴를 촉구하는 야당 의원들에게는 "대통령의 인사권이 존중되는 게 옳다"는 명분을 들어 맞섰지만, 정작 자신이 탁 행정관의 사표 반려 주체로 행동했다.

문 대통령이 6.25 남침 전쟁 제68주기인 6월25일부터 일주일간 '감기 몸살'을 이유로 공식 일정을 비웠을 때에도 임 실장 등 참모진의 행적이 극히 이례적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문 대통령의 잠적은 6.25 관련 일정 '패싱'에 이어 6월27일 해외정상급인 유네스코 사무총장 접견, 당정청 주도 제2차 규제혁신점검회의 등 굵직한 행사를 불과 2시간여 앞두고 취소해 이목이 쏠렸다.

문 대통령에 대한 '건강이상설', '북한 접촉설' 등이 회자되고 언론의 추궁이 잇따르자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27일 오후 늦게 '몸살 감기' 때문이라고 수습 차원의 브리핑을 했다.

이튿날 방한(訪韓) 중인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 접견 일정도 취소된 가운데, 문 대통령의 28~29일 이틀간 연차휴가가 결정됐다. 김의겸 대변인은 28일 임 실장이 주재한 현안점검회의에서 "28~29일 문 대통령이 쉬는 동안 참모진은 정식보고서나 일체의 메모 형태 등 어떤 보고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전했다. 

해당 기간 문 대통령이 휴식을 취한 것으로 알려진 관저를 직접 찾아 상태를 살핀 인물도 임 실장으로 전해졌다. 7월7일 TV조선은 문 대통령이 연차휴가 동안 건강 회복에 집중했다고 전하면서, 비서실이 청와대 업무 프로그램인 '온나라'에 올라오는 참모진의 보고 문건을 "대통령이 열람하지 못하게 열람 범위를 제한"했다고 보도했다.

사진=TV조선 보도화면 캡처
사진=TV조선 보도화면 캡처

임 실장은 첫 준비위원장을 맡았던 4월27일 판문점 남측 남북정상회담 당시에도 '앞장서는' 행보로 눈길을 끌었다. 

회담 당일 오전 군사분계선을 넘어 판문점 남측으로 내려온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측에게 문 대통령 수행원들을 소개하는 자리에서, 임 실장은 정의용 안보실장을 제치고 가장 앞줄에 섰다. '김정은 여동생' 김여정 북한 조선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에게 먼저 다가가 악수를 청했다.

평화의집 공식 회담에 돌입하기에 앞서 임 실장은 김정은에게 다가가 눈을 맞추려 시도하거나 활짝 웃는 얼굴로 함께 기념촬영을 하는 등 친밀한 분위기 조성에 가장 앞장서기도 했다.

올해 2월11일에는 김여정 등 평창 동계올림픽 북한 고위급 대표단을 상대로 조명균 통일부 장관이 아닌 임 실장이 환송 만찬을 주재한 것도 '비서가 아닌 부통령이라도 되느냐'는 비판을 초래했다.

지난 4월12일 청와대는 김기식 당시 금융감독원장(14일 만에 낙마)의 피감기관 갑질·로비성 외유 의혹을 해명하겠다며 임 실장 명의로 직접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4가지 질의사항을 보냈고, 중앙선관위 측에서 "그 중 3가지가 선관위 답변 사항이 아니"라는 반응이 나오게 했었다.

특히 피감기관의 지원을 받아 해외출장을 간 19·20대 국회의원 규모를 민주당이 조사한 결과라며 공개하기도 했다. 이런 조사는 임 실장이 지시했다는 후문이다. 이때를 전후해 김기식 전 금감원장이 임 실장 등과 같은 반미 학생운동권 출신이어서 청와대의 적극 비호를 받는다는 관측이 제기됐다.

지난 2월21일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한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이 단상에 서서 발언하고 있다.(사진=국회방송 캡처)

임 실장은 국회에 직접 헌법 개정은 물론 국민투표법 처리를 압박하는 '선수'로 활약한 전례도 있다. 그는 2월21일 국회 운영위 전체회의에 출석한 가운데 이른바 '6월 개헌'을 목표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국회에서 속도를 내줄 것으로 기대한다"며 "2월말까지는 국회가 의견을 모아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여당안(案)조차 없는 상황에서 야권의 반대로 국회 개헌안 마련이 무산되자, 청와대는 참모진의 손을 거쳐 대통령 개헌안을 발의하고 국회 의결을 요구하고 나섰다. 4월4일에 이르러 임 실장은 자신의 명의로 '국민투표법 개정촉구에 대한 입장문'을 내 "개헌 내용에 대한 합의를 떠나 개헌의 진정성이 있다면 (일부 위헌 판단을 받은) 국민투표법 개정을 우선 진행해야 할 것"이라고 국회를 다그쳤다.

특히 "정치권이 개헌을 하겠다면서 정작 국민투표법 개정에 협조하지 않는 것은 매우 이율배반적"이라며 "이를 바로잡지 않고서는 헌법기관의 책무를 다 한다고 볼 수 없다"고 정치권을 훈계하기도 했다.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지난해 10월12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브리핑을 열고 "박근혜 정부에서 세월호 사고 당시 상황보고 일지를 사후에 조작한 정황이 담긴 파일을 청와대에서 발견했다"고 주장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지난해 10월12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브리핑을 열고 "박근혜 정부에서 세월호 사고 당시 상황보고 일지를 사후에 조작한 정황이 담긴 파일을 청와대에서 발견했다"고 주장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이밖에 임 실장은 지난해 10월17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월권 논란 대상이 된 바 있다. 김진태 자유한국당 의원이 임 실장 명의로 정부 전(全)부처에 '적폐청산TF 구성'을 요구하는 공문이 하달됐다고 폭로하며 "비서실장이 장관에게 업무지시를 해도 되는 거냐"고 지적했고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도 이런 비판에 동조했다.

닷새 전인 10월12일에도 임 실장은 세월호 참사 당일 박 전 대통령의 행적이 '7시간 30분 의혹'이라는 취지로 언론에 공표하는 등 '전(前)정부 때리기'에 직접 나섰다.

작년 12월 '국교 단절설'까지 거론되던 아랍에미리트연합(UAE)에 특사로 비밀리에 파견을 가 하루 뒤에야 언론에 해당 사실이 알려지도록 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한편 임 실장은 1980년대 학생운동권의 대표적인 친북·반미 단체였던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3기 의장 출신으로 '임수경 불법 방북 사건'을 주도해 실형(實刑)을 산 전력이 있다. 그는 이후 공개적으로 '전향'을 선언한 적이 없다.

임 실장은 지난해 11월6일 국회 운영위 전체회의에 출석한 가운데 구(舊) 통합진보당과 같은 '진보적 민주주의' 등 용어를 사용한 전대협 강령에 대한 동의 여부 묻는 전희경 한국당 의원에게 제대로 답변하지 않고 "모욕적"이라는 감정적 언사로 대응하기도 했다.

한기호 기자 rlghdlfqjs@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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