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 〈왕좌의 게임〉
겨울이 오고 있다Winter Is Coming!
저들은 왜 대한민국의 경제, 외교, 군사력을 무너뜨리고 있는 것일까.
20년 전 IMF보다 더 혹독한 경제 한파의 예감.
이 겨울, 우리가 살아남을 길은 무엇인가.

김규나 작가
김규나 작가

조지 마틴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은 영주들이 저마다 왕이 되겠다며 권력을 다투는 과정을 그린다. 왕권에 대한 욕망은 없지만 친구이자 세븐 킹덤의 최고 지배자였던 로버트 왕의 돌연한 죽음에 의심을 품고 있던 북부의 영주 네드 스타크는, 왕위 계승자가 왕비와 그녀의 쌍둥이 동생의 근친으로 낳은 아이임을 알게 되자 사실을 밝히려다 반역으로 몰려 참수 당한다. 이후 스타크 집안은 풍비박산, 그러나 살아남은 아이들은 저마다 자신의 험난한 운명을 헤쳐 가며 한 발 한 발 성장해나간다.

왕세자비로 예정되었다가 반역자의 딸로 전락한 스타크 가의 장녀 산사는 엄마의 어린 시절 친구였던 베일리시 경을 의지하게 된다. 한때 왕국의 재무를 책임지는 중책을 맡기도 했으나 사창가 포주로 돈을 번 이력이 있는데다 부와 성공을 위해서라면 못할 일이 없는 모사의 달인 베일리시. 그는 젊은 날 자신의 사랑을 받아주지 않았던 캐틀린과 그녀의 남편 네드에게 원한을 품고 있다가 두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간 장본인이다. 캐틀린의 동생을 유혹하고 살해하여 그녀의 영지를 차지하기도 한 베일리시는 북부를 되찾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감언이설로, 산 채로 피부를 벗겨 고문하길 즐기는 사이코패스와 산사를 결혼시키기도 하고, 가문의 비극 이후 가까스로 재회한 여동생 아리아와의 사이조차 간교하게 이간한다. 목적은 단 하나, 스타크 가의 장녀 산사에게 있는 북부패권의 정당성을 가로채 최후의 왕좌를 차지하려는 것이다.

“그 사람의 동기를 알고 싶으면 최악의 이유를 생각해봐. 그 사람이 그런 말을 하고 그런 짓을 하는 궁극의 이유가 뭘까. 아리아는 이곳에 왜 왔을까. 그 아이가 최종적으로 얻으려는 것은 무엇일까.”

베일리시가 속삭일 때 산사는 그를 의심하면서도 아리아가 정말 자신을 배신하고 성주가 되려는 것이 아닐까, 잠시 불안해한다. 하지만 이미 여러 차례 죽을 고비를 넘겼고 끔찍한 결혼생활에서 가까스로 탈출하여 또 한 번 목숨을 건진 산사는 더 이상 순진하기만한 어린 소녀가 아니었다. 그녀는 베일리시의 음모를 꿰뚫고 마침내 그를 처단한다. 산사가 그의 검은 속내를 알아차릴 수 있었던 이유는 숱한 고통을 통해 몸으로 체득한 지혜 때문이기도 하지만, 베일리시가 가르쳐준 교훈을 역으로 해석한 덕분이다.

“누군가의 동기를 이해하려고 할 때면 나는 놀이를 하죠. 최악을 가정해보는 거예요. 당신이 나와 동생 사이를 이간하는 궁극적 이유가 뭘까. 난 배우는 게 늦어요. 하지만 마침내 배우긴 하지요.”

90퍼센트에 육박한다던 국정수행 지지율이 40프로대로 떨어졌다고 한다. 그마저도 신뢰할 수는 없지만 국내 여론과 통계를 아무리 조작해도 더 이상 하락세를 감추기 어려운 모양이다. 공산주의 사회에서나 가능한 공유경제니 포용정책이니 하는 해괴한 말을 운운하며 ‘국민의 삶을 국가가 책임지겠다.’고 떠들어댄들, 민심 저 밑바닥에서부터 불만과 불안과 공포가 부글부글 끓어오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국민은 뜻밖에도 정치나 외교, 경제나 안보의 점진적 변화에는 한없이 둔감한 존재다. 언론이 진실을 가리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거짓 사기 탄핵의 비열한 내막과 무죄한 대통령이 수감되어 있어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 하나하나 드러나고 있는데도 대부분의 국민은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는다. 남과 북을 경계 지으며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주던 휴전의 장벽이 하루하루 낮아지고 있는데도, 외교적으로는 고립을 자처하고 있는데도 국민 대부분은 국가적 자살 위기를 실감하지 못한다. 다양한 경제지표들이 바닥을 치고, 적자기업이 속출하고, 본사나 공장을 외국으로 옮겨가는 기업이 증가하는 가운데 기업인 94퍼센트가 우리나라의 경기 침체 국면을 인정했지만 서민 입장에서 경제 위기를 체감하기는 여전히 무리다. 공기업의 적자가 불어난다고 해도, 탈 원전 정책으로 1만 개의 일자리가 곧 사라질 예정이라고 해도, 강남의 집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가계 부채가 늘어나고, 청년실업률이 18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고 해도 잘 이겨내겠지, 미래를 낙관하는 데 우리는 익숙하다. 소비심리가 위축되고 경제 한파에 대한 두려움이 실감되는 한계선은 그보다 훨씬 더 낮고 훨씬 더 가까운 곳에 있다. 1,700원 대를 향해 10주 연속 상승 중인 휘발유 값과 1년 전과 비교하여 40프로 이상 폭등한 쌀값, 그리고 마트에서 집어 들었다가 내려놓을 수밖에 없는 8천5백 원이나 하는 시금치 한 단.

우리나라의 불황과 반대로 세계 경제는 호황이다. 미국만 해도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지 2년도 되지 않았는데 실업률은 현저히 떨어졌고, ‘기업하기 좋은 미국’이라는 슬로건 아래 390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해내며 최고의 경제성장률을 과시하고 있다. 미국과 손잡은 일본 또한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우리나라 청년들의 원정 취업조차 환영할 정도로 상승세를 타는 중이다. 촛불광란으로 법치를 무너뜨리고도 평등과 민주와 정의를 얻었다며 좁고 어두운 우물 안에서 춤을 추는 동안 대한민국의 경제만 끝을 모르고 추락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왜 미국, 일본과 손잡고 동반상승할 수 있는 기회를 저버린 것일까. 왜 중국과 북한 편에 서서 나날이 배고프고 밉살스런 천덕꾸러기가 되어가는 것일까.

국민이 정부에게 바라는 것은 단순하면서도 엄중하다. 안전한 국가에서 나와 내 가족이 자유롭고 풍요롭게 사는 것. 그것이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이며 정치인들에게 투표하는 이유, 땀 흘려 일해서 번 돈을 아까운 줄 모르고 국가에 세금으로 내는 이유이다. 그러한 책임과 의무를 수행하지 않는 정부에겐 세 가지 변명이 가능하다. 무능하거나, 게으르거나, 추종 세력에게 나라를 바치고 얻게 될 부귀영화만을 꿈꾸고 있거나.

<왕좌의 게임>에는 권력을 빼앗긴 적들의 칼, 수백 개를 녹여 만든 왕좌가 나온다. 왕위란 칼로 빼앗고 피로 지켜야 하는 자리라는 뜻만은 아닐 것이다. 권력자란 칼날 위에 앉는 사람이며 국민의 안전과 자유를 위해 한시도 편하게 쉴 수 없는 존재라는 의미가 더 크게 담겨 있을 것이다. 저들은 과연 권력의 뜻을 알고 있는 사람들인가. 국민의 안위를 염려하며 좌불안석, 노심초사 하는 사람들인가. 이쯤에서 우리는 냉정하게 자문해봐야 한다. 저들은 왜 대한민국을 점점 위기의 나락으로 몰아가는 것일까. 저런 정책, 저런 발표, 저런 언행을 하는 최악의 궁극적 이유는 무엇일까.

어느 날 갑자기 몰아친 운명의 소용돌이에 휩쓸려가던 산사는 처음엔 베일리시 경을 믿고 의지하지만 온갖 죽을 고비를 넘기고서야 그가 진정한 보호자가 아니라는 것을, 그의 사리사욕을 위해 자신이 이용되고 있다는 것을,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것은 오직 자신뿐임을 뒤늦게 깨닫는다. 우리는 얼마나 더 주머니가 털리고, 얼마나 더 자유를 속박당하고, 얼마나 더 소중한 것들을 잃어야 저들의 악의를 깨닫게 될까.

‘겨울이 오고 있다Winter Is Coming!’

이 말은 스타크 집안에 내려오는 오랜 가언家言이다. 지금은 평온할지라도 언제 닥쳐올지 모를 위기와 고난에 늘 대비하라는 교훈이기도 하지만, 작품 속 세븐 킹덤의 계절이 실제로 수년 동안 계속되던 여름에서 기나긴 겨울로 접어드는 중이기도 하다. 그러나 겨울보다 더 두려운 것은 북쪽의 얼음 장벽 너머에 사는 죽은 자들의 군대, 화이트워커다. 현실을 정확히 인식하는 몇몇 리더는 세븐 킹덤의 패권 다툼을 당장 멈추고 그들의 침략에 대비해야 한다고 영주들을 설득한다. 하지만 일부 권력자는 합의를 배반한 채 다른 영주들이 북쪽에서 화이트워커와 전쟁을 치루는 사이 세븐 킹덤의 모든 영토를 차지할 야심으로 어리석은 미소를 짓는다. ‘죽은 자들이 이기면 살아 있는 우릴 다 죽일 거고, 산 사람들이 이기면 그들을 배신한 우리들을 다 죽이겠지.’라는 간단한 게임의 법칙도 이해하지 못한 채.

계절이 종말을 고하듯 찬바람이 불고 먹구름이 몰려오고 눈송이가 떨어진다. 언제 끝날지 모를 기나긴 겨울이 시작되는 순간, 화이트워커 무리가 마침내 수천 년 가로막혀있던 장벽을 무너뜨리고 남쪽으로 진군해 내려온다. 베일리시의 음모에서 벗어났으나 더 큰 위기가 닥쳐오고 있는 것을 예감한 듯, 늑대를 가문의 문장紋章으로 삼는 스타크 가의 두 자매는 서리와 폭설로 하얗게 뒤덮여가는 세상을 내려다보며 아버지가 했던 말을 가슴에 뜨겁게 새긴다.

“겨울이 오고 눈보라가 치면, 외로운 늑대는 죽지만 무리는 살아남는다.”

미국의 독립전쟁 당시 벤저민 프랭클린이 내건 ‘뭉치지 않으면 죽는다(Join, or Die)는 구호와 함께 1948년 8월15일 대한민국 건국일에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강조한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한 마디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이제야말로 우리가 다시 한 번 이 문장을 목청껏 외쳐야 할 때가 아닐까.

그러나 평화니 평등이니 하는 말장난에 속아 촛불난동을 일으킨 무리로 뭉쳐서는 더 이상 희망이 없다. 뭉친다는 말은 세뇌된 채 떼를 지어 우르르 몰려다니는 무지한 군중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남 탓 하지 않는 개인, 세상에 공짜 없음을 아는 개인, 자유와 선택에 책임질 줄 아는 개인 한 사람 한 사람의 뜻을 모아야 한다는 말이다.

베일리시가 성공을 위해 온갖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던 시절, ‘혼란은 사다리’라고 말한 적 있지만 여러 의미에서 그 말은 옳다. 온갖 역경을 경험한 뒤에야 더 이상 의지하지 않고, 더 이상 속지 않고 마침내 타인의 손아귀에서 자신의 운명을 구해낸 산사처럼, 이 시대의 혼란은 어리석은 ‘우리’에서 지혜로운 ‘개인’으로 올라서는 사다리여야 한다. 그렇게 국민 모두가 한 사람 한 사람 개인으로 깨어날 때 대한민국은 앞으로 닥쳐올 기나긴 겨울을 이겨낼 수 있다. 혹독한 겨울이 언제 끝날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건 아무리 추워도 겨울 다음은 봄이라는 사실이다. 겨울을 견디면 새봄이 온다.

깨어나라, 개인이여! 일어나라,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이여!

TMTU. Trust Me. Trust You.

*‘TMTU. Trust Me. Trust You’는 김규나 작가가 ‘개인의 각성’을 위해 TMTU문화운동을 전개하며 ‘개인이여, 깨어나라!’는 의미를 담아 외치는 캐치프레이즈입니다.

김규나 객원 칼럼니스트(소설가, 소설 <트러스트미>, 산문집 <대한민국의 시계는 거꾸로 간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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