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자동차업계 실적부진, 중소부품사로 악영향 확산
금감원 평가서 구조조정 대상 된 부품업체 급증…은행 서비스 제한
"추석 지나면 기업-자영업 할 것 없이 훨씬 심각한 어려움 나타날 듯" 관측도

반도체, 석유화학과 더불어 대한민국 산업을 이끌어가던 자동차 산업이 최근 판매 정체 및 이익 감소로 크게 흔들리면서 중소 부품업체의 경영난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일부 부품업체는 도산 위험성까지 높아지면서 금융권에서는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대출 연장 기피, 신규 대출, 어음 할인 기피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13일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국내 완성차업체들이 고비용·저효율 생산구조가 고착화되면서 미국 시장에서 영업하는 독일, 일본, 중국 등 경쟁국들에 밀려 판매량이 줄어들고 있어 완성차업체에 부품을 공급하는 1·2·3차 협력업체들의 어려움도 가중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자동차업계 고위 관계자는 펜앤드마이크(PenN)에 "최근 자동차업계가 가장 고민하는 부분 중 하나는 은행 등 금융권에서 금융거래를 하는 자동차부품업계를 짐재적인 '잠재적인 부도위험군'으로 보고 신규 대출이나 기존 대출 연장, 어음 할인 등을 거부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는 점"이라고 밝혔다.

한국자동차산업협동조합 관계자도 "업체마다 사정이 다르지만 자동차부품업체 사장들이 금융권의 여신(與信) 규제에 대해 하소연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며 "1차 협력사보다 2, 3차 협력사 사장들이 주로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자동차업계는 851개의 1차 협력사와 5000여 개의 2차 협력사, 3000여 개의 3차 협력사가 있고 여기에 종사하고 있는 인원은 약 20만 명에 달한다. 

상황이 그나마 괜찮다는 1차 협력사 중에서도 경영 위기를 겪고 있는 업체들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현대차 1차 협력사인 '리한'은 지난 6월 산업은행에 워크아웃(기업구조개선)을 신청했다. 한국GM의 1차 협력사인 'JPC오토모티브'는 2015년까지 매년 100%가 넘었던 공장가동률이 올해는 60% 이하로 떨어졌고 상반기 매출액도 전년동기대비 절반 수준으로 감소했다. 

'리한'과 같은 수준의 위기까지는 아니지만 1차 협력사 중에서 실적이 급격히 줄어드는 현상이 벌어지는 곳은 많다. 자동차 섀시와 차체의 주요 부품을 생산하는 현대·기아차 1차 협력사 '화신'은 1000억 원 가까운 영업이익을 기록하다 작년에 228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올해도 1분기에 170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적자로 전환됐다. 현대차 1차 협력사인 '평화정공', '에스엘' 등도 매출이 급감했다.  

'JPC오토모티브' 윤관원 회장은 "업무 관계로 매주 2차 협력사 대표들을 만나는데 최근 폐업을 고려하고 있다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며 "1차 협력사의 사정이 이러한데 규모도 훨씬 영세할 뿐더러 자금 사정도 더 나쁜 2, 3차 협력사들의 사정은 심각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원 금융통계정보시스템에 게재된 올해 3월까지 시중은행 제조업 대출은 아직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지는 않지만 금감원이 작년 12월 6일에 발표한 '중소기업 신용위험평가' 결과에 따르면 자동차 부품업체들 중 구조조정 대상 신용등급(C~D등급)을 받은 회사는 2016년 5개에서 작년에 16개로 급증했다. 심지어 구조조정 대상이 된 이들 16개 중 13개는 법정관리·청산 등 퇴출이 임박한 D등급이었다. 금감원 신용위험 평가결과에서 구조조정 대상이 된 기업에게 은행 서비스가 제한될 수밖에 없다. 

금감원 신용감독국 관계자는 "우리가 평가하는 신용위험평가는 은행들의 여신 기준으로 판단하는 신용등급과는 성격이 조금 다르지만 은행 입장에서는 구조조정 대상이 된 신용위험평가 C, D등급의 자동차부품 업체에게 새로운 여신을 주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은행은 몇몇 부품사에 비상경영계획(컨틴전시 플랜) 제출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업계에선 이 상태가 지속되면 국내 자동차 및 부품산업 생태계가 흔들릴지 모른다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정부는 폐업 위기에 내몰린 자동차 부품업계에 대한 긴급 실태 조사에 착수했다.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금융위원회 등 정부 부처들이 8000여 곳에 달하는 자동차 부품사들의 상황을 파악하기 시작한 이유는 부품업체 줄도산을 막지 못하면 자동차 산업의 생태계가 뿌리째 흔들려 실업자가 급증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어서다.

특히 금융위는 자동차 부품회사들의 연쇄 폐업을 막기 위해 지난 6월 말 기한이 끝난 '기업 구조조정 촉진법'(기촉법)의 부활을 추진할 예정이다. 은행들이 구조조정 대상 기업을 돕는 워크아웃을 추진하기 위해 법적 근거가 되는 기촉법이 없으면 위기에 빠진 자동차 부품업체들은 바로 법정관리나 폐업으로 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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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간 국내 완성차업체는 판매 정체 및 이익 감소에 시달리고 있다. 작년부터 올해까지 이어진 대내외 악재로 한국 자동차산업 전체가 흔들리면서 미국과 중국에서 시장점유율이 하락하고 있다.

작년에는 중국이 우리의 주적(主敵)인 북한을 방어하기 위해 도입한 미사일 방어 시스템에 대해 불만을 드러내며 국내 자동차 수입을 제한했고 노동조합 활동이 강한 일부 완성차업체에서 일어난 파업이 이어졌다. 올해는 한국GM의 군산공장이 폐쇄했다.  

올해 상반기 국내 자동차 생산량은 200만4744대로 작년 상반기보다 7.3% 줄었다.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의 영업이익은 작년 2분기 이후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올해 상반기 현대차가 국내에서 생산한 차량은 84만3849대다.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4.5% 줄었다. 기아차는 72만9793대로 작년 상반기보다 5.8% 줄었다.

IBK경제연구소 산업연구팀 박선후 연구위원은 "국내 완성차업체는 고임금구조로 고비용·저효율 생산구조가 심화되고 있다"며 "일본차는 고급세단과 하이브리드, 독일차는 강력한 브랜드 파워, 중국차는 가격경쟁력에서 절대적 우위를 가지고 미국에서 영업하고 있는데 한국차의 장점은 점점 희석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병태 KAIST 경영대 교수는 "문재인 정부에서 최저임금을 인상하고 근로시간을 단축하는 등 노동 친화적 경제정책을 고수하면서 우리 기업들의 글로벌 경쟁력을 떨어지고 있고 그 영향으로 자동차 산업이 최근 위기에 빠졌다"며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등으로 인건비가 높아지면서 현재 우리나라 자동차 부품 회사들의 제품은 일본보다 비싸다"라고 말했다. 

산업계에서는 이달 하순 추석 연휴가 지나면 기업과 자영업 할 것 없이 지금보다도 훨씬 심각한 어려움이 가시화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윤희성 기자 uniflow84@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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