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일자리수석, 자영업비서관, 일자리위원회를 둔 나라
경쟁은 대기업vs자영업자라는 '집단' 간의 경쟁이 아닌 '개체' 간의 경쟁
자영업자 문제의 본질은 대기업의 횡포가 아닌 영세업자의 '과다진입'

조동근 객원 칼럼니스트

O 이해할 수 없는 文정권의 정책사고 

극작가 버나드 쇼는 해학적 독설로도 유명하다. “우리가 결혼하면 당신의 지성과 내 미모를 가진 아이가 태어날 것”이라는 이사도라 던컨의 편지에 “추남인 내 얼굴과 당신의 텅 빈 머리를 가진 아이가 생길지 모르지요”라고 응수했다. 외모와 지성의 조합에서 최악의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쇼의 익살은 경제학으로 치면 ‘의도하지 않은 결과’(the hypothesis of unintended consequency)의 가설이다. 선한 의도에 기초한 정부의 개입은 사전적 의도와는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지옥에 이르는 길은 선의(善意)로 포장돼 있다”는 영국의 경구도 같은 맥락이다.

문정권의 고용에 관한 정책사고는 독특하다. 정부가 ‘최대의 고용주’여야 한다는 말은 그리 쉽게 꺼낼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정부가 팔 걷어붙이고 나서면 ‘그 까짓 거’ 고용문제 쯤이야 쉽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말이다. 문정권의 독특한 행태는 이어졌다. 일자리 상황판을 집무실에 설치했다. 경제수석에 더해 일자리 수석 그리고 자영업비서관을 두었다. 그리고 대통령 직속으로 일자리 위원회도 설치했다. 고용을 위해 ‘빛 샐 틈’ 없는 완벽한 정부조직을 갖췄다고 자부했을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문재인 정부는 출범 이후 ‘54조원’의 천문학적 일자리 관련 예산을 집행했다. 54조원을 쪼개면 2017, 2018년 정부예산에 포함된 일자리 예산 36조원, 2번에 걸친 추경예산 15조원, 일자리 안정자금 3조원 등이다. 54조원이면 문정권이 그토록 성토한 4대강사업 예산 22조의 2.5배이다. 4대강 예산 집행으로 치수시설인 보와 수문 등 사회간접자본을 국부(國富)로 남겼지만 문정권이 지출한 일자리 관련 54조는 무엇을 남겼는가. 전년동월 대비 7월 취업자 증가는 고작 5천명이다. 숫자가 잘 못 된 것 아닌가 눈을 의심할 정도의 고용참사가 일어난 것이다. 2018년 상반기로 넓혀 보더라도 취업자 수 증가는 전년동기 대비 10만명대에 머물고 있다. 결국 정부의 일자리관련 정부조직 강화와 일자리 예산투입으로 일자리가 지속적으로 창출·유지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O 소득주도성장을 더욱 가속화하겠다는 정부: 소득주도성장 특별위원회 가동

최근 고용대란은 소득주도성장에 대한 맹신에서 비롯된 측면이 강하다. 소득주도 성장이 ‘근본적 오류’(mother fallacy)인 것이다. 이런 와중에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가 지난 6일 정식 출범했다. 문정권은 소득주도성장을 수정하기는커녕 정면 돌파를 선택한 것이다. 홍장표 위원장은 “한국 경제를 이끌던 수출 대기업의 낙수효과에 의존한 경제성장 패러다임은 한계에 봉착했다”며 “소득주도성장은 우리가 택할 수 있는 여러 선택지 중 하나가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반드시 가야 할 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정부가 시장 규칙을 바로잡고 사회안전망과 복지를 강화해 소득분배를 개선해야 한다”며 “이미 발표된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더욱 세밀하게 가다듬고 구체화하겠다”고 설명했다. 

홍 위원장의 주장은 타당한가? 상식적으로 대기업의 낙수효과가 없다면, 한국GM의 군산공장 철수가 가져올 파장을 고민할 필요는 없다. 군산공장 해고자 자녀는 다니던 태권도 학원을 중간에 그만두어야 한다. 군산공장 폐쇄로 불똥이 지역경제에 튀었다면 그게 바로 낙수효과이다. 기업은 계약의 복합체이다. 기업은 생산한 부가가치를 판매해 현금화한 뒤 기여한 만큼 당사자에게 돌려준다. 부가가치는 임금, 이자, 지대, 이윤, 세금으로 분해된다. 부가가치 중 임금이 ’고용의 원천‘인 것이다. 기업이 존속(going concern)돼야 고용이 유지된다. 7월 제조업 근로자는 전년 동월대비 14만명 감소했다. 생산과 판매가 부진해 그만큼 근로자가 해고된 것이다. 기업의 근로자 고용이 최고의 낙수효과인 것이다. 낙수효과 부정은 좌파의 치명적 인식오류가 아닐 수 없다.

그는 정부가 시장규칙을 바로 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시장규칙의 요체는 기본적으로 ’경쟁규율‘이어야 한다. 그리고 정부의 역할을 인정하기 때문에 ’공정거래위원회‘가 있는 것이다. 시장규칙을 바로잡는 것과 소득주도성장은 관련이 없다. 사회안전망과 복지를 강화하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사회안전망 및 복지 강화는 소득주도성장과는 별개의 아젠다이다. 소득분배와 소득재분배는 구별해야 한다. 사회안전망과 복지강화는 소득재분배로 소득분배는 아니다. 

소득분배의 주체는 비인격적인 시장이다. 생산요소가격에 요소 판매량을 곱해 얻어지는 소득 결정에 정부가 개입해서는 안 된다. 만약 소득이 사후적으로 특정계층에 치우칠 때 소득재분배 정책이 개입하는 것이다. 2년에 걸친 29%에 이르는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은 정부가 생산요소가격 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한 것이다. 자영업자의 항의가 따르자, ‘임대료, 카드수수료, 프랜차이즈 가맹비’를 모두 내리라고 압력을 가하고 있다. 임대료는 시장에서 결정된다. 임대료를 받는 사람의 경제적 위치는 천차만별이다. 임대료로 겨우겨우 빚을 갚는 건물주도 있을 수 있다. 최저임금 인상을 속도조절을 하지 않고 다른 변수를 바꾸는 것은 생산요소 가격 결정에 속속 정부가 개입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유시장경제가 아닌 것이다.

‘소득주도성장은 선택지가 아니라 우리가 반드시 가야할 길’이라는 주장은 모골을 송연하게 한다. 정책은 과학이다. 소신과 철학으로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다. 소득주도성장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뜻하지 않은 부작용이 생기면 궤도를 수정하는 것이 상식이다. 거꾸로 가고 있다. 소득주도성장을 고집하려면 외국의 성공사례를 제시해야 한다. 최저임금을 올려 가계주머니를 두둑하게 해 경제선순환을 일으킬 수 있다면 지구상의 모든 나라들이 최저임금을 경쟁적으로 올렸을 것이다. ‘남이 가지 않은 길을 가겠다’는 것은 오만한 발상이다. 국민의 생계를 정책실험해서는 안 된다. 정책엘리트의 정책사고가 이 모양이니 고용절벽이 생기지 않았다면, 그것이 더 이례적일 수 있다.     

 O 고용대책의 백미: 자영업비서관 신설

이번 고용대책의 백미는 자영업비서관을 신설한 것이다. 그 발상이 놀랍다. 자영업비서관을 두어 자영업자의 경제적 위상이 개선된다면, 자영업을 세분화해 업종별로 자영업비서관을 복수로 설치해라. 신임 자영업비서관은 “자영업 위기는 최저임금보다 대기업 진입이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주변 탓하는 것은 장하성 정책실장을 빼 닮았다. 그 역시 소득주도성장의 조력자 역할에 충실하고 있다.

신임 자영업비서관의 경제관은 반(反)시장적이다. “우리나라만 너무 지나치게 유통 대기업에 대한 규제가 없다며 구조적으로 자영업자 이윤율 상승, 자영업 시장 보호 등을 빨리 (입법)해줘야 한다”고 했다. 최저임금을 올려도 대기업에 대한 규제를 잘하면 자영업 위기는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규제만 잘하면 최저임금인상을 감내할 수 있다는 그의 주장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규제 없이도 국민경제가 감내할 수 있는 최저임금 인상은 노동생산성 향상에 연계된 최저임금이다. 유통대기업과 이해충돌에 초점을 맞추면 그렇지 않은 자영업자는 정책사각지대로 남는다. 

그 어떤 변형이라 할지라도 “대기업의 진입을 막아 자영업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정책사고에는 치명적 인식오류가 내재되어 있다. 경쟁은 어떤 경우에도 ‘개체’ 간의 경쟁이지 ‘집단’ 간의 경쟁일 수 없다. 집단 간의 경쟁이라면 ‘종(種)의 이익’을 위해 이타적으로 행동해야 한다. 개별 중소기업은 소비자에게 자신의 물건을 팔지 말아야 한다. 그러면 여타 동료 중소기업의 시장기회를 뺏는 것이다. 일반화하면 ‘종의 이익’을 지키려면 경쟁자인 여타 자영업자를 배려해야 한다. 하지만 이는 불가능하다. 문제의 본질은 대기업의 횡포가 아닌 영세업자의 ‘과다진입’이다. 대기업의 진입을 막으면 그만큼 빈자리로 남을까? 아니다. 포화상태인 레드오션은 더 과밀해 질 수 있다.

7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전년 동월대비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는 10.2만명 줄었다.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는 우리사회의 가장 취약계층 중의 하나다. 망해서 시장을 떠난 이들은 자발적으로 래드 오션의 자영업시장으로 진입하지 않았을 것이다. 전에 다니던 직장을 유지할 수 있었다면 굳이 자영업 시장으로 진입하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최대의 자영업 대책은, 그들로 하여금 자영업 이외의 직업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전(前) 직장이 망하지 않게 하거나, 규제를 완화해 새로운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 최선의 정책인 것이다. 2017년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자영업자 가구 비중은 23.9%(상용근로자 가구 비중 43.2%)에 이른다. 이는 터키와 그리스와 함께 OECD 국가 최고수준이다. 자영업자 비중을 줄여야 한다. 그렇지 않고 정부가 보호할 테니 계속 진입해도 좋다는 신호를 보내면, 이는 예컨대 500명 정원의 배에 700명, 1,000명의 승객을 태우는 것이다. 

O 에필로그 

여기서 한 가지 짚을 것이 있다. 고용상황이 위중하기 때문에 정부가 적극 나설 수밖에 없다고 강변할 수 있겠지만, 뒤집어 보면 이 같은 정책사고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일자리가 만들어지지 않은 것이다. 

너무나 상식 같은 그리고 각종 정책경험을 통해 의심의 여지없이 받아들여지는 가설이 “일자리는 민간기업이 시장에서 만든다”는 것이다. 일감이 있어야 부가가치를 만들 수 있고 부가가치가 시장에서 교환될 때 비로소 일자리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최근의 고용절벽은 돌발적인 현상이 아니다. 기업의 경제 환경은 ‘사면초가’ 상황이다. 기업은 거미줄 규제로 묶여 있으며, 노조는 전투적이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에 우리만 홀로 법인세를 인상했다. 그러면서 일자리가 만들어지기를 원했다면 연목구어(緣木求魚)가 아닐 수 없다. 자영업비서관 신설은 국가만능주의, 국가개입주의가 빚은 슬픈 희극이다. 문재인 정부는 ‘국민의 삶을 책임지는 국가’를 자임하고 있다. 자영업비서관 신설은 ‘국민의 생계마저 책임지는 국가’가 되겠다는 것인지 모른다. 시장을 잘게 쪼개 특정계층에게 우선권을 주는 것이 정책일 수 없다. 특정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것이 정책일 수 없다. 그렇다면 바스티야가 일찍이 경고한 것처럼 국가를 매개로한 합법적 약탈이 횡행할 것이다. 정책엘리트의 ‘좌파적 낮은 경제 지력’이 많은 국민을 고통으로 몰고 가고 있다.

조동근 객원 칼럼니스트(명지대 명예교수 겸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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