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탓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면 이상적인 민주주의나, 자본주의를 할 수 있죠.

남의 탓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등에 칼을 맞고도 복수하지 않는다는 것과는 달라요. 몇십년이 걸리더라도 그 자의 심장에 칼을 박아주겠다는 사람은 다만 명예심이 있는 거고, 그럴 것은 뭐 있나 잊자라는 사람은 명예심이 없을 뿐입니다. 그리고 명예심의 문제는 도덕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어요. 명예란 복수를 의무로 생각하느냐, 그리고 그 의무를 이행할 생각이 있는가의 문제일 뿐입니다.

반면 남의 탓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도덕적인 문제예요. 어쨌든 나의 괴로움, 나의 고민, 나의 한은 내가 해결해야 하고, 그것을 남에게 풀어놓는다면 그건 가장 나를 아끼는 사람들을 상하게 하는 것이거나, 그것을 만들어낸 원흉들과는 무관한 자들에게 해를 가하는 것입니다.

첫 번째 경우는 자신의 취업이 해결되지 않아서 부모에게 틱틱거리는 청년의 경우입니다. 부모는 자신을 진심으로 걱정하는데, 자신의 해결되지 않은 괴로움을 발출시키면 그들을 같이 고통으로 끌어들이게 됩니다. 문제는 부모가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이 세상에서 몇 안 되는 사람들이라는 점입니다. 이것은 나 스스로 나의 문제를, 아무리 괴로운 것이라도, 극복해야 한다는 원칙을 어긴 데서 나옵니다. 부모의 돈을 받아가는 것 자체는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부모는 오히려 돈이 필요하다고 나오면 더 좋아할 수도 있어요. 세상에서 유일한 진짜 봉이니까.

두 번째 경우는 자신만의 편벽된 사상에 매몰된 자가, 세를 이용해서 세상에 그것을 강요하는 것입니다. 무엇이 도덕적이라고, 공평하다고 제멋대로 정한 다음, 남에게 그것을 강요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기 손에 있는 지위나 권력을 이용합니다.

대개 어떤 사상에 편벽되는 사람은, 개인적인 원한의 경험에 의해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그렇게 자기중심적인 동물이고, 그건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물론 여기에는 그런 편벽된 사상을 출세와 이익에 이용만 할 뿐, 그것을 진심으로 믿지 않는 경우는 제외됩니다. 대개 전자는 추종자들이 되고 후자는 사도가 되어서 같이 움직입니다.

그렇지만 왜 자신의 복수에 도덕과 공평의 관념을 이용하고, 자신에게 해를 입힌 바 없는 수많은 타인의 삶에 멋대로 영향을 미치는 것이지요? 왜 누군가에게 부정의하게 당했다고 생각하면 그 눈을 똑바로 보면서 배에 칼을 꽂아주지 못하지요? 그런 정정당당한 복수는 훌륭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형벌의 목적을 교화와 반성으로 나누어 놓고 형벌의 적정성에 관한 철학적 논쟁을 일삼는 형법 교과서를 읽으면서 제가 했던 생각은, 핵심이 빠졌다는 것이었어요. 왜 국가가 애초에 형벌을 가할 수 있는 것인지?

제 생각에 형벌이란 너무나 당연하게도 개인이 해야 할 사무친 복수를 국가가 배타적으로 대행하는 것이고, 그렇다면 그 원한에 합당하게 보복해주지 않는다면 형벌을 불신하게 되는 것도 당연하지요. 저는 여기서 더 나가서, 원한에 합당하게 보복해주지 못하는 국가라면 개인이 원천적으로 자신에게 있었던 복수의 권한을 찾아오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느낌의 영화도 있었던 것 같아요. “모범 시민”이라고. 저는 제라드 버틀러가 마지막에 제이미 폭스를 죽이지 못한 게 안타까웠습니다.

같은 논리로, 그 원한에 합당한 것보다 과도하게 국가가 형벌권을 행사한다면 이것도 틀린 것입니다. 진정한 원한이 없는 곳에서 제멋대로 도덕을 내세우면서 소위 가해자를 전시적 목적으로 과도하게 처벌합니다. 요즘 성폭력 관련 형사처벌 행태는 이렇다고 봐요. 근거로 도덕을 내세웠든 어쨌든, 이런 행태는 원천적으로 도덕적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의 과장된 원한을, 도덕으로 포장해서, 수십만의 사람들에게 강요하고 자연스러운 개인의 행동을 억압합니다. 이런 행태는 파렴치한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볼 때, 궁극적인 도덕적 기준은 하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남의 탓을 하지 않고 자신의 일을 누구도 감히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는 자신의 일로써 풀어가느냐. 어차피 그 이상 복잡하고 고매한 사상 같은 것은 모릅니다. 피부에 닿아서 뜨겁거나 차갑다고 느껴지는, 그런 것만이 잉크 낭비가 아닌 사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상윤(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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