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주주 역할을 넘어선 행동"

기업 지배구조 개편에 대한 정부의 강요가 국내 기업에 대한 해외 벌쳐 캐피털의 공격을 심화시키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7일 엘리엇이 현대차그룹에 주주 가치 제고와 그룹 구조 개선을 위한 일부 핵심 계열사 합병을 촉구했다고 보도했다. 지난 4월에 이어 미국의 헤지펀드 엘리엇이 현대자동차그룹의 지배구조를 다시 압박하고 나서는 모습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엘리엇은 지난달 14일 자동차 부품 제조업체인 현대모비스의 애프터서비스(AS) 부문을 현대자동차와 합병하고, 그 외 현대모비스의 모듈과 핵심 부품사업을 물류업체 현대글로비스와 합병하자고 제안했다. 이처럼 엘리엇이 현대모비스 모듈·핵심부품 사업과 현대글로비스 합병을 주장하는 이유는 합병 과정에서 현대모비스 지분 가치를 재산정해 막대한 시세차익을 노리려는 것으로 보인다.

엘리엇은 지난 4월 10억달러(1조1000억원)규모의 현대차·현대모비스·기아차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엘리엇의 요구대로 합병이 이뤄진다면 엘리엇이 보유하고 있는 현대모비스 지분의 가치가 올라간다면 막대한 시세차익을 얻게되는 셈이다. 더군다나 최근 공정거래위원회가 대기업들을 상대로 지주사로의 지배구조 개편을 요구하고 있어, 엘리엇의 이같은 요구가 정당화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이에 대해 현대차그룹은 7일 입장자료 발표를 통해 “주주 역할을 넘어서는 무리한 제안”이라고 밝혔다.

현대차그룹이 이같은 반응을 보인 이유는 우선 국내 자본시장법 상 기업의 중요사안을 특정 주주에게만 알려주는 것을 엄격히 규제하고 있어,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을 엘리엇과 의논하는 것은 시장 규정을 위반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현대차그룹은 다수 주주의 이익을 제고하고 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유도해야 함으로, 지배구조 개편과 같은 그룹의 중대한 사안에 대해 엘리엇과 의논하는 것은 시장원리에 맞지 않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덧붙여 현대차그룹은 외부로 공개되지 말아야 할 내용을 담고 있는 서신을 특정 언론에 공개한 것에 대해서도 불쾌감을 드러낸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그룹 지배구조에 대한 엘리엇의 공격은 3개월 전에도 이뤄진 바 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3월 현대모비스·현대글로비스 분할합병, 그룹사와 대주주간 지분 매입·매각을 통해 그룹의 순환출자고리를 끊겠다는 내용의 지배구조 개편안을 발표했다. 현대차그룹은 당시 추진했던 개편안이 자동차 사업 부문별 전문성을 강화해 본연의 경쟁력과 기업가치를 높이는 동시에 순환출자 등 국내 규제를 모두 해소하는 최적의 안이라는 점을 강조해왔다. 또 당시 정몽구 회장과 정의선 부회장 부자는 개편 과정에서 발생하는 1조원에서 최대 2조원에 달하는 양도세를 납부하겠다고 밝혔을 정도로 적극적이었다.

그러나 당시 엘리엇은 현대차에 대한 1% 수준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며, 현대차와 현대모비스 합병을 통한 지주사 전환 등을 요구했으며 외국계 주주를 규합해 현대차를 압박했다. 이처럼 현대차그룹이 추진했던 개편안과 엘리엇의 요구가 엇갈리면서 결국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는 국민연금의 판단에 관심이 쏠리기도 했다.

기업들의 순환출자 구조를 죄악시하며 지주사로 전환하라는 현 정부의 방침을 고려한 현대차의 최종적인 지배구조 개편안이었지만,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사인 ISS가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안에 반대 의견을 낸 것과 더불어 지주사 전환을 요구하는 정부의 압박이 작용해 결국 현대모비스 합병에 대한 주주총회는 취소된 바 있다.

업계에선 최근 다시 고개를 든 엘리엇의 공격과 관련해, 대기업을 겨냥한 정부의 지배구조 개편 강요도 한 몫 하고 있어 우려의 목소리가 더욱 커지고 있다. 과거 해외 벌처펀드는 2003년 소버린이 SK를 공격해 9000억원대의 차익을 남기고 철수하기도 했으며, 2005년엔 칼아이칸이 KT&G를 공격해 1500억원대의 차익을 실현한 바 있다.

홍준표 기자 junpyo@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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