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트럼프 통화 후 靑 "비핵화 통한 평화정착 달성방안 협의" 백악관 "FFVD 논의"
文 "北 비핵화 의지"→"비핵화 조치를"→"비핵화 통한 한반도 항구적 평화정착…"
文 8.15 경축사부터 '촉진 대상'도 北비핵화 아닌 "美北 비핵화 대화"로 바뀌어
정의용 안보실장은 "남북관계 발전 통해 비핵화 협상 견인" 앞뒤 바뀐 논리 꺼내
靑 2인자 임종석, 對北아닌 對美설득 어려움 시사까지…'비핵화 의지 후퇴' 의혹

한국 정부의 5일 대북특별사절단 방북에 앞서 4일 저녁(한국 시간) 한미 정상간 통화가 있었다. 하지만 양국 수뇌부가 통화 내용을 사후 설명하면서, 북한 비핵화에 대해 '판이한' 용어를 사용했다.

미국 백악관은 북한 핵에 대한 'FFVD(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를 달성 목표로 명시한 반면 청와대는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한반도에 항구적인 평화 정착을 달성하는 방안'을 내세웠다. 한미간 북한 비핵화 우선 순위마저 달리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왼쪽부터)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사진=연합뉴스)
(왼쪽부터)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사진=연합뉴스)

백악관은 4일(미 동부 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간 통화 사실을 대변인 명의의 보도자료를 통해 발표했다.

백악관은 "두 정상이 이날 오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동의한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FFVD)'를 달성하기 위해 현재 진행중인 노력을 포함해 한반도의 최근 진전 상황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백악관은 아울러 "문 대통령은 김정은과 만나기 위해 5일 평양에 특사를 파견한다는 점을 알렸고, 추후 이 만남에 대해 설명할 것을 약속했다"고 전했다.

청와대는 4일(한국시간) 밤 김의겸 대변인 명의로 낸 보도자료에서 "문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 개최 준비 및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한반도에 항구적인 평화 정착을 달성하는 방안' 등을 협의하기 위해 대북특사단을 파견할 계획임을 상세히 설명했다"고 전했다.

청와대는 또 "문 대통령은 지금이 한반도 평화 정착에 있어서 중대한 시점이며, 이는 완전한 비핵화와 함께 가는 것임을 강조했다"며 "남북관계의 개선과 한반도 긴장완화가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에 기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고 문 대통령의 입장을 알렸다.

어록으로 미루어 청와대는 남북 정권이 용어를 공유하고 있는 '한반도 평화정착'을 목표로 설정하고, 비핵화를 '한반도 긴장완화'와 같이 하부개념으로 여긴다는 해석이 나온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사진=연합뉴스)

대북특사단 수석을 맡은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도 4일 방북 사전 브리핑에서 북한 비핵화를 목표로 거론하지 않고, "(북한 지도층과) 완전한 비핵화를 통한 한반도의 평화정착을 위한 방안들을 협의할 예정"이라고 말한 바 있다.

정의용 안보실장은 북측과 마찬가지로 선(先)종전선언에 전향적인 입장을 보이면서 거듭 "'한반도 비핵화를 통한 한반도 평화정착'을 추진해가는 과정 그 초입 단계에서 종전선언은 매우 필요한 과정"이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나아가 "남북관계 발전을 통해서 한반도 비핵화 협상 과정을 견인해 나가야 한다고 본다"며 "과거 경험에 비춰보면 남북관계가 좋았을 때 핵 위협도 많이 감소됐다"는 친북진영의 오래된 논리까지 들었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5년 임동원 당시 통일부 장관이 한 언론에 "남북관계 발전을 통해서 핵문제 해결에 기여한다는 병행전략을 써야한다"고 발언한 것과 유사한 주장이다.

문 대통령은 앞서 지난 5월26일 김정은과 두번째 기습 정상회담을 가진 이튿날 기자회견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의지가 확고하다는 것을 어제 다시 한번 분명하게 피력을 했다"면서도 '북한이 말하는 비핵화가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핵폐기(CVID)가 맞느냐. 김정은이 CVID에 대해 이야기했나'라는 질문에 "북한의 비핵화 의지에 대해서는 제가 거듭 말씀드렸다"고 구체적 답변을 거부했었다.

문 대통령은 첫 정상회담 일주일여 전인 4월20일에는 언론사 사장단과의 청와대 오찬 간담회에서 "북한은 지금 '완전한 비핵화'를,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고 보증인을 자처하기도 했었다.

문 대통령은 7월13일 싱가포르 렉처 때부터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정착"이라는 레토릭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다만 이때까지는 대외적으로 '북한의 비핵화 조치·이행' 필요성을 강조하는 용어 사용을 병행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싱가포르 국빈 방문 마지막 날인 지난 7월13일 오전(현지시간) 오차드 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싱가포르 렉처'에서 연설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싱가포르 국빈 방문 마지막 날인 지난 7월13일 오전(현지시간) 오차드 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싱가포르 렉처'에서 연설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의 '한반도 운전자론'을 맹비난한 7월20일자 로동신문 6면 논설.
문재인 대통령의 '한반도 운전자론'을 맹비난한 지난 7월20일자 로동신문 6면 논설.

하지만 싱가포르 렉처 당시 "북한과 미국 정상이 국제사회 앞에서 직접 한 약속(6.12 미북 공동성명)을 지키지 않는다면 국제사회로부터 엄중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발언했다가 북측으로부터 '한반도 운전자론' 자체를 공격받았고, 이후 태도가 바뀌었다.

이후 '8.15 경축사'에 이르러 문 대통령은 전례 없이 "한반도 문제는 우리가 주인"이라며 "남북관계 발전"을 앞세워 북측의 '우리민족끼리'와 코드를 맞춘 게 우선 눈에 띈다. 

또한 "북미(미북)간 비핵화 대화 촉진"에 노력하겠다고 밝히는 한편 "(9월 정상회담에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함께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으로 가기 위한 담대한 발걸음을 내딛을 것"이라고 말해 북한 비핵화 의지가 후퇴한 듯한 태도를 보였다.

"완전한 비핵화와 함께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돼야 한다"는 언급도 반복했고, 이는 최근 9.5 특사단 방북이 임박한 시점 '완전한 비핵화를 통한 한반도 평화정착'이라는 레토릭이 등장한 것이다.

정 실장보다 의전서열은 낮지만 '청와대 2인자'로 불리는 임종석 비서실장이 이달 3일 페이스북으로 특사단을 독려하는 가운데 진전 대상을 "북미(미북)간 비핵화 대화"로 꼽은 점도 심상치 않다는 지적이다.

지난 9월3일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이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을 수석으로 한 대북특별사절단을 공개 격려·훈시한 페이스북 글.
지난 9월3일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이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을 수석으로 한 대북특별사절단을 공개 격려·훈시한 페이스북 글.

특히 "냉엄한 외교 현실의 세계에서 미국의 전략적 인내와 동의 없이 시대사적 전환을 이룬다는 건 사실상 가능하지 않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는 전례 없이 강력하고 긴밀하게 미국과 소통하고 협력하고 있다"고 대미(對美)설득을 가장 어려운 과제로 꼽은 듯한 문장도 있어, 문재인 정권의 북한 비핵화 의지가 크게 후퇴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편 백악관과 청와대는 공통적으로 유엔 총회를 계기로 트럼프 대통령과 문 대통령이 직접 만나기로 했다고 전했다. 또 양측은 트럼프 대통령이 특사단의 방북 결과를 자신에게 알려달라고 당부한 사실도 동시에 알렸다.

이와 관련해 미국의소리(VOA) 방송은 5일(한국시간) 백악관 측 설명을 전하면서 "남북관계 개선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에 기여할 것이라고 문 대통령이 강조했다는 한국 정부 발표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백악관 홈페이지에는 트럼프 대통령 또는 대변인 명의의 4일(현지시간)자 발언·입장문 등이 실려 있으나,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간 통화 내용에 관한 브리핑은 실려있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고 있기도 하다. 일련의 정황을 미루어 미국 측이 남북간 대화를 쉽사리 낙관하지 않게 된 상황임을 짐작할 수 있다.

한기호 기자 rlghdlfqjs@pennmike.com

사진=9월5일 VOA 뉴스 방송화면 캡처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작권자 © 펜앤드마이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