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한미 외교소식통 인용 보도…"北엔 핵 무기·시설 신고 구두약속 요구"
北수용해도 '韓 불신론' 제기된 美 반응 미지수, 靑임종석도 대미설득 무게 시사

문재인 정권이 미·북간 비핵화 대화 교착 국면을 북한 김정은 정권의 의중이 한층 반영된 '선(先) 종전선언 채택, 후(後) 비핵화 조치 이행'으로 중재하겠다고 나섰다. 오는 5일 평양을 찾을 대북특사단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으로부터 핵시설 신고 등 비핵화 초기 조치에 대한 '구두 약속'을 받아내는 데 주력할 것으로 알려졌다.
  
중앙일보는 4일 '서울과 워싱턴에 있는 복수의 외교소식통'의 "김정은이 구체적인 기한을 정해 비핵화 초기 조치를 하겠다고 약속할 경우 3자 또는 4자 정상이 참여하는 종전선언을 하자는 한국의 중재안에 최근 미국도 긍정적인 입장인 것으로 알고 있다"는 전언을 보도했다.
  
대북특사단이 평양에 들고 가는 것도 이런 내용의 중재안으로 전해졌다. ▲김정은의 비핵화 초기조치 구두 약속 ▲평양에서 남북 정상회담 개최(9월 중순) ▲3자 또는 4자간 종전선언(9월 하순 유엔 총회) ▲북한의 비핵화 초기 조치 이행 순으로 진행하는 걸 골자로 한다.

대북특사단과 북한 김정은.(자료사진=연합뉴스)

앞서 북한은 미군 유해 송환 등 6·12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사항 중 유해 일부 송환 등을 내세워 종전선언을 요구해 왔다.

미국은 북측에서 '충실히 이행했다'고 자부하는 조치들이 비핵화와 직접 연관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실질적 비핵화 행동'을 요구했다. 

미국은 북한 핵물질과 핵무기 현황, 핵시설, 핵 프로그램을 신고하는 것을 초기 조치로 원했다. 그러나 북한은 지난달 24일 김영철 조선노동당 중앙위 부위원장이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에게 보낸 서한에서 미국이 종전선언부터 하기 전에는 움직일 생각이 전혀 없다며 "비핵화 협상이 결딴날 수 있다"고 엄포를 놓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폼페이오 장관의 4차 방북을 곧바로 취소하면서 미북간 비핵화 협상도 잠정 중단된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문재인 정권이 '중재'를 거듭 자처했으나 받아들여질지는 미지수다. 우선 특사단 면담과 정부의 대북 제안 수용부터 김정은의 결단에 달려 있다는 점이 변수로 거론된다. 

그러나 문서 약속과 선 비핵화 완료를 건너뛰어도 되는 입장에서 북측의 수용이 순조로울 수도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사진=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사진=연합뉴스)

반면 미국은 종전선언을 할 경우 주한미둔 주둔 근거가 공격받을 수 있어, 한반도 연합방위태세뿐 아니라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을 억제할 군사력 유지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해 왔다. 

또 해리 해리스 주한미대사 등은 종전선언의 '한번 서명하면 되돌릴 수 없는' 성격을 지적하며 선제조치로서 부적절하다는 입장을 밝혀온 바 있다. 문 정권은 이같은 우려를 해소한다는 명목으로 종전선언의 구체적인 문안에 대한 내부 논의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은이 중재안을 받아들이는 구두약속을 해도 미 행정부 안팎의 반응이 2차 난제라는 전망도 제기된다.

미국 내에선 폼페이오 장관의 지난 7월 3차 방북 이후 북한의 비핵화 의지에 대한 회의론이 부쩍 커진 형국이다. 4차 방북은 김영철의 서신 내용을 접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비핵화 진전이 없다'는 직접 제지하기까지 했다.
 
천영우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은 "종전선언과 핵 동결 또는 핵 리스트 신고서 제출 등 비핵화 조치를 맞교환하는 것은 충분히 검토할 수 있는 안"이라면서도 "북한의 비핵화 진정성에 대한 회의론이 매우 큰 상황에서 종전선언 이후 북한이 핵물질 보유량, 비밀 핵시설 신고 등 미국의 눈높이에 맞는 핵 신고를 할지가 관건"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자칫 북한이 부실한 신고를 할 경우 북한 비핵화 의지에 대한 '진실의 순간'(진실이 드러나는 순간)이 몇 달 연기되는 결과만 초래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사진=VOA 뉴스 캡처

중재를 자처한 문 정권에 대해 미 행정부, 의회, 조야에서 불신론이 제기되는 상황도 간과할 수 없다. 한국이 북·중·러 진영에 편입된 것 같다는 평가마저 나온 터다. 유엔 안보리·미국 독자 제재로 수출입이 금지된 북한산 석탄·선철 등 밀반입을 한국 정부가 방조했다는 의혹의 불씨도 채 꺼지지 않은 상황이다.

'청와대 2인자'로 불리는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이 3일(한국시간) 페이스북을 통해 특사단에 3차 남북정상회담 일정 확정과 미북간 대화 촉진을 위한 성과를 당부하면서 '대미 설득'에 무게를 실은 점도 한-미간 이견이 만만치 않음을 추측할 수 있는 정황이다.

임종석 비서실장은 "냉엄한 외교 현실의 세계에서 미국의 전략적 인내와 동의없이 시대사적 전환을 이룬다는 건 사실상 가능하지 않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는 전례없이 강력하고 긴밀하게 미국과 소통하고 협력하고 있다"면서도 "하지만 지난 1년여, 결국 내일을 바꾸는 건 '우리 자신의 간절한 목표와 준비된 능력'임을 새삼 깨우치는 시간이기도 했다"고 표현했다.

한기호 기자 rlghdlfqjs@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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