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이해에서 가장 중요한 것, 문화를 가장 근본적 수준에서 다룬 정의

복거일 객원 칼럼니스트
복거일 객원 칼럼니스트

[지난 번 글 ‘본능과 지능’에서 지능을 진화의 관점에서 살폈습니다. 우리가 선천적으로 지닌 지식인 본능과 본능의 부족한 점을 채우는 지능 사이의 관계를 일단 드러냈습니다. 이제 우리가 지닌 지능과 우리가 만들어낸 인공지능 사이의 관계를 살필 준비가 된 셈입니다.

그러나 곧바로 인공지능을 다루려니, 좀 아쉬운 마음도 듭니다. 이왕 진화의 관점에서 삶을 살폈으니, 다른 것은 몰라도 문화는 살피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유전자-문화 공진화(gene-culture coevolution)’라는 개념이 가리키듯, 이제 문화의 영향은 유전자의 그것과 비등합니다. 그리고 유전자의 진화는 아주 느리고 문화는 점점 빠르게 발전하므로, 문화의 영향력은 상대적으로 점점 커집니다.

그리고 문화를 살펴야, 이념도 제대로 살필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이념이 워낙 중요하므로, 이념의 성격을 드러내는 일은 뜻이 자못 클 터입니다. 그래서 문화와 이념에 대해서 잠시 살피고 인공지능을 살피도록 하겠습니다.

이념 얘기가 나왔으니,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난 노회찬 의원의 이념적 위치를 살피면서 그를 추모하고 싶습니다. 그와 오래 사귀었던 분들의 추모사들이 많았지만, 그가 우리 사회에서 차지한 이념적 위치에 대해서 살핀 글은 예상보다 드물었습니다.

노회찬 의원은 대체로 사회민주주의를 따른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이념적 정체성은 북한 정권을 지지하는 종북주의와 명확하게 변별되었습니다. 사회민주주의자는 대한민국의 이념과 체제를 근본적으로 부정하지 않습니다. 헌법의 틀 안에서 헌법에 규정된 절차를 따라 우리 사회를 개혁하자는 입장입니다. 반면에, 공산주의자나 종북주의자는 대한민국을 전복하려고 시도합니다.

북한 정권은 1945년 이후 남한을 병탄하려 끊임없이 시도했습니다. 그리고 그 목적을 위해 많은 자원을 투자했습니다. 당연히, 북한의 지원을 받는 세력은 우리 사회에 곳곳에서 암약해왔습니다.

그런 세력과 거리를 두고 북한 정권이 아니라 자신이 믿는 사회민주주의 이념을 위해 활동하는 일은 무척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그런 활동을 해본 사람들만이 그 어려움과 위험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자신들에게 유리하지 않은 상황에선 공산주의자들과 종북주의자들은숙주 속에 기생하는 전략을 씁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것은 해방 바로 뒤 건국준비위원회(건준)의 운명입니다.

조선총독부로부터 권력을 인수하라는 제안을 받자, 몽양 여운형은 바로 건준을 조직했습니다. 총독부의 제의를 먼저 받은 고하 송진우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귀환을 기다리겠노라 하면서 거절했으므로, 우파는 건준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몽양이 이끄는 좌파 세력과 민세 안재홍이 이끄는 중도 세력이 참여했습니다.

건준이 단기간에 전국적 조직을 갖추자, 이정 박헌영을 중심으로 한 공산주의 세력은 건준에 참여하겠다고 나섰습니다. 민세는 공산주의자들을 받아들이는 것은 너무 위험하다고 반대했습니다. 그러나 몽양은 공산주의자들을 받아들였습니다. 민세는 자신의 추종자들을 이끌고 건준을 떠났습니다.

건준에 한번 들어오자, 공산주의 세력은 곧바로 건준을 장악했습니다. 조선총독부와 타협한 적이 없는 이정의 경력과 지도력에다 투쟁경력과 이념으로 단련된 노동조합원들의 전투적 행태가 결합했으니, 명망은 높지만 집단 투쟁의 경험이 없는 지식인들의 집단이 당해낼 수 없었던 것이죠.

이어 이정과 그가 이끄는 공산주의들은 몽양을 압박해서 인민공화국(인공)을 선포하도록 했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정통성도 부정하고 미군의 한반도 진주의 정당성도 부정한 이 사건은 해방 뒤 정국을 크게 악화시켰습니다.

건준이 인공으로 바뀐 일은 잘 알려졌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이정이 몽양을 ‘길들인’ 일은 덜 알려졌습니다. 실은 그 일은 공산주의자들과 상종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가 일깨워주는 교훈적 일화입니다.

건준에 참여한 공산주의자들을 몽양을 두 번 납치해서 길을 들였습니다. 한 번은 그를 38선 북쪽으로 납치해서 ‘교육’ 과정을 가졌습니다. 또 한 번은 그를 남산으로 납치해서 절벽 너머로 거꾸로 들고서 ‘토론’을 했습니다. 그리고 몽양이 미군정 당국과 협력하려 하자, 젊은 자객을 시켜 암살했습니다.

노 의원도 자신이 주도해서 결성한 조직이 종북주의자들에 의해 장악되는 일을 여러 번 겪었을 것입니다. 끝내 자신이 만든 조직에서 떠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가 그런 과정에서 겪었을 어려움들을 좌파 정치 현장에 서 본 적이 없는 저로서는 제대로 상상하기도 어렵습니다.

어쨌든, 이명박 후보가 압도적 지지를 받아 집권하자, 저는 우리 사회의 이념적 지형과 정치적 지형 사이의 거리를 좁힐 기회가 왔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집권 보수 세력이 노 의원과 같은 비종북적 사회민주주의자들에게 설 자리를 마련해 주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제 주장에 대한 반응이 호의적이어서, 저는 여당인 한나라당에 가서 그런 방안을 얘기해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일은 대통령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아쉽게도, 이 대통령은 그런 정치적 상상력을 발휘할 분은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보수 세력의 주도로 우리 사회의 이념적 왼쪽 울타리를 제대로 세울 기회가 그냥 지나갔습니다. 저는 지금도 그 일이 퍽이나 아쉽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자유주의자들에게 하이에크가 한 충고를 깊이 새겨야 합니다. “자발적 성장을 사람들의 어리석음이 세운 장애들과 짐들로부터 해방시키려면, 우리의 희망은 천성적으로 ‘진보주의자들’인 사람들을, 비록 지금 틀린 방향으로 바꾸려고 애쓸지 모르지만, 적어도 존재하는 체계를 비판적으로 살피고 바꿀 필요가 있는 곳들은 모두 바꾸려고 하는 사람들을, 설득하고 그들의 지지를 얻는 것에 두어야 할 것이다.”

노 의원은 자신의 행적에 대한 부끄러움을 끌어안고 스스로 삶을 마감했습니다. 혼탁한 사회에서 평생 정치를 한 사람의 가슴에 아직 순수한 부분이 남아있었다는 사실이 달포가 지난 지금도 제 가슴에서 시린 물결을 일으킵니다. “그대 위에 흙이 가볍게 얹히기를.”

노 의원이 타계한 며칠 뒤, 현소환 전 연합통신사장이 서거했습니다. 마주 앉으면 바위를 대하는 듯했던 분인데, 갑자기 타계했습니다. 고인과 오랫동안 함께 사회 활동을 한 청소년도서재단 이성원 이사장님께 회상을 써주십사 말씀 드렸습니다.

이성원 이사장의 ‘현소환 회상’

1991년 6월 한미우호협회(KAFS) 창립총회에서 처음 만났다. 협회 추진의 제2인자로 보였다. 김상철씨가 서울시장으로 자리를 비웠을 때 10여일 회장 대행을 했다. 김회장이 복귀해 정력적으로 사업을 추진하면서 차츰 물러났다.

인상에 남는 일 3가지

윤정석 교수를 회장직에서 밀어낸 일:

윤씨가 회장 취임사에서 “앞으로 미국에 대해서도, 시시비비주의로 나가겠다”고 선언했을 때, 언더우드 박사가 상을 찡그리고, 윤씨를 추대했던 조완규 이사장이 난감한 기색을 짓고, 회원 모두가 어안이 벙벙했다.

협회 핵심토론장인 ‘대화의 모임’에 한미우호협회 이름을 쓰지 말라 지시했을 때, 현 회장이 역정을 냈다. 이것이 결정적 계기가 됐을 것이다. 현 회장이 단독으로 윤 회장을 만나 자진해서 사표를 내게 했다. 윤씨도 말발이 센 사람이다. 어떻게 총회에서 선출된 회장을 스스로 물러나게 했는지, 놀라웠다. 현 회장이란 사람은 그런 무서운 깡이 있는 사람이다.

언론 탄압에 항거 단독 시위하던 일

노무현 정권 때 언론 탄압에 항거하여 현 회장 혼자서 함구 마스크를 쓰고 매일 종합청사 주위를 여러 날 오랜 시간 돈 적이 있다. 격려차 수표 한 장을 들고 기다렸다 내밀었는데 절대 사양하고 받지 않았다. 체통을 지키는 무사였다.

[복거일의] <한반도에 드리운 중국의 그림자>를 몇 부인지 보냈는데, 주위 독지가를 시켜 백 부인지 이백 부인지 대금을 보내와 사가도록 했다.

우리는 이 재난의 시절에 또 한 사람의 우국의 지사를 잃었다. 몇 달 전 대상포진으로 몹시 고통을 겪었다. 근자 심경이 못 견디게 고달프지 않았나 싶다.

현 선생님의 부음을 듣고, 서울문리대 정치과 동기인 김병익 선생님(문학 평론가)께 전화를 드렸더니, 현 선생님은 교리에 따라 치료를 받지 않았고 둘레에 병세를 알리지도 않았다고 했습니다.

끝까지 몸가짐을 흐트러뜨리지 않은, 보기 드물게 강직한 애국자의 영전에 <경이로운 은총(Amazing Grace)>의 한 절을 삼가 바칩니다.

Yea, when this flesh and heart shall fail,

And mortal life shall cease,

I shall possess within the veil,

A life of joy and peace.

그렇고 말고, 이 육신과 심장이 지치고

유한한 삶이 끝나면,

다음 세상에서 나는 얻으리,

기쁨과 평화의 삶을.

문화의 정의

문화(Culture)라는 말은 여러 가지 뜻으로 쓰인다. 또렷이 정의하기도 어렵다. 논의의 맥락에 따라 그 말이 가리키는 것이 많이 달라진다. 자연히, 문화를 되도록 엄격하게 정의하려는 노력은 문화에 관한 논의를 알차게 하는 첫 조건이다.

가장 근본적 수준에서 정의하면, 문화는 “정보의 비유전적 전달(non-genetic transmission of information)”이다. 부모에게서 자식에게로 유전자들을 통해 전달되는 정보들을 빼놓고, 후천적으로 개인들이 얻는 모든 정보들이 문화라는 얘기다. 자연히, 문화는 사회적 현상이다. 사회를 구성하지 않는 종에선 문화가 존재할 수 없다.

<웹스터 영어 사전(Webster’s Third New International Dictionary)> ‘문화(culture)’ 항목의 “사고, 발언, 행위, 그리고 인공물들로 구현되고 도구들, 언어, 그리고 추상적 사고의 체계들의 사용을 통해서 배우고 이어지는 세대들에게 지식을 전달하는 사람의 능력에 의존하는 인간의 행태와 그 산물들의 총체적 구도 (the total pattern of human behavior and its products embodied in thought, speech, action, and artifacts and dependent upon man’s capacity for learning and transmitting knowledge to succeeding generations through the use of tools, language, and systems of abstract thought)”라는 정의는 “정보의 비유전적 전달”을 풀어 쓴 것이다.

그러나 위의 정의는 인류만이 문화를 가졌다고 여긴다. 그러나 문화가 지능에 바탕을 둔 현상이므로, 사회를 이루어 사는 다른 동물들도 문화를 가졌다. (이것은 근본적 중요성을 지닌 사실이므로, 뒤에 따로 상세히 서술할 예정임.)

보다 좁은 정의는 문화의 전통적 특질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 경우, 문화는 “인종적, 종교적, 또는 사회적 집단의 전통의 변별되는 복합체를 이루는 관습적 믿음들, 사회적 형식들, 그리고 물질적 특징들의 총체 (the body of customary beliefs, social forms, and material traits constituting a distinct complex of tradition of a racial, religious, or social group)”라고 정의된다. “한국 문화”나 “불교 문화”는 문화를 이렇게 정의한 경우들이다.

한층 더 좁은 정의는 사회적 집단들 사이의 문화적 변별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 경우, 문화는 “특정한 집단, 업무나 직업, 성, 연령층, 또는 사회적 계층에 특수한 전형적 행태나 표준화된 사회적 특징들의 복합체 (a complex of typical behavior or standardized social characteristics peculiar to a specific group, occupation or profession, sex, age grade, or social class”라고 정의된다. “청소년 문화”나 “중산층 문화”는 문화를 이렇게 정의한 경우들이다.

구현된 상태로 문화를 보기도 한다. 이 경우, 문화는 ‘교양’과 거의 동의어다. 취향과 범절이 세련되고, 예술과 인문학에 대한 소양이 깊은 상태에 이른 사람들은 ‘문화적’이라고 평가된다. 일상적으로 문화는 이 뜻으로 쓰인다. “문화 생활”이나 “문화 산업”은 문화를 이렇게 정의한 경우들이다.

문화라는 말이 그렇게 여러 뜻으로 쓰이지만, 문화의 이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문화를 가장 근본적 수준에서 다룬 정의다. “비유전적 정보의 전달”이라는 정의를 바탕으로 삼아야, 문화에 대한 논의는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다. 어떤 현상을 가장 근본적 수준에서 바라본 정의가 지닌 통상적 이점들에 덧붙여져, 이 경우엔 유전적 정보의 전달과 비유전적 정보의 전달은 본질적으로 하나의 현상으로 볼 수 있다는 사정도 있다. 이런 본질적 연관을 고려하지 않으면, 문화에 대한 이해는 결코 깊을 수 없다.

사람의 육체에 든 유전적 정보들과 비유전적인 문화 사이에 본질적 연관이 있다는 통찰은 진화생물학의 발전을 통해 얻어졌다. 따라서 진화적 관점에서 살펴야, 문화의 본질이 비로소 드러난다.

진화는 지구에 존재하는 생명의 기원과 확산을 잘 설명한다. 나아가서 우주의 다른 생명들의 존재도 설명할 수 있다. 이처럼 진화가 보편적 현상이라는 깨달음이 보편적 다윈주의(Universal Darwinism)를 낳았다.

복거일 객원 칼럼니스트(소설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작권자 © 펜앤드마이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