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희성 기자

'썩어도 준치'라는 말이 있다. 몸길이 50㎝ 정도인 청어과 물고기 맛에 감동한 사람들이 준치를 극찬하는데 사용한 표현이다. 요즘은 한 분야에서 나름의 업적을 남긴 사람이 은퇴 후에도 자신의 녹슬지 않은 주특기를 선보이면 들을 수 있다.

본인들은 나름대로 대한민국을 위해 일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결과적으로는 국가정체성에 얼마나 도움이 됐는지 의문이 드는 좌파 친여(親與) 정치권 인사들이 최근 구조조정 대상으로 교육부로부터 학생정원 감축 압박을 받는 부실 대학들의 총장으로 대거 이동하고 있다. 

사립대 재단들은 '썩어도 준치'라는 심정으로 대학 안팎의 문제를 해결할 사람으로 정치권과 정부에 영향력이 있는 인사를 원하고 있고, 친노(親盧)-친(親)DJ 성향이긴 하지만 문재인 정권의 실세로 자리잡지는 못하고 떠도는 인사들은 과거 좌파 언저리에서 활동했던 포트폴리오를 한껏 가장해 망해가는 대학의 '바지총장' 자리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있다.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소속으로 14대부터 17대까지 국회의원을 지낸 장영달 전 의원은 구조조정 대상 대학에 이름을 올린 우석대에 지난 2월 12일에 총장으로 부임했다. 국민대 행정학과 입학 후 좌파 운동권으로 일하다 정치인이 된 장 전 의원은 한 대학의 총장으로 일하기에는 고등교육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는 인물이다. 

역시 민주당 소속으로 17대부터 18대까지 국회의원을 지냈던 서갑원 전 의원도 지난달 20일 신한대 총장으로 취임했다. 서 전 의원은 노무현 정권에서 대통령 비서실 의전비서관을 지낸 인물로 장 전 의원의 대학교 후배다. 서 전 의원은 국민대 법대를 졸업했다. 국민대 법정대학에서 분리된 법대와 행정학과는 그 뿌리가 하나다.

노무현 정권에서 청와대 홍보수석비서관을 지낸 한국일보 기자 출신 윤승용 씨는 지난 21일 남서울대 총장에 취임했다. 작년부터 남서울대를 운영하는 성암재단의 이재식 이사장과 남서울대 은희관 교수의 갈등이 심화되는 내부적 문제와 교육부로부터 정원감축을 요구받는 대외적 위기까지 윤 총장에게 맡겨진 임무는 무겁다.

언론계 노조 운동을 하던 윤 총장이 대학교수 노조격인 교수협의회를 '진압'해야 하는 상황도 아이러니하지만 고등교육 분야 경험이 전혀 없는 인물로 대학 구조조정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도 뭔가 아귀가 맞지 않는 상황이다. 노무현 정권 대변인 이후 좌파 정당에서 두 번이나 국회의원에 도전했다 실패한 정치꾼 지망생에 불과한 인물에게 두 가지 숙제가 맡겨진 것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든다.

동아일보 기자 출신으로 대표적인 좌파 온라인 매체인 오마이뉴스 논설위원을 지낸 김재홍 씨도 사이버대인 서울디지털대 총장으로 부임했다. 김대중 정권에서 국정홍보처 정책평가위원, 노무현 정권에서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 등을 지낸 친DJ·친노계 '정치꾼'인 김 총장은 2004년 열린우리당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한 바 있다. 

이들 4명은 모두 공교롭게 현 정권에서 한껏 힘을 얻고 있는 호남 출신이기도 하다. 대학총장이 누리는 여러가지 특전 때문에 어울리지 않게 대학 총장으로 변신한 '여권(與圈) 정치꾼들'이나 이들을 영입한 사립대 재단이나 모두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긴다.

윤희성 기자 uniflow84@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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