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금 고갈' 시기 당겨졌는데 "근거없는 불안감 끊임없이 제기된다"며
수익률 급락과 복지부發 연금개혁안 촉발한 '국민연금 폐지론' 무마 시도
財原 다른 기초·퇴직연금 연계 시사, 연금사회주의化 위한 '기금 유지' 목적 의심
與싱크탱크도 최근 국민연금-기초연금-퇴직연금 섞은 '多層연금체계' 주장

기금 고갈 전망 시기가 앞당겨진(2060년→2057년) 국민연금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이 27일 "국가의 지급 보장을 분명하게 해 국민의 불안감을 해소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라"고 정부에 지시했다. 그러나 국민연금 지속 가능여부에 대한 의구심을 해소할 만한 논거 없이 국가(정부)에 의한 지급보장만 강조한다면 '공수표 남발'에 그칠 전망이다.

이와 동시에 국민연금과 재원(財原)을 달리 하는 기초연금(세금)·퇴직연금(투자 펀드 등)을 연계할 방침을 시사하고 있어, '국가의 노후보장'을 의무로 내세워 거대 기금을 유지하려는 목적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현 정권이 630조원 규모 국민연금에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자의 의결권 행사 지침)를 도입함으로써 정부의 기업경영 간섭 본격화, 연금사회주의화(化) 우려가 제기된 배경과 무관치 않다는 해석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후 춘추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기금 고갈이라는 말 때문에 근거 없는 불안감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고 전제한 뒤 이같이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27일 오후 청와대에서 수석·보좌관 회의를 주재,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27일 오후 청와대에서 수석·보좌관 회의를 주재,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문 대통령은 "국민연금은 기본적으로 국민이 소득이 있을 때 보험료를 납부했다가 소득이 없어진 노후에 연급을 지급받도록 국가가 운영하는 공적 노후 보장제도"라며 "국가가 책임을 지고 있는 제도이기 때문에 보험료를 납부한 국민이 연금을 지급 받지 못하는 것은 국가가 존재하는 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당위 논리를 세웠다.

문 대통령은 "우리 사회의 가장 심각 문제 중 하나가 소득분배가 악화돼 가계소득의 양극화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는 현상이고, 최근 통계를 보면 가장 중요 원인 중 하나가 근로소득 없는 65세 이상, 나아가서 70세 이상의 가구가 빠르게 늘고 있다(는 것)"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국민연금과 기초연금 퇴직연금을 종합해 노후소득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논의에 임하라"고 지시했다.

문 대통령은 또 "국민연금의 주인은 국민이므로 국민연금 제도 개혁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회적 합의"라며 "기간이 많이 걸리더라도 정부와 국회와 충분한 논의과정을 거쳐 국민의 동의와 사회적 합의를 전제로 추진한다는 긴 관점을 가지고 정부안을 논의하라"고 지시했다.

앞서 지난 13일에도 문 대통령은 "국민연금 개편은 노후소득 보장 확대라는 기본원칙 속에서 논의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특히 "노후소득 보장을 확대해 나가는 게 우리 정부 복지 정책의 중요 목표 중 하나"라며 "마치 정부가 정반대로 그에 대한 대책 없이 국민의 보험료 부담을 높인다거나 연금지급 시기를 늦춘다는 등의 방침을 정부 차원에서 논의되고 있는 것처럼 알려진 연유를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앞서 보건복지부는 국민연금제도개혁을 위한 자문위원회인 국민연금제도발전위원회로부터 연금 개혁을 위한 자문안을 넘겨받았고, 이를 토대로 정부안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기금 고갈을 우려해 '보험료율을 인상하고 연금지급 시기를 늦추는 자문안이 검토중'이라는 내용이 알려져 논란이 일자 박능후 복지부 장관은 지난 13일 이례적인 '휴일 장관 브리핑'을 했고, 정권 핵심부가 복지부와 서둘러 선을 긋는 과정에서 대통령의 입장 표명도 나온 것이다.

그러나 이 논란은 앞서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CIO)은 1년 넘게 공석이고, 기금운용수익률은 지난해 7%대에서 올해 상반기 0%대로 추락한 것으로 알려진 것과 맞물려 확산일로다. '내기만 하고 받을 수 없는 연금'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현 정권이 여론정치에 활용 중인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차라리 국민연금을 폐지하라"는 청원이 올라와 큰 호응을 얻기까지 했었다.

더불어민주당 민주연구원이 지난 8월26일 공개한 '100세 사회를 말하다' 연구보고서 표지 일부.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싱크탱크 민주연구원도 지난 26일 공개한 '100세 사회를 말하다' 연구보고서를 통해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 인상 주장은 현 세대는 많이 받고 그 비용을 미래세대에 전가시키자는 것"이라며 "현 세대의 모럴 해저드를 강화시키는 주장"이라고 '소득대체율 인상론'과 선을 그었다.

문 대통령이 공약한 국정과제 중 하나가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상이었으나, 이를 여당 싱크탱크가 강력 비판해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그러나 민주연구원은 대안으로 "영세자영업자나 실업자 등 연금제도 바깥에 있는 이들"을 위해 국민 노후보장 시스템을 기초연금과 국민연금, 퇴직연금 총 3가지로 구성된 다층연금체계로 설정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이날 문 대통령의 '연금 종합' 발언과 같은 논리구조를 보인다는 점에서, '납부해도 수령할 수 없는' 국민연금을 폐지하라는 여론을 무마하는 데 상당한 무게를 두고 있다는 해석이다.

한기호 기자 rlghdlfqjs@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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