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승계작업 '묵시적 청탁 없었다'는 정부 입장과 다른 재판부 판결, 韓정부 상대로 한 ISD 소송에 악영향줄수도
현재 엘리엇·메이슨 등 외국계 자본의 손해배상 청구에 총 1조원 가량 물려있어

24일 열린 박근혜 전 대통령(66) 2심 재판에서 삼성의 승계작업에 박 전 대통령이 부당하게 개입했다고 재판부가 판단함에 따라, 향후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외국계 투기자본이 추진하고 있는 손해배상(ISD 소송)에 힘을 실어줄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최근 정부가 엘리엇의 중재신청에 대해 제출한 답변서의 내용과도 달라 논란은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ISD(Investor-State Dispute Settlement)는 외국인 투자자가 국가를 상대로 법령·정책 등에 의해 피해를 입었을 경우, 세계은행 산하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에 제소하여 손해배상을 받도록 하는 제도다.

해당 2심 재판을 맡았던 김문석 부장판사는 "단독 면담 당시 박 전 대통령은 이재용의 승계작업이라는 현안에 대해 인식하고 있었다"며 "단독 면담은 가장 핵심적 승계작업으로 평가되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대한 박 정부의 우호적 조치 직후 실시됐다"고 했다.

그러나 이같은 재판부의 판단은 정부가 17일 공개한 엘리엇의 중재신청에 대한 답변서에 담긴 내용과는 정반대다.

당시 정부는 답변서에서 “한국 형사법원은 박근혜 전 대통령, 행정부 구성원, 국민연금 직원 등의 위법적인 행위 결과로서 합병이 제안되거나 합병이 통과됐다고 판단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특히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합병과 관련해 박 전 대통령에게 명시적 또는 묵시적 청탁을 했다는 점을 검찰이 입증하지 못했다고 강조하며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강조한 바 있다.

이처럼 정부의 국민연금에 대한 부당 개입을 두고 재판부는 "부당했다", 정부는 "국민연금의 자체적인 판단이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그동안 최근 외국계 자본들은 이같은 헛점을 파고들어 ISD 소송을 제기하고 나선 상황이다. 박 전 대통령이 국민연금공단에 삼성물산 합병에 찬성하도록 지시했다는 근거를 들어 정부의 부당한 개입으로 인한 손해가 발생했다는 주장이다.

올해 5월 미국의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찬성한 국민연금공단의 결정에 박근혜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재판부의 판단에 따라 삼성물산 주식을 보유했던 자신들이 손실을 입었다고 주장하며 한국 정부를 상대로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을 제기했다.

당시 엘리엇은 손해배상 청구액으로 7억7000만달러(약 8600억원)를 주장했다. 엘리엇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은 정부의 개입으로 인해 부당하게 이뤄진 것이라며 ISD 소송이 합당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이번 2심 재판에서는 삼성의 경영권 승계 작업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판단한 1심의 판단과는 달리, 경영권 승계작업과 관련해 명시적으로 청탁한 적은 없지만 '묵시적 청탁'은 있었다고 판단하면서 엘리엇에게 더욱 유리한 상황이 주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엘리엇이 박 전 대통령이 이 부회장의 승계작업에 대해 뇌물을 받고 도와줬다는 근거로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급기야 미국계 헤지펀드 메이슨도 지난달 3일 국정농단 사건 수사와 재판을 언급하며 "문 전 장관을 포함한 박근혜 정부가 합병에 대한 국민연금의 표결에 지나치게 영향력을 행사한 사실이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당시 메이슨은 부당한 정부의 개입으로 최소 1억7500만달러(약 2000억원) 상당의 손해가 발생했다고 주장하면서 대한민국 정부가 배상해야 할지도 모르는 액수는 점차 불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홍준표 기자 junpyo@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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