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건국 70주년...이승만 지우기의 일환
이승만-김구 논쟁과 건국일 부재는 좌파가 만든 프레임 속에서 우파들끼리 벌이는 다툼
8월 15일을 '광복건국절'로 지정하고 김구를 '건국의 아버지'로 이승만을 '건국 대통령' 기려야

김태우 객원 칼럼니스트
김태우 객원 칼럼니스트

금년 8월 15일로 광복 73주년 및 건국 70주년을 맞았지만, 올해에도 대한민국은 쓸쓸한 생일날을 보내야 했다. 1945년 8월 15일이 일제로부터 해방된 날이었고 1948년 8월 15일이 이승만 정부의 출범과 함께 국가를 구성하는 4대 요소인 영토·국민·주권·정부를 갖춘 대한민국이 탄생한 날이었음에도, 올해에도 “광복 73년과 정부수립 7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만 열렸을 뿐이다. “건국 70주년”이라는 표현은 찾아볼 수 없었다. 물론 이는 정치적 이념이나 사관(史觀)에 따라 실제로 존재했던 역사적 사실마저 해석을 달리하면서 이어져 온 한국사회의 낯부끄러운 분열상을 보여주는 하나의 현상일 뿐이다.

지금까지 건국절이 제정되지 못한 주된 이유는 1919년 상해 임시정부 수립을 건국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 거셌기 때문이다. 그 언저리에는 “친일·친미의 잔재이자 부정·부패의 원흉”인 이승만을 국부(國父)로 인정할 수 없다는 논리가 자리잡고 있으며, 더욱 깊숙한 곳에는 인민민주주의가 아닌 자유민주주의를 도입하고 사회주의 경제가 아닌 시장경제를 정착시킨 이승만을 부정하고자 하는 좌파 논리가 자리 잡고 있다. 그 결과 임정(臨政)의 주역인 김구 선생을 지지하는 세력과 이승만 대통령의 공적을 인정하는 세력 간에 국부 논쟁이 이어져 왔고, 언론은 이승만 지지세력을 ‘보수’로 그리고 김구 지지세력을 ‘진보’로 일갈해왔다. 과연 그런 것인가? 김구와 이승만을 놓고 벌어지는 갈등이 과연 보수-진보의 갈등인가? 이런 갈등 속에 한국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건국절이 없는 나라로 나아야 하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국사회의 분열상에 관한 한 문제의 핵심은 좌우 대립과 그로 인해 문제가 되지 않아야 할 보수-진보 간의 정책경쟁이 ‘대립과 갈등’으로 증폭되어 왔다는 사실에 있다. 다시 말해, 건국절 부재 현상과 우익 지도자인 이승만을 지지하는 세력과 중도우익 지도자인 김구를 지지하는 세력이 벌이는 정통성 다툼은 좌파가 담론(談論) 전쟁에서 승리함에 따라 빚어지는 우파끼리의 갈등인 것이다.

좌파와 우파 그리고 진보와 보수

좌파란 사회주의 체제를 선호하는 사람들이고 우파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를 선호하는 사람들이다. 사회주의는 평등, 정의. 최대 복지 등을 앞세우고 국민을 현혹하는 매력을 발휘하지만 결국 국가경제가 경쟁력을 상실함으로써 복지도 무너지고 모두가 가난해지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그래서 오늘날 사회주의 경제체제를 택하는 나라는 많지 않다. 노력한 만큼 가져가는 경쟁과 공정성에 바탕을 둔 시장경제 체제는 경제의 효율성을 키우는데 유리하지만 성공한 사람들과 사회적 약자들 간에 큰 격차를 초래하며, 부(富)를 대물림받은 금수저들의 갑(甲)질이 약자들의 원성을 사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대부분의 나라들은 시장경제 체제를 택하면서 정부가 적정수준의 복지를 통해 사회적 강자와 약자 간의 격차를 줄이는데 노력한다. 중국은 사회주의 정치체제를 고수하면서도 경제는 시장경제를 택하고 있다.

한국의 좌파는 순수한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사람들과 북한식 사회주의를 선호하는 사람들로 나누어 진다. 과거 운동권에서는 이 두 부류의 좌파들을 ’인민민주주의‘ 및 ’민족해방‘ 노선으로 부르기도 했다. 특히 후자는 북한 노선을 추정한다고 하여 ‘주사파’라고도 불렸는데, 북한이 순수 사회주의와도 거리가 먼 실패한 국가라는 점에서 외국인들은 주사파의 존재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한편, 보수란 변화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옛 것의 가치를 존중하면서 급격한 변화보다는 점진적 변화를 선호하는 사람들이며, 진보는 옛 것을 무시하지는 않지만 좀 더 급격한 변화를 추구하는 사람들이다. 당연히 국가와 사회의 발전이라는 목표는 같다. 즉 큰 그림에서 본다면 보수와 진보는 공히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의 근간을 인정하는 우파에 속하며, 철천지 원수처럼 싸워야 하는 관계가 아니라 정책을 놓고 선의의 경쟁을 벌여야 하는 관계다. 지난 70년 동안 정착되어 온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를 유지하려 한다는 의미에서 우파는 보수적 성향이 상대적으로 강하며, 함부로 모험을 해서는 안 되는 안보문제에 있어 우파는 당연히 보수적이다. 진보는 과감한 변화를 통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서 비롯되는 부조리들을 척결하려 하지만,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근간을 부정하면 사회주의가 된다. 그것이 북한식 체제를 추종하기 위함이라면 ‘주사파’로 불릴 수 있다. 이렇듯 좌우의 스팩트럼과 진보-보수의 스팩트럼은 중복성이 있지만 엄연히 다른 것이다.

물론, 독재는 좌파에도 있고 우파에도 있다. 즉, 좌우 스팩트럼은 평면이 아니라 곡면이어서 뒤로 돌아가면 좌우가 한데 만나게 되어 있다. 그것이 독재이다. 공산주의자들을 박멸하겠다고 나섰던 힛틀러가 국가주의를 앞세우고 우파 독재를 펼쳤다면, 역시 국가주의 경제를 앞세우고 반대파를 숙청하면서 1천만 명이 넘는 자국인을 죽인 스탈린은 지독한 우파 독재자였다. 마찬가지로, 극단적인 사익 추구 성향을 의미하는 수구(守舊)도 보수와 진보 양쪽에 존재한다. 입으로는 보수를 외치지만 기득권 보호에만 연연하는 사람들이 수구보수이며, 말로는 평등과 정의 외치고 약자의 대변자로 행세하지만 정작 본인은 엄청난 권력과 부를 즐기면서 자녀들을 그토록 싫어하는(?) 미국에 유학보내는 수구진보들이다. 엄밀하게 말해, 이들은 보수를 자칭하는 수구이거나 진보를 자칭하는 수구일뿐 보수나 진보가 아니다.

한국의 문제점은 사회주의자들이 진보로 자칭하고 이를 기정사실화하는데 성공함으로써 일반 국민들이 알고 있는 진보 내에는 순수한 진보와 사회주의 세력이 혼재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담론전쟁과 대국민 선동에서 좌파가 대승을 거두었기에 생겨난 현상이며, 그 결과 오늘날 많은 국민은 좌파와 진보를 구분하지 못하는 색맹이 되고 말았다. 그 뿐이 아니다. 오늘날 많은 국민은 보수를 수구세력 으로 그리고 진보를 개혁세력이고 민주화 세력이자 알고 있다. 과거 군사독재에 항거했던 사람들은 많지만, 사회주의 신념으로 독재에 저항했던 사람들도 덩달아 민주화 세력으로 불리는 세상이 된 것이다. 보수를 전쟁세력으로 그리고 진보를 평화세력으로 부르는 사람들도 많다. 평화를 지키기 위해 안보태세를 굳건히 하자고 하는 사람들이 전쟁세력으로 불리는 세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렇게 된 데에는 일부 경솔한 언론인들의 탓도 크다. 좌파세력을 진보세력으로 그리고 좌파 정치인을 진보 정치인으로 둔갑시키는데 일조한 것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적 체제와 시장경제 원칙들을 부정하는 사람들도 진보로 불리고 있으며, 다른 사람들이 사회주의자 또는 주사파라고 부르면 펄쩍 뛰는 것도 이들이다.

김구와 이승만은 공히 대한민국의 국부

크게 보면, 이승만과 김구를 둘러싼 논쟁은 우파끼리의 싸움이다. 김구는 임정을 통해 민족정기를 되살리고 건국을 위한 토대를 닦은 지도자였고, 해방 후 혼란스러운 정국에서 최후까지 분단을 막아보려고 북한 공산주의자들과 대화를 시도했지만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종한 적이 없다. 굳이 분류하자면 중도적 성격이 강한 우파 인사라 할 수 있다. 이승만은 말년에 부정부패라는 과(過)를 범했지만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도입하고 한미동맹을 끌어냄으로써 경제발전을 위한 토대를 닦은 공(功)을 세운 지도자이며, 정부수립을 통해 4대 요건을 갖춘 대한민국을 탄생시킨 건국 대통령이었다. 오늘날 김구를 지지하는 사람들도 보수이거나 진보일 수는 있어도 좌파는 아니다. 이승만-김구 논쟁과 건국일 부재 사태는 결국 이승만을 부정하는 좌파들이 만들어 놓은 프레임 속에서 우파들끼리 벌이는 다툼일 뿐이다.

건국일 부재와 우파끼리의 다툼이라는 자괴스럽고 창피한 사태를 종식시키려면 8월 15일을 광복건국절로 정하고 김구를 건국의 아버지로 그리고 이승만을 건국 대통령으로 기리면 된다. 방법은 간단하지만 현 주류세력이 2019년을 건국 100주년으로 삼자고 주장하고 있어 쉽지 않아 보인다. 우선은 우파들이 먼저 합심해야 한다. 우선은 김구와 이승만을 좋아하는 분들이 뜻을 합쳐 8월 15일을 광복건국절로 제정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 필요하다. 진정 자유민주주의를 지켜고자 한다면, 상호간 반보씩 양보하여 반드시 이 싸움을 종식시켜야 한다.

김태우 객원 칼럼니스트(전 통일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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