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수 영장 기각하고 MB 영장은 발부한 박범석 판사
김경수 영장 기각 이유가 도대체 말이 된다고 보는가
‘죽은 권력’에 가혹하고 ‘살아있는 권력’은 봐준 영장전담판사
‘재판당할 자의 색깔’부터 살피는 ‘땅 위의 법’ 일탈이 도를 넘었다

권순활 전무 겸 편집국장
권순활 전무 겸 편집국장

김태규 울산지법 부장판사(51)는 최근 한국 사법부의 좌경화와 반()법치주의 움직임에 종종 올곧은 쓴 소리를 하는 몇 안 되는 현직 판사 중 한 명이다. 올해 2월에는 김명수 체제의 대법원이 소위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과 관련해 세 번째 특별조사단을 구성한다고 밝히자 법원 내부망인 코트넷에 특별조사단이 사법부 내에 사찰 분위기를 조성하지는 않기를 희망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기도 했다. 현재 사법 권력을 장악해 기세가 등등한 김명수 대법원장 이하 신주류(新主流) 세력에게는 눈엣가시 같은 판사일 것이다.

김태규 부장판사가 이달 7일 자신의 개인 페이스북에 올린 <판새>라는 제목의 글도 그날 펜앤드마이크(PenN)에 보도되면서 온라인상에서 상당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판새판사새X’의 줄임말로 판사를 비꼬고 경멸하는 표현이다.

김 부장판사는 이 글에서 며칠 전 페친(페이스북 친구)이 올린 글에서 판새라는 단어를 봤다. 처음에는 판사의 오타인 줄 알았는데 찬찬히 보니 판사를 비하하는 네 음절의 단어를 두 음절로 줄인 비속어라며 기자를 비하해 기레기라고 부르는 것은 알지만 정작 판사가 어떻게 조롱당하는지는 이제야 알았다고 썼다. 그는 또 “(판사들이) 법의 본지를 추구하지 않고 목적에 맞추어서 법의 의미를 축소 과장하고, 궤변으로 법을 왜곡하며, 동일한 사안에 들이대는 잣대의 길이를 늘렸다 줄이는 등으로 직업이 가지는 본질을 훼손할 만한 행위들을 한 것이 판사들이 조롱을 당하게 된 이유라고 분석했다.

서울중앙지법 박범석 영장전담 부장판사(45)가 이른바 드루킹 댓글 여론조작 사건과 관련해 문재인 대통령의 측근인 김경수 경남지사에 대해 허익범 특검팀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18일 새벽 기각한 것을 보고 김 부장판사가 걱정한 판새란 말을 다시 떠올렸다. 아니나 다를까, 이 뉴스가 전해지자 페이스북 등 소셜 미디어에는 박범석 판사의 영장 기각결정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글이 잇달아 올라왔다. 그는 올 3월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해 문 정부의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바로 발부한 판사이기도 해 더 논란이 됐다.

박 판사는 김경수 지사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드루킹김동원 씨와의 공모 관계의 성립 여부 및 범행 가담 정도에 관하여 다툼의 여지가 있는 점, 증거인멸 가능성에 대한 특검의 소명이 부족한 점, 피의자(김경수)의 주거, 직업 등을 종합하면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전직 대통령인 MB는 검찰이 적용한 혐의와 관련해 다툼의 여지가 없어 구속영장을 발부했는가. 전직 대통령인 MB는 김경수 지사와 비교해 증거인멸 및 도주의 우려가 더 있다는 말인가. 복잡한 법논리를 떠나 상식의 눈에서 제기하는 이같은 의문에 대해 박 판사는 도대체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박 판사의 개인적 판단에서 죽은 권력MB는 구속해야 하고, ‘살아있는 권력의 일원인 김경수 지사는 구속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아니면 납득하기 어려운 이중잣대가 아닌가.

박 판사가 내세운 영장 기각 이유를 정밀하게 들여다봐도 이번 기각 결정은 도저히 말이 안 된다. 그는 김 지사가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다고 강변했지만 이달 초 특검팀이 김 지사의 집무실과, 국회의원 시절의 증거 수집을 위해 국회사무처와 의원회관을 압수수색했을 당시 업무용 PC가 복구 불가능한 수준으로 포맷돼 있어 드루킹과의 공모 관계를 입증할 핵심 단서가 사라진 사실이 밝혀졌다. 또 공모 관계의 성립 여부 및 범행 가담 정도에 관하여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했지만 검사 출신인 김진태 자유한국당 의원의 표현을 빌리면 김경수와 드루킹이 공범이 아니면 형법교과서를 다시 써야 할 판이다. 드루킹 김동원 씨와 그의 하수인 3명이 모두 구속된 상황에서 그들로부터 매일 엄청난 범죄인 여론조작 행위를 보고받은 혐의가 농후한 김경수 지사가 구속을 면한다면 최소한의 법적 형평성에도 맞지 않다.

현재 대한민국 사법부 안에 법적 정합성이나 상식적인 상식에 맞지 않는 그들만의 정의(正義)’에 매몰된 판사가 한두 명이 아니라는 것은 아는 사람은 다 안다. 도대체 법관을 어떤 기준으로 선발했기에 이런 한심한 현실이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판사들에 대한 불신도 과거 어느 때보다 커진 느낌이다. 심지어 판사의 우리법연구회 가입 여부 등 전력(前歷)이나 출신지역, 출신고교만 알면 재판을 하기 전에 이미 판결 결과를 예상할 수 있다는 말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이게 과연 정상적인 나라인가. 이러니 판새소리가 안 나오겠나.

소설가 이문열이 꽤 오래 전 펴낸 산문집 사색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법은 정치로부터 객관화되어야 할 것이지만, 아직 지상에서 그런 법이 시행된 적은 없다. 그것은 이상(理想)이다. 재판을 맡는 정의의 여신의 눈을 가린 것은 희랍인의 예지였을 뿐 땅 위의 법은 언제나 눈을 부릅뜨고 재판당할 자의 색깔부터 살핀다.> ‘좌파 무죄, 우파 유죄’ ‘좌파에는 솜방망이, 우파에는 쇠방망이란 말이 공공연히 나오는 김명수 대법원장 체제의 요즘 한국 사법부는 그 정도가 도를 넘고 있다 '황당한 이유'를 들먹이며 김경수 지사의 구속영장을 기각한 박범석 판사의 이름을 우리는 똑똑히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권순활 전무 겸 편집국장 ksh@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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