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北 비밀회담, 사실상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인정하는 방향으로 흘러가
美국익 관점에서 北미사일만 폐기하면 종전선언도 가능하다는 입장으로 물러선 것
文대통령은 北두둔하고 있어...美, 韓국익을 염두에 둘 필요 없는 것이 당연
우리 국민은 믿을 곳 없이 비바람 몰아치는 거친 황야에 내버려진 형국

김영호 객원 칼럼니스트
김영호 객원 칼럼니스트

6월 12일 싱가포로 회담 이후 미북 사이에는 북핵 문제를 둘러싸고 비밀회담이 계속되고 있다. 이 회담에서 흘러나오는 내용은 원래 미국이 완전한 북핵 폐기를 목표로 추진한 CVID 원칙과는 크게 동떨어진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유명한 인터넷 매체 Vox News 보도에 따르면 미국은 북한에게 핵무기 숫자와 시설이 담긴 리스트를 제출하고 그 중 핵무기 60-70%만 해외 혹은 미국으로 보내서 폐기할 것을 요구했다. 북한이 이를 수용할 경우 북한이 요구하는 종전선언을 할 수 있다는 방안을 제시했다고 한다. 이 제안을 북한이 일언지하에 거절했다고 한다.

지난 7월 초 폼페이오 국무장관 방북 직후 북한은 미국을 ‘날강도’라고 비난했다. 이것은 미국의 북핵 일부 폐기 제의를 비난한 것으로 읽힌다. 가장 최근에 나온 미북 비밀회담 내용은 미국이 북한 핵무기 폐기에서 한걸음 더 물러서서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폐기와 종전선언을 맞바꾸자고 제의했다고 한다. 이것은 ‘북핵 60-70% 폐기안’보다 훨씬 더 후퇴한 제안으로 볼 수 있다. 미국은 철저하게 국익의 관점에서 미국 본토에 닿을 수 있는 장거리 미사일만 폐기하면 종전선언도 가능하다는 입장으로 물러선 것이다.

이런 미북 비밀회담 내용들을 보면 북한을 사실상(de facto) 핵 보유국으로 인정하는 방향으로 북핵 협상의 기류가 아주 이상하게 흐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협상 전략에서도 미국이 완전히 북한에게 밀리고 있다. 원래 북핵 문제가 본질적 문제였지, 종전선언은 논의의 대상조차 아니었다.

그런데 어느덧 북한이 주장하는 종전선언이 마치 문제의 본질이고 북핵과 미사일은 부차적 문제로 밀려나고 말았다. 여기에는 문재인대통령이 조기 종전선언을 거들고 나옴으로써 북한 쪽에 힘이 실리는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다. 중국도 여기에 가세하여 한·미·일 공조체제가 붕괴되고 한·북·중 반미(反美)연대가 강화되는 모양새다. 남북관계 개선은 북핵 문제 해결 진전과 그 속도를 맞추어야 한다는 미국측의 공개적 요구에도 불구하고 문재인대통령은 이를 완전히 무시하고 민족공조노선에 따라서 9월 제3차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추진하고 있다.

미국은 과거 다른 국가들의 핵 폐기를 실현한 여러 가지 모델들을 갖고 있다. 넌-루가 법안에 따라서 16억달러를 투입하여 우크라이나, 카자흐스탄에서 핵무기와 핵물질을 완전히 폐기했다. 이들 나라의 핵 과학자들에게는 민간 연구소를 설립하여 새로운 연구의 길을 열어주었다. 핵 개발 초보 단계에 있었던 리비아의 경우는 미국 공군 수송기가 핵시설들을 테네시에 있는 오크리지 국립연구소로 실어내 직접 폐기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더 클럭 대통령은 만델라 흑인 정부가 들어서기 전에 보유하고 있던 6개 전술핵무기를 스스로 모두 폐기하고 국제원자력기구의 사찰을 받았다.

싱가포르회담 이전 미국이 염두에 두었던 이런 핵문제 해결을 위한 모델들이 모두 버려지고 북한을 사실상 핵 보유국으로 인정하는 방향으로 비밀회담에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파키스탄은 6번 핵실험을 거친 후 60개 이상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고 사실상 핵보유국 지위를 누리고 있다. 미북 비밀협상은 바로 이 ‘파키스탄 모델’을 결과적으로 따르고 있다는 사실에 우려를 갖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은 과거 6자회담에서 미국 대표에게 ‘파키스탄 모델’을 제시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그 회담의 주역 강석주 제1부상은 2016년 식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렇지만 그 뒤를 이어서 김계관-최선희-리용호로 이어지는 북한 내의 ‘미국 협상 중시파’가 이번 미북협상을 연속성을 갖고 주도하고 있다.

북핵 협상의 신참내기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북한과의 비밀회담에서 밀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 밀린다고 하기 보다는 폼페이오는 미국 국익만 챙기면 되는 것이니까 미국의 관점에서는 잘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을 두둔하고 나오는 마당에 미국은 한국의 국익은 염두에 둘 필요가 없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질지도 모른다.

미국이 북한에게 60-70% 핵무기 폐기안을 제시했다고 하면 한국 대통령이 100%로 해야 한다고 미국에게 요구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에게 이런 것을 바라는 것은 헛된 생각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제 한국인은 북핵 문제와 관련하여 트럼프대통령과 미국을 비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늘은 스스로 돕지 않는 자를 돕지 않는다고 했지 않는가.

제4차 남북고위급회담에서 리선권 조평통위원장은 오만방자(傲慢放恣)하고 안하무인(眼下無人) 식으로 행동하고 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리선권 머리 속에는 북한은 60개의 핵무기를 갖고 있고 남한은 핵무기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앞으로 우리 국민은 리선권 뿐만 아니라 북한 협상대표단으로부터 이것보다 더한 협박을 들으면서 자존심 상할 일들이 더욱 많아질 것이다. 리선권이 ‘서울 핵 불바다 협박’을 할 날이 곧 찾아올 것이다.

6·25전쟁 당시 맥아더 사령부가 만든 핵무기 파괴력에 관한 극비문서를 보면 서울 광화문 상공 1km에서 현재 북한이 보유하고 있는 것과 비슷한 TNT 4만톤의 파괴력을 가진 핵무기를 폭파시켰을 때 반경 1.5km 이내에 있는 사람은 95%, 반경 5km 내에서는 50%, 8km 이내에는 27%가 즉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청와대와 경복궁은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그런데 이 보고서에 빠진 것이 하나 있다. 서울 상공에 핵무기가 터지면 엄청난 핵낙진이 한강과 식수원으로 흘러들어가서 서울 시민들은 마실 물이 없어질 것이다. 그 결과 인명 피해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클 것이다.

현재 진행되는 미북 비밀협상과 문재인대통령이 추구하는 한·북·중 반미(反美)연대를 보면 우리 국민은 믿을 데가 아무 곳도 없이 비바람 몰아치는 거친 황야에 내버려진 형국이다. 믿을 데가 없다고 하더라고 우리 모두 살아야 할 것 아닌가. 오늘 당장 나가서 생수라도 많이 사두도록 하자. 라면만 사두어서는 안될 것이다. 북핵이 떨어지면 핵낙진 때문에 마실 물이 없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김영호 객원 칼럼니스트(성신여대 국제정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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