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방임’ 자본주의를 둘러싼 파괴적인 신화가 하나 있다. 자유시장이 사회의 "취약" 계층에게 해를 끼친다는 잘못된 개념이 바로 그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자본주의가 잔혹하게 여성과 어린이들의 노동을 착취함으로써 이들에게 해를 끼친다고 한다. 실은 그 반대다. ‘자유방임’ 자본주의는 취약계층이 생존하고 발전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 즉 선택을 제공한다. 개인이 가질 수 있는 자신을 가장 해방시킬 선택은 바로 스스로를 부양할 능력인데 이는 다시 말해 자신의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을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게 할 능력이다.

역사학자들은 이 신화를 (사실이라고) 가정하여 연구를 시작함으로써 서구 역사에서 가장 해방적인 현상들 중 하나인 산업혁명의 분석에서 극도로 가혹했다. 18세기에서 19세기에 이르기까지 세계는 기술, 산업, 운송, 무역, (저렴한 면직물과 같은) 삶을 바꾸는 혁신 분야에서 급성장했다. 이 2세기 동안 세계 일인당 소득은 10배 증가했고 인구는 6배 증가한 것으로 추산된다. 노벨상 수상 경제학자 Robert Emerson Lucas Jr.는 “역사상 처음으로 일반 대중의 생활수준이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 당시의 경제적 변동과 상당히 다르지만 비슷한 변화조차 예전에는 없었다.”고 말했다. 번영과 지식의 극적인 진보는 사회 공학이나 중앙 통제 없이 이루어졌다. 이는 인간의 독창성과 이기심이 힘차고도 맘껏 뛰놀 수 있게 해준 덕분에 나오게 된 것이다.

여성과 아동 노동의 잘못된 사용이 발생했던 적은 확실히 있었다. 그런 남용 가운에 일부는 산업혁명 당시의 에너지와 이익을 활용하려는 정부의 시도들에서 발견될 수 있다. 여타 남용이 발생한 것은 단순히 모든 사회에는 나쁜 행동을 일삼는 비인도적 혹은 비도덕적 인간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남용의 사례란 산업혁명에 대한 비판이 될 수 없고 인간 본성에 대한 비판이 될 뿐이다. 더욱이 경제적 진보는 문화적으로 빅토리아 시대의 태도가 변화되는 속도보다 더 빨랐다. 18세기에는 여성과 어린이들이 2급 시민으로 여겨지거나 때로는 움직이는 재산(動産)으로 여겨졌다. 문화와 법률을 경제와 마찬가지로 극적으로 변화시킨 것은 산업혁명이었다. 여성들이 고용과 교육을 위해 시골을 떠났을 때, 그들은 거부될 수 없는 사회적 세력이 되었다. 따라서 여성의 권리는 19세기 후반 두드러지게 성장했는데 산업혁명이 없었더라면 그렇게 될 수 없었다.

불행히도, 자유방임 자본주의와 여성의 권리 사이의 유익한 관계는 상실되었다. 20세기 후반 주류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의 평등한 지위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산업혁명이라는) 엔진을 뒤집기 위해 십자군 운동을 펼쳤다. 이들은 시장에서의 자유를 옹호하는 대신 평등이라는 명목으로 여성들을 위한 특권을 법률 속에 편입시키고자 하였다. 이들은 자유시장과 자유방임을 탄압의 도구인 양 악마화시켰고, 이런 탄압을 차별철폐, 성희롱 법, 반(反)차별 소송, 할당제 및 여타 수많은 직장 규제들을 통해 구제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 과정에서 산업혁명은 여성과 어린이의 복지와 관련하여 거대한 사탄으로 묘사되었다. 이런 묘사는 사실의 잘못된 묘사와 이데올로기에 의존한 것이다.

아동에 대한 사실의 허위진술

아이들과 산업혁명이 같은 하나의 문장 속에 언급되는 순간 다음과 같은 끔찍한 이미지가 떠오른다. 밧줄에 매달린 채 지하탄광 속으로 내려가는 5세 아이, 위험한 섬유공장에서 일하는 바짝 마른 아이들, 한 국자의 죽을 더 달라고 나무 사발을 내미는 Dickens의 소설 속 소년 Oliver(역주: 찰즈 디킨스의 소설, ⟪올리버 트위스트⟫에 나오는 주인공 소년)의 이미지가 바로 그것이다. 이런 이미지들은 자유시장과 산업혁명을 저주하는 데 이용된다. 때때는 이런 이미지들이 아동노동의 잔혹성을 억제하기 위해 ⟨아동노동법⟩을 통과시킨 인도주의적 정치인들을 찬양하는 데 사용되기도 한다. 이런 분석은 그 어떤 아이들의 착취에 대해 품위를 지닌 사람들이 느낄 (이해할 만한) 공포감을 강력하게 파고든다. 그러나 이는 심각한 결함이 있다.

그 결함 중 하나는 이런 분석이 핵심적인 차이점을 놓치고 있다는 점이다. 19세기 초엽 영국에는 두 가지 유형의 아동 노동이 있었다. 자유로운 아동과 정부의 보호 아래 있던 교구 아동 또는 "빈민가" 아동이 그것이다. 역사가인 J. L. Hammond와 Barbara Hammond는 영국의 산업혁명과 아동노동에 관한 그들의 연구가 결정적임을 인정받는 이 분야의 권위자인데 이들은 이런 구별을 인식하였다. 자유시장 경제학자 Lawrence W. Reed는 “아동노동과 영국의 산업혁명”(Child Labor and the British Industrial Revolution)이란 에세이에서 이 구별의 중요성을 한 걸음 더 나아가 강조했다. 그는 이렇게 썼다. “자유노동 아동들은 부모나 보호자와 함께 살았고 낮에 부모나 보호자가 동의할만한 수준의 임금을 받고 일했다. 부모들은 자녀를 비정상적으로 혹독하거나 위험한 작업 환경에 보내기를 거부할 때가 많았다.” Reed는 “사설공장의 소유주는 ‘자유노동’ 아동을 강제로 자신의 지배 아래 예속시킬 수 없었다. 그들은 그 아동들로 하여금 부모가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에서 일하도록 강요할 수 없었다.”고 지적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교구 아동들은 정부 관료의 직접적인 권위 아래 있었다. 교구 작업장(作業場)들은 수세기 동안 존재했지만, 짓밟힌 자에 대한 사람들의 동정심은 1832년 빈민구제를 위한 세금이 1760년보다 5배 이상 높았기 때문에 약화된 상태였다. (Gertrude Himmelfarb의 저서 ⟪빈곤의 개념⟫(The Idea of Poverty)」는 이러한 태도의 변화를 기록하고 있다. 1832년 부분적으로는 노동력에 대한 갈구가 강했던 제조업자들의 요청에 따라 ⟨왕립 빈민법위원회⟩ 로열드 푸르 법률위원회 (Royal Poor Law Commission)는 “빈민 구제를 위한 법률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이 위원회의 보고서는 빈민층을 다음 두 가지 기본 범주로 분류했다. 정부 지원을 받은 게으른 거지형 빈민. 그리고 자조(自助)하는 근면한 빈민층. 이런 조사의 결과 탄생한 것이 1834년의 빈민법(the Poor Law of 1984)였다. 정치가 Benjamin Disraeli는 이 법률을 “빈곤은 범죄”라는 선언이라고 불렀다.

그 빈민법은 종전에 있던 (보조금과 무상보조들과 같은) 실외 구호를 “빈민자 가옥”으로 대체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극빈 아동들이 실질적으로는 이 가옥 속에 투옥된 셈이었다. 사람들이 이 빈민자 가옥에 들어가려고 신청하는 것을 억제하기 위해 신청 조건을 의도적으로 가혹하게 만들었다. 영국의 거의 모든 교구에는 “한 무더기”의 버려진 작업장 아동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공장들에 실질적으로 사고 팔렸다. 이들은 가장 공포스런 아동 노동을 경험했다.

섬유 공장에서의 “쓰레기 수집자”의 비참한 입장을 생각해보라. 대개 쓰레기-수집자는 6살가량의 어린 아이들이었는데 기계 아래에서 풀려나온 솜들을 수집했다. 기계가 돌고 있기 때문에 그 작업은 위험했고 끔찍한 부상을 당하는 것은 보통이었다. 기꺼이 국가를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사용하려는 사업가들에게는 “다행스럽게도” 정부는 교구 아동들을 돌아가고 있는 기계 밑에서 일하도록 보내는 데 대해 아무런 불만도 갖지 않았다. 교구 아동들 대부분은 그와 같은 일 대신에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굶주리거나 범죄자 생활을 하는 것밖에는 없었다.

영국에서 출판된 첫 번째 산업소설이 Frances Trollope의 ⟪마이클 암스트롱: 공장 소년⟫(Michael Armstrong: Factory Boy)이었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마이클은 극빈 아동들을 위한 기관에 견습공이 되었다. 올리버 트위스트가 그의 부모나 개인 상점 주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잔인한 작업장 (정부)관리들에 의해 학대당했다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작업장 관리들에 비하면 (소설 속 인물) Fagin은 차라리 인도주의적이다. Dickens 자신이, 12세의 나이에, 그의 가족이 채무자의 감옥에 있었고, 공장에서 노예가 된 극빈 아동이었다는 것을 기억하라. Reed는 “영국에서 공장 아동들에게 적용한 최초의 법은 ‘자유노동’ 아동들이 아니라 이러한 노예화한 교구 견습생들을 보호하기 위해 통과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법률은 그렇게 하는 데 있어 명시적이었다.

아동 노동에 대한 규제를 옹호하면서, 사회 개혁가들은 이런 남용을 교정할 것을 정부에 요구했지만, 이는 정부 자신이 크게 책임이 있는 문제를 정부를 보고 바로잡으라고 하는 셈이었다. (아동 노동의 경우에도) 다시 한 번 정부는 마치 치료자인 양 가장하는 질병이었다.

여성에 대한 오도된 이데올로기

아동노동과 산업혁명에 관한 사실들이 심각한 결함이 있는 이데올로기로 인해 심각하게 왜곡되듯이 여성의 지위에 대한 분석도 유사한 결함을 보인다. 충분한 근거를 가지고 여성이 산업혁명의 주요 수혜자라고 주장할 수 있다. 이는 주로 혁명 이전 시대의 여성의 낮은 경제적 지위 때문이고 또 단순히 여성들이 남성들에 비해 얻을 게 더 많았기 때문이다.

여성들이 농촌을 떠나서 도시에서 공장 임금과 가사 노동을 할 기회를 얻었을 때, 전례 없는 숫자의 여성들이 도시로 쏟아져 들어왔다. 현대의 독자들의 눈으로는 ‘자신의 머리 위에 지붕을 지니기’(노숙을 피하기 위해) 매춘으로 돌아선 다수의 여성들이 직면한 근로나 삶의 조건은 끔찍했다. 그러나 그 조건이 아무리 끔찍했더라도 하나의 근본적인 사실을 무시하지는 말아야 한다. 그 사실은 바로 여성들 자신들은 도시로의 탈출이 자신들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믿었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여성들은 도시로의 탈출 여행을 감행하지 않았거나 감행했더라도 도시에 대한 환상에서 벗어나 농장의 삶으로 복귀했을 것이다. 공장 근로가 18세기 또는 19세기 여성들에게 “해를 입혔다”고 말하는 것은 여성 자신들이 행동으로 표현한 선호를 무시하는 것이다. 그런 주장은 그들의 선택이 내는 목소리를 무시하고 있다. 분명히, 여성들은 공장 근로가 ‘개선’이라고 믿었다.

성-페미니즘 역사의 상당 부분은 실제 선택을 행하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무시하려는 시도이다. 그렇게 하는 일반적인 방법은 선택을 둘러싼 현실을 재해석하고, 그런 다음 이 재 해석을 부과하여 그 “선택”이 더 이상 자유로운 게 아니라 강요된 것으로 보이게 하는 것이다(역주: 이것은 18세기와 19세기 여성들이 심각하게 제한된 선택을 했고 단지 나쁜 선택지들 중에서 가장 좋은 선택을 하고 있다는 주장과는 다르다. 공장 노동은 강제적인 선택이었고 농촌 노동보다 못하다는 것이 핵심적인 주장의 내용이다).

성 차별주의 페미니즘에 의한 산업혁명의 역사적 분석을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저술은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한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가족, 사유 재산 그리고 국가의 기원⟫( The Origin of the Family, Private Property and the State) (1884)이다. 엥겔스는 여성의 억압이 핵가족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했지만 가족 자체가 역사를 통해 여성을 예속시켰다는 개념에는 경멸감을 가지고 있었다. 대신 그는 자본주의의 어깨에 단호하게 그 책임을 올려놓았다. 그는 자본주의가 여성들이 가족 안에서 한때 누렸던 명성을 파괴했다고 믿었다.

엥겔스는 이렇게 썼다.

“여성이 사회의 시작에서부터 남성의 노예였다는 것은 가장 터무니없는 개념 중 하나이다. … 여성들은 자유로웠을 뿐만 아니라 문명의 초기 단계에서는 매우 존경받는 위치에 있었고, 씨족들 사이에서 커다란 힘이었다.”

그래서 그의 저술은 산업혁명 이전의 시대를 여성들에게 권한이 부여되었던 시기로 낭만화하고 있다. 엥겔스는 산업화가 가정과 생산적 작업을 분리시켰다고 주장하고, 이 분리를 통해 불평등(즉, 핵가족)이 진화되어 나왔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여성 노동은 하나의 중요하지만 (자본주의 기계에 먹이를 대주어 남성의 노동을 해방시키는) 종속적인 성격을 가지게 되었다고 보았다. 아마도, 수명 연장과 정치적 권리를 포함하여 산업혁명으로 들어온 부인할 수 없는 여성들의 진보는 너무 높은 비용으로 구입되었다고 보는 셈이다.

그렇지만 엥겔스의 분석은 성-페미니스트들에게 하나의 문제를 안겨줬다. 그는 어떤 계급에 속하는지, 즉 생산수단과의 관계에서 인간을 분석했기 때문에 성(性)으로서의 남성들이 여성에게 권력을 행사하는 것은 아니라고 봤다. 성-페미니스트들은 계급 억압뿐만 아니라 성의 억압을 분석하는 틀을 원했다. 왜 (남성과 구별되는) 여성이 자본주의와 상충되는 이해관계를 갖는지 설명하기 위해 성-페미니스트들은 그들의 분석에서 엥겔스를 벗어났다. 그들은 가부장-지배(patriarchy)―남성 자본주의―의 이론을 진화시켰다. 이 이론에 의하면 여성들은 자유방임 자본주의의 메커니즘을 통해 남성 문화에 의해 억압당한다. 이것은 자유시장의 기회가 남성의 편견이나 특권에 의해 문화적으로 억압받는 여성들을 위한 사회적 치료제라고 보는 이 글의 전반부의 분석과는 완전히 대조적이다.

좀 더 명시적으로 이 치료제는 어떤 모습인가? (남성 혹은 여성인) 고용주는 자신이 쓰는 1달러마다 이익을 극대화하고자 한다. 이것은 피고용자의 장점들 이외에는 눈을 감도록 강력한 유인을 만들어낸다. 고용주인 그는 혹은 그녀는 생산성 이외의 인종, 성별, 종교 등에는 장님처럼 관심이 없도록 만든다. 비슷한 숙련도를 지닌 남성보다 1달러 적은 가격에 일하는 숙련 여성은 대개 일자리를 얻는다. 혹시 못 얻었다면 거리 저쪽 편에 있는 (성적) 편견이 없는 경쟁자가 그녀를 고용할 것이고, 편견을 지닌 경쟁자는 경쟁 우위를 잃을 것이다. 이러한 (시장의) 역학이 대규모로 발생하면, 여성 근로자들은 점점 더 높은 임금을 요구할 수 있게 되고 그 1달러 격차는 점차 줄어 사라질 것이다. 이런 “임금 동일화” 요인이 즉각 발생하지 않기도 하고 또 완벽하게 작동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고용주들은 순전히 자기 이익의 동기로 인해 인종과 성에 따른 차별을 하지 않게 된다. 그들은 자기-이익의 이름으로 그렇게 하는데, 모든 이들이 혜택을 본다.

이 평준화 과정에 반대하는 페미니스트들은 평등 그 자체를 옹호하는 게 아니다. 그들은 “옳은” 이유들에서 “적절한” 조건들 위에서만 존재하는 평등을 옹호하고 있다. 산업혁명에 대한 그들의 반대들은 경험적이지 않고 이념적이다. 그들이 공장에 모여든 18세기와 19세기 여성들의 목소리를 좋아하지 않는 것처럼, 자유 시장이 평등에 대해 말하는 것을 마찬가지로 아예 무시한다.

결론

산업혁명에 대한 “중상모략”이 사실의 왜곡 때문이든 혹은 이데올로기의 부과 때문이든 무관하게 산업혁명은 ‘역사’에 아니면 차라리 주류 역사학자들에게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해야한다. 산업혁명은, 어떤 시기에도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불의(不義)를 없애지는 못했지만, 자유를 확립했다. 사람들은 경멸 없이는 대할 수 없을 정도로 이 자유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는데 산업혁명이 그런 자유를 확립했다. 아마도 산업혁명의 명성을 구원하는 은총은 산업혁명이 창출한 부인할 수없는 번영일 것이다. 번영과 자유가 불가분으로 연결되어 있지만 오늘날에는 번영이 자유보다 더 존중받는 것처럼 보이지만 말이다.

저자)Wendy McElroy
웬디 맥클로이(Wendy McElroy)는 다수의 책을 저술한 저술가로 다음 두 웹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다. wendymcelroy.com 그리고 ifeminists.com.

역자) 김이석(아시아투데이 논설심의실장)

 

원문)https://mises.org/library/redeeming-industrial-revolution
▶자유와 시장경제에 관한 더 많은 글을 「미제스와이어」(www.mises.kr)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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