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고위급회담서 北리선권 "접촉중 제기한 문제 南 해결않으면 문제 생겨"
韓美동맹이탈, 경협재개→제재이완 노려온 北…美 주시 속 운신 폭 좁아진 文정부
北 9.9절 참석요구說에 靑은 "요청 안왔다"고만…국가정체성 훼손우려 남아
WP "文대통령 평양행이 北 체제정당성 선전 될수도" 방북 자체도 경계

지난 13일 제2차 남북 고위급회담에서 '9월 중 평양서 3차 정상회담' 수준의 합의만 이룬 채, "회담 공개" 으름장을 놓는 북한에 저자세마저 노출한 문재인 정부의 회담 추진을 둘러싸고 우려가 커지고 있다.

우선 청와대가 12일까지만 해도 고위급회담에서 구체적인 일정과 방북단 규모까지 합의될 것이라고 공언한 것과는 달리, 13일 구체적인 날짜가 도출되지 못한 것은 물론 공동보도문도 세줄짜리로 빈약했다. 북측은 구체적인 합의 도출 이전에 남측에 자신들이 제기한 '문제'를 해결할 것을 종용했다.

북측 수석대표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위원장 리선권은 고위급회담 종결회의 당시 "북남 회담과 개별 접촉에서 제기한 문제들이 만약 해결되지 않는다면 예상치 않았던 문제들이 탄생될 수 있고, 또 일정에 오른 모든 문제들이 난항을 겪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남측에 엄포를 놨었다.

이는 그동안 북한 정권이 '판문점선언 이행'이라는 명분을 들어 "선언이 응당한 결실을 보지 못하고 있다"며 ▲한미동맹 이탈 ▲남북경협 재개를 통한 대북제재 공조 이탈을 종용해온 것의 연장으로 풀이된다.

지난 8월13일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열린 남북고위급회담에서 우리측 수석대표 조명균 통일부 장관(왼쪽)과 북측 수석대표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이 회담을 마치고 악수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지난 8월13일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열린 남북고위급회담에서 우리측 수석대표 조명균 통일부 장관(왼쪽)과 북측 수석대표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이 회담을 마치고 악수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북측이 직접 지목까지 한 개성공단 재가동이나 금강산 관광 재개는 물론 5.24조치 해제에 선뜻 나서지 못해왔다. '대북 퍼주기'라는 비판 여론은 물론 이런 독자행동을 벌일 경우 미국발(發) '세컨더리 보이콧(제3자 제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겹쳤기 때문으로 보인다. 

특히 남북간 철도·도로 현대화 등 대규모 예산을 소요할 관심사업도 대북제재에 가로막혀 문재인 대통령 직속 북방경제협력위원장 출신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스트레스"라고 공언까지 한 상황이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북측 관심현안에 호응해 주기에는 녹록지 않다는 관측이다. 

정부부터가 지난해 8월 이후 유엔 안보리 결의와 미국 독자제재에 따른 '수출입 금지품목' 북한산 석탄과 선철 등 광물이 대거 밀수됐다는 의혹을 매듭짓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일단 석탄 밀수출로 '제재위반자'임이 명백한 북한 정권과 3차 남북정상회담을 급(急) 추진한다는 점에서 '명분 부족'과 '책임 회피'라는 비판이 뒤따르고 있기도 하다.

북측은 선(先) 대북제재 완화 및 종전선언과 같은 무리한 요구로 일관하고 미국은 거듭 일축하는 가운데, 비핵화 의제에는 소극적이고 "연내 종전(終戰)선언"에 집착하는 태도로 북한 정권과 코드를 맞춰온 문재인 정부는 운신의 폭이 그리 넓지 않다.

남북경협의 물꼬를 트려는 의중이 있더라도 현실의 벽은 높다. 

미 국무부 관계자는 13일(미 현지시간) '남북한이 9월 중 평양에서 3차 정상회담을 개최하기로 한 데 대해 논평해달라'는 미국의소리(VOA) 방송 요청에 "문 대통령의 말처럼, 남북관계 개선과 북한 핵 프로그램 문제 해결은 별개로 진전될 수 없다"면서 "일치된 대북 대응"을 강조하며 단단히 선을 그었다.

VOA는 또 존 볼튼 미 백악관 국가안보(NSC)보좌관이 지난 5일 '폭스뉴스 선데이'에 출연해 "미국의 우선순위는 (남북경협이 아니라) 비핵화"라고 역설한 대목을 이날 전하기도 했다. 

3차 남북정상회담 일정이 불분명함에 따라, 만약 문 대통령이 북한의 정권수립 기념일(오는 9월9일, 일명 9.9절)에 맞춰 평양을 방문한다면 국가정체성이 크게 훼손될 수 있다는 비관적 전망마저 있다. 문 대통령이 한국 헌법상 국가로 간주하지 않는 북한의 자칭 '건국'을 인정하는 모습을 보일 수 있다는 우려에 기인했다.

다만 청와대는 14일(한국시간) 남북고위급회담 공동발표문에 정상회담 날짜를 적시하지 않은 데 대해 "확정이 됐는데 발표를 안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미정"이라고 관계자가 밝혔다.

청와대 안팎에서는 이달 말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방북, 내달초 9.9절 행사가 있은 뒤인 중순 무렵에야 3차 남북정상회담이 가능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문정인 대통령통일외교안보특별보좌관은 지난 13일 한 언론 인터뷰에서 '남북정상회담 날짜가 정해졌다고 보느냐'는 물음에 "거의 그렇게 봐야 된다. (북측이) 현실적으로 9.9절을 (기념행사를) 끝내야 되니까 9.9절 끝나고 일하는 날인 12일부터 13일 사이에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럼에도 '북한이 우리 측에 9.9절 관련 요청을 해 정상회담이 늦춰졌다'는 분석이 일각에서 나오자, 이날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팩트를 말하면 북한은 9.9절 관련 (참석) 요청을 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하지만 이는 '문재인 정부의 요청이나 논의 자체도 없었다'고 해석할 수는 없는 만큼 의혹은 완전히 거둘 수 없다는 지적이다.

한편으로는 문 대통령의 방북(訪北) 그 자체가 북한 정권의 체제 정당성을 주장하는 수단이 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미 워싱턴포스트(WP)는 전날 보도에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최근 몇 주간 북한의 비핵화를 설득하는 데 있어 격랑을 만난 것으로 보이지만 남북은 점진적 관계 개선에 있어 진전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문 대통령의 평양 방문이 북한 입장에서 체제 정당성을 주장하는 데 있어 '큰 선전'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기호 기자 rlghdlfqjs@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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