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이라는 삼성의 설명...이윤추구 활동이 일자리 창출하고 경제 활성화 시켜
대기업 두들겨 패는 환경에서 '정치적 결정'을 해야 할 때도 있지만 경제적 결정에서 너무 벗어나지 않아야

현진권 객원 칼럼니스트
현진권 객원 칼럼니스트

삼성이 향후 3년간 180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단일그룹으로는 사상 최대 규모의 투자다. 실로 놀라운 계획이다. 단일 기업의 이 같은 ‘통 큰 투자’를 통해 우리 경제에 활력을 일으킬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기업은 국가가 아니다. 기업의 투자결정과 정부의 투자결정은 서로 다른 시각에서 접근해야 한다. 기업의 투자는 이윤을 위한 것이고, 정부투자는 국가의 경제 활성화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삼성의 투자결정은 국가 차원에선 그럴 듯하지만, 기업 입장에서 합리적 경제적 결정이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재정학에서 지난 60여 년 동안 기업의 투자행위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됐다. ‘신고전 투자이론(neoclassical investment theory)’에 의하면 기업의 투자는 정부정책 수준에 의해 결정된다. 이때 가장 효과적인 정책수단은 법인세제다. 수많은 이론 및 실증 연구를 통한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법인세는 기업의 자본투자 가격을 결정하는 중요한 정책이므로, 법인세 인하정책을 통해 기업의 자본투자를 효과적으로 유도할 수 있다. 둘째, 기업의 투자증가는 국가의 경제 성장률을 높인다. 현재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등 선진국들이 법인세 인하 정책을 펴는 배경에는 이런 경제 이론이 있다. 즉 법인세 부담을 인하해서 국가의 경제성장을 높이겠다는 의도다.

기업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법인세 인하 등 여러 가지 정책들을 통해 자본가격을 낮추면 기업은 자본투자를 늘리게 된다. 가격이 떨어지면, 자본수요가 늘어나는 ‘수요법칙’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법인세 인하정책을 통해 기업투자를 성공적으로 이뤄냈다. 많은 기업들이 미국에 투자하게 됐고, 미국의 성장률은 획기적으로 올라가고 있다. 미국의 법인세율을 35%에서 21%로 인하할 것이 확정될 시점에 일본의 토요타 자동차는 미국에 향후 5년간 10조 8000억 원의 기계 및 설비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이렇게 빠르게 반응한 토요타의 투자행위의 이면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또 다른 법인세 인하정책이 있었다. 즉 향후 5년간 기업의 설비 및 기계자본 투자액에 대해 전액을 비용 처리할 수 있는 ‘즉시상각’ 제도를 도입한 것이다. 만약 10조 8000억 원 전부를 기계장비 자본에 투자한다면 이 액수만큼 비용이 처리되므로, 세금을 낼 필요가 없을 정도의 엄청난 경제적 유인책을 준 것이다. 토요타의 통 큰 투자는 국가를 위한 정치적 결정이 아닌, 법인세 부담을 줄이려는 경제적 결정이었다.

이번 삼성의 통 큰 투자결정에 대해선 경제이론으로 설명하기가 어려운 면이 있다. 우리의 기업 환경이 투자를 저하하는 정책과 국민들의 ‘반기업 정서’로 인해 대규모 투자할 만한 경제적 결정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모든 국가들이 경쟁적으로 법인세를 인하하는데, 우리만 법인세율을 22%에서 25%로 인상했다. 또한 대기업만이 통 큰 투자를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기업은 단가 후려치기, 사익편취 등 ‘갑질’이나 하는 악이라는 인식이 정책 결정자들의 머리에 깔려 있다. 경제이론으로 설명하자면 투자자본의 가격이 높아졌는데, 삼성이 오히려 투자를 획기적으로 높인 것이다. 가격과 수요와의 관계를 설명하는 수요법칙에 반하는 결정이다.

삼성의 투자결정을 설명하는 배경을 보면 ‘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다. 이른바 삼성이 기업인지 국가인지 헷갈리게 하는 설명이다. 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은 기업이 내세울 투자배경이 아니다. 기업은 이윤 극대화만을 위한 활동을 하면, 일자리는 파생적으로 생겨나는 것이고, 결과적으로 경제는 활성화되는 것이다.

경제이론은 모든 경제주체들의 행위를 전부 설명할 수 없다. 때론 경제변수로 설명하지 못하는 기업행위가 있다. 특히 한국처럼 정권이 바뀔 때 마다 ‘대기업 두들겨 패기’가 포퓰리즘 정책인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경제적 결정’에 반하는 ‘정치적 결정’을 해야 할 때도 있다. 필자가 우려하는 것은 정치적 결정을 한다고 해도, 경제적 결정에 너무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 앞으로 삼성이 어떤 구체적인 투자결정을 할지 모른지만, 삼성의 주된 활동은 이윤 극대화가 되어야 한다. 이윤을 무시하고, 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이 목표가 되면 삼성기업은 경제적 어려움에 처할 수밖에 없다. 삼성이 사회에 공헌하는 최대 역할은 가능한 많은 이윤을 내는 것이다. 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은 정부역할이지 삼성역할이 아니다. 물론 이런 거창한 목표를 내새우고도 충분히 이윤을 내면,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그러나 국제적으로 경쟁이 치열한 개방화 시대에 이윤 내기란 쉽지 않다. 이윤만 생각하고 기업 활동을 해도 살아남기 어려운 국제환경에서 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이란 또 다른 무거운 짐을 지게 하는 현 시국이 실로 걱정된다.

현진권 객원 칼럼니스트(前 자유경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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