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안보리 대북제재결의ㆍ5.24제재 위반ㆍ美정부 '세컨더리 보이콧' 대상 될 수도
샤이닝리치號 '러시아산 원산지'도 위조된 정황 뚜렷
관세청, 10일 조사결과 발표 예정...관세법위반(부정수입)ㆍ사문서 위조 혐의
남동발전ㆍ한전ㆍ거래은행까지 美정부 조사 받을 수도
文정부, 일부 업체에 책임 떠넘기면서 '꼬리 자르기'하나?
당국 관계자 "(정부가) 과거와 달리 북한 동향을 자체적으로 추적, 감시할 의지와 능력 없다"

관세청은 지난해 일부 기업이 ‘러시아산’이라며 국내에 반입한 석탄들에 대해 ‘북한산’으로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관세청은 10일 오후 2시 정부대전청사에서 '북한산 석탄 반입 의혹' 조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국내 일부 석탄 수입 업체가 북한산 석탄을 러시아산으로 속여 반입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국내법에 의한 처벌뿐만 아니라 유엔과 미국의 제재 위반으로 처벌받을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9일 관계당국에 따르면 관세청은 ‘스카이 엔젤호’ ‘리치 글로리호’ ‘샤이닝 리치호’ ‘진룽호’ ‘안취안저우66’ 등 5~9척에 달하는 북한산 석탄 국내 밀반입 의혹 선박들에 대한 조사를 이미 마치고 북한산이란 결론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 선박들은 작년 5~11월 인천, 포항 등에 북한산 석탄을 러시아산으로 속여 국내에 들여왔다. 

서울세관은 작년 11월 8일 남동발전이 H사를 통해 러시아에서 반입한 석탄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관세청 조사 대상인 ‘스카이 엔젤호’ ‘리치 글로리호’ ‘샤이닝 리치호’ ‘진룽호’ ‘안취안저우66’는 총 16차례 인천, 포항, 동해항 등에 입항해 석탄 7만 6790.65톤을 하역했다. 이중 14차례는 러시아 나홋카항과 홀름스크항처럼 북한산 석탄의 환적 본거지로 의심받는 항구에서 출발했다. 이 선박들이 국내에 반입한 석탄의 88.9%인 6만 7357.65톤은 러시아산으로 신고됐다. 그러나 관세청 조사 결과 일부 석탄 수입업체가 값싼 석탄을 들여오기 위해 북한산 석탄을 러시아산으로 속여 수입한 것으로 확인된 것이다.

북한산 석탄이 국내 밀반입된 사실이 확인됨에 따라 관세청과 검찰은 해당 선박들에 적용할 법조항을 두고 의견을 조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관세청은 부정수입죄에 따른 관세법 위반과 형법상 사문서 위조 혐의로, 검찰은 남북교류협력법 위반으로 기소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샤이닝리치호는 지난해 10월 가짜 원산지 증명서로 동해항을 통해 국내에 석탄을 들여온 것으로 9일 확인됐다. 자유한국당 북한산석탄수입의혹규명특위 소속 정유섭 의원실이 입수한 샤이닝리치호의 당시 원산지 증명서를 발급 기관인 러시아 상공회의소에 확인한 결과 존재하지 않는 서류인 것으로 나타났다. 샤이닝리치호가 출처 불명의 석탄을 러시아산으로 둔갑시켜 원산지를 조작한 정황이 드러난 것이다.

또한 샤이닝리치호가 들여온 석탄의 kg당 발열량은 5907Cal로 이 석탄을 납품받은 남동발전이 입찰 공고 때 내건 최소 기준인 6300Cal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남동발전을 물론 관세청도 별다른 원산지 확인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

해당 업체들의 행위는 북한산 광물의 수입을 전면 급지한 유엔 안보리 결의 2397호와 우리정부의 5.24제재 위반일 뿐 아니라 미국 정부의 '세컨더리 보이콧'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세컨더리 보이콧은 북한과 거래하는 자국 기업뿐 아니라 제3국 기업까지 제재하는 가장 강력한 경제 제재다. 테드 포 미 하원 외교위원회 테러리즘·비확산·무역 소위원장은 8일(현지시간) "북한산 석탄 밀반입에 연루된 한국기업에도 세컨더리 보이콧을 부과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어떤 나라가 됐든 대북 제재 위반 행위를 멈춰야 한다"며 "모든 국가는 북한으로 돈이 들어가는 것을 막아야 한다. 예외인 나라는 없다"고 강조했다. 또한 미 의회 휴회기가 끝나는 즉시 추가 대북 제재를 본격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미국이 중국, 러시아 등 북한의 우방국 기업들에 세컨더리 보이콧을 부과한 적은 있다. 그러나 미국의 우방국 중엔 아직 그런 사례가 없다. 북한산 석탄 밀수입 업체들뿐만 아니라 석탄을 납품받은 남동발전, 한국전력, 이 업체들과 거래한 금융기관 등에 대한 미 정부의 조사가 진행될 수도 있다. 제재가 발동될 경우 해당 업체는 미국 정부, 기업과의 거래, 국제 결제망 이용이 전면 금지된다.

하지만 우리정부는 "세컨더리 보이콧 가능성은 극히 낮다"는 안일한 태도를 보이고 있어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외교부 장국자는 "이번 북한산 석탄 반입 의혹의 경우 초기 인지 단계부터 한미 공조가 긴밀히 이뤄진 데다 문제 업체는 그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을 것이기 떄문에 미국이 우리 기업 등을 제재 대상에 올릴 가능성은 낮다"고 했다. 조현 외교부 2차관은 여야 원내 대표들에게 "수입업자의 일탈 행위일 가능성이 크다"며 "지금 미국 정부가 우리한테 세컨더리 제재나 이런 것은 전혀 맞지 않는 이야기"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이번 대북 제재 위반 업체 적발로 인해 한미 간 신뢰 관계가 무너지고 국제사회에서 한국에 대한 신인도도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또한 정부가 일부 업체에만 책임을 떠넘기면서 너무 쉽게 '꼬리 자르기'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자칠 불똥이 남동발전이나 한전, 은행 등으로 번질 경우 그 파문은 걷잡을 수 없다. 정부의 대응 미숙과 이번 사건에 어디까지 관여했지에 대한 책임 추궁도 불가피하다. 국내 정부 당국 관계자는 "(정부가) 과거와 달리 북한 동향을 자체적으로 추적, 감시할 의지와 능력도 없다"며 "북한 동향 보고는 윗선에서 반길 리 없다는 분위기도 만연해 있다"고 했다.

양연희 기자 yeonhee@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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