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동발전과 계약한 무역중개상 H사와 '진룽호' 떠난 포항신항 현장 가보니
H사 사무실은 간판 없이 오피스텔 호수만 적혀 있어
관리비는 내지만 입금자는 H사 아닌 다른 상호로 확인돼
H사, 러시아산 위장 석탄 반입했다는 R사와도 밀접한 관계라는 의혹 제기돼
윤한홍 의원 "H사 관계자 행적 등 정권과 유착됐는지 여부도 확인해야"
北석탄 국내 반입 의심되던 '진룽호' 떠나고 적막한 포항신항

유엔 안보리의 대북(對北)제재 결의에 의해 거래가 전면 금지된 북한산 석탄이 국내에 불법반입됐다는 의혹이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는 가운데 최근 특히 주목받는 곳이 있다. 경북 포항에 있는 무역회사 H사와 포항신항(新港) 제7부두이다.

H사는 지난해 11월 이후 두 차례에 걸쳐 남동발전이 북한산으로 의심되는 석탄을 반입하는데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윤한홍 자유한국당 의원은 H사를 거쳐 남동발전에 북한산으로 의심되는 석탄이 반입됐다며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해당 의혹과 관련된 문의를 하기 위해 H사와 접촉을 시도했지만 전화는 연결되지 않았다. 8일 서울에서 내려가 오후 4시 30분경 찾아간 H사의 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해당 사무실에는 간판은 없이 오피스텔 사무실 호수만이 적혀 있었다.
 

H사 소재지로 등록된 포항의 한 오피스텔 사무실 문 앞.

H사 소재지로 등록된 오피스텔을 수소문한 결과, H사라는 이름에 대해 낯설어 했다. 건물 어디에도 H사라는 이름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H사 소재지로 등록된 사무실에는 과거 1~2명이 오가는 모습이 보였다고 하며 최근에는 달리 드나드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고도 전했다. 상호명이 언제부터 없었는지 정확히 기억하는 사람들도 없었다.

H사로 등록된 소재지는 현재도 오피스텔 관리비를 내고는 있는 것으로 확인됐으며, 다만 해당 업체가 등록된 사무실의 관리비를 입금하는 곳은 H사가 아닌 다른 상호로 찍혀있다는 점이 눈에 띄었다.

H사측은 이날 끝내 전화연결이 닿지 않았는데 다만 이전에 다른 언론사와의 통화에서 ‘세관에서 조사 중인 사항이고 별다른 혐의도 발견 안됐는데 왜 찾아오느냐’며 예민한 반응을 보인 것으로 전해진다.

건물에서 만난 ㄱ씨는 세관에서도 한달여 전에 다녀갔으나 사무실이 비어있어서 그날 별다른 소득 없이 돌아갔다고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다만 세관 방문 시기에 대해서는 주의깊게 인식하지 않아 정확한 기억은 아니라고 부연했다.

오피스텔 입주자 ㄴ씨는 북한산 의심 석탄 연루 의혹과 관련해 “이렇게 자리에 없어서 해결될 일인가. 혐의가 없다면 정면으로 돌파해야하는 것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또 다른 ㄷ씨는 “1~2명이 오가는 작은 회사인데 북한산 석탄을 취급한다고 해도 그런 작은 회사가 관여했을까 싶다”면서 건물에 언제 다시 들어와서 얼굴을 마주볼지도 모르는데, 혐의도 확실하지 않은 의혹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이 부담스럽다는 입장을 토로하기도 했다.
 

지난 7일 윤한홍 자유한국당 의원에 따르면 남동발전은 관세청으로부터 북한산 의심 석탄 반입 사건 조사를 받고 난 이후에도 혐의 업체로부터 석탄을 들여온 것으로 확인됐다.

윤한홍 의원은 "관세청 조사를 통해 북한산 석탄 의혹이 불거진 와중에도 계속 반입을 했다는 것은 정부의 묵인 내지 방조 없이 사실상 어려운 일"이라며 "정부의 은밀한 대북 퍼주기가 아니었다면 지금 당장 각 발전사 러시아산 석탄의 전수조사를 실시해야 하고 H사 관계자의 행적 등 정권과 유착됐는지 여부도 검토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현재 H사는 또한 지난해 남동발전과 함께 한국전력의 또다른 자회사인 동서발전이 석탄 출처가 의심된다고 신고한 R사와 밀접한 관계로 추정되기도 한다. R사 2대 주주가 H사 이사로 재직했고, R사가 H사의 채무에 연대보증도 섰던 것으로 확인됐다. 야당측에선 H사와 R사의 관계에 대해 의구심어린 목소리가 나온다.

8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자유한국당 이철규 의원에 따르면, 동서발전은 작년 3월 러시아산 석탄 수입업체 R사의 석탄 출처가 의심된다고 당국에 신고한 뒤 이 회사와의 계약을 파기한 바 있다. 조선일보는 동서발전이 계약 파기 전 산업통상자원부(해외통상과), 관세청(동해세관), 경찰(울산지방경찰청) 등 3개 국가기관에 이 사실을 신고하며 석탄 출처에 대한 조사를 의뢰했다고 9일 보도했다. 관세청 조사에서 R사는 중국에서 석탄을 선적해 러시아산으로 위장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동서발전은 "당시 업계에 R사가 중국에서 석탄을 선적(船積)한 뒤 러시아를 경유, 중국산을 러시아산으로 위장해 반입한다는 소문이 파다했다"며 "중국 석탄을 선적하는 업체를 믿을 수 없어 계약을 파기했다"고 했다.

이와 같은 사례를 근거로 원산지 세탁을 통한 북한산 석탄 밀반입 의혹이 지속되는 양상이다. 평안북도의 한 무역관계자도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북한에 대한 경제 제재가 본격화해 석탄 수출 길이 막히자 조선무역회사들이 러시아 연해주 남쪽 끝에 있는 나홋카항과 블라디보스토크항에 석탄을 보낸 다음 러시아산으로 서류를 위장해 다른 나라들에 수출해왔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러한 가운데 H사 측은 러시아산 석탄을 거래했다고 항변하고 있으며, H사로부터 석탄을 공급받은 남동발전도 “석탄 수입 당시 무역중개업체인 H사가 러시아 정부가 발행한 원산지 증명서를 관세청에 제출해 정상적인 절차를 통해 통관이 됐다”며 해당 석탄을 러시아산이라고 확신한다고 밝히고 있다.

H사에서 미처 해소하지 못한 의문점들을 뒤로 하고 다음으로 방문한 곳은 포항신항이었다. 포항신항은 민간항과 달리 수출입항으로 국가 중요시설로 지정되어있어서 출입허가를 받은 뒤 들어갈 수 있다. 사진촬영도 포항지방해양수산청으로부터 허가받은 지역에 한해서만 찍을 수 있게 돼있다.
 

'진룽호'가 떠난 뒤 부둣가 모습(왼쪽)과 또다른 배가 포항신항에 입항한 모습(오른쪽)

오후 6시에 도착한 포항신항 7부두는 한적했다. 근처에서 입출항하는 배도 보이지 않았고 하역작업도 모두 끝난 상황이었다. 앞서 진룽호가 있을 당시 10여곳 이상의 언론매체들이 취재를 다녀갔지만 진룽호가 떠난 후 빈 부둣가만 남았다. 선박의 위치 정보를 알려주는 마린트래픽에 따르면 진룽호가 떠난 출항지와 차항지는 모두 러시아 나홋카항이다. 

포항신항 제7부두는 작년 10월 북한산 석탄을 국내 반입한 것으로 의심받는 선박 ‘진룽호’가 다시 한 번 석탄을 내려놓았던 장소이다. 진룽호는 지난 7일 석탄을 다 내려놓고 별다른 제재 없이 떠났다. 노규덕 외교부 대변인은 이와 관련해 “진룽호는 이번에 러시아산 석탄을 적재하고 들어왔다”며 “관계기관의 선박 검색 결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결의 위반 혐의는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관세청이 진룽호의 과거 행적을 조사하고 있는 것과 별개로 이번에 입항해 하역한 석탄은 러시아산으로 결론 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해명이 미흡하다는 지적도 곳곳에서 제기되고 있다. 외교부 해명의 근거로 제시된 ‘관련 문서를 통해 1차 확인을 했다’는 내용에 대해 위조의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포항 = 이세영 기자 lsy215@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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