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美北공동성명에 없는 "합의사항 동시적·단계적 이행" 주장
불가역적 성격의 終戰선언을 "평화보장 초보적 조치"라며 직접 종용
강경화 외교는 北과 함께 "종전선언 연내 이룬다는 목표" 되풀이
폼페이오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비핵화한 北 손상하는 어떤 위반도 말라"

한·미·북 외교장관이 함께 모였던 싱가포르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북한 정권이 미국에서 종전선언 등 선(先)체제보장에 나서지 않으면 진전시킬 의사가 없다는 입장을 내세웠다.

리용호 북한 외무상은 지난 4일(현지시간) 오후 ARF 연설에서 "미국이 건설적인 방안을 갖고 나온다면 상응하게 무엇인가를 해줄 생각도 하고 있었지만, 미국이 우리의 우려를 가셔줄 확고한 용의를 행동으로 보여주지 않는 한 우리만 일방적으로 먼저 움직이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라고 강변했다.

여기서 언급된 '우려 해소'는 그간 북한이 주장해온 종전선언을 비롯한 체제 안전보장으로 풀이된다.

리용호는 "(싱가포르 미북정상회담) 공동성명의 모든 조항들을 균형적으로, 동시적으로, 단계적으로 이행해 나가는 새로운 방식만이 성공할 수 있는 유일하게 현실적인 방도"라고 주장했다.

자신들이 미국인 억류자와 미군 유해를 일부 송환한 것에 상응해 미국이 동시에 체제보장 조치에 나서라는 이른바 '동시적·단계적 접근법'이다. 

2018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 참석한 리용호 북한 외무상이 지난 8월4일 오후 숙소인 싱가포르의 한 호텔로 들어서고 있다.(사진=연합뉴스)
2018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 참석한 리용호 북한 외무상이 지난 8월4일 오후 숙소인 싱가포르의 한 호텔로 들어서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리용호는 나아가 "미국에서는 조선반도 평화 보장의 초보의 초보적 조치인 종전선언 문제에서까지 후퇴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며 '실행한다면 되돌릴 수 없는' 성격의 종전선언을 직접 종용했다.

리용호는 하루 전(3일) 만찬 행사 때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조우했을 때도 종전선언을 언급했다. 

이와 관련 강경화 장관은 5일 브리핑에서 "(이 외무상과) 종전선언에 대해서도 의견 교환이 있었다.(이 외무상의) 공개 발언을 보시면 내용을 유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북측과 궤를 같이했다.

강 장관은 이와 관련 연내 종전선언에 대해 "계속 협의를 하고 있으며, 이번에 미국·중국과도 상당한 협의가 있었다"고 언급했다.

강 장관은 내달 말 열리는 유엔총회가 종전선언 기회가 될지에 대해 "유엔총회를 중요한 계기로 본다"면서도 "총회를 넘어 다른 중요한 계기들이 있다. 그 전후로 해서 상황에 맞춰 종전선언을 연내에 이루겠다는 목표를 우리가 지속적으로 밝히고 있고, 주요 협의 대상국도 이를 잘 알고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리용호의 연설에 앞선 4일 오전 기자회견에서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비핵화한 북한'이라는 목표를 손상하는 어떤 위반도 미국은 심각하게 받아들일 것"이라고 국제 사회에 경고장을 낸 바 있다.

대북제재 전선에서 이탈하지 말라는 것이다. 리용호 연설 때 폼페이오 장관은 다른 양자회담 일정 때문인지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고 한다. 
  
단 미북은 대화의 동력을 이어간다는 제스쳐를 교환했다. 4일 ARF 회의장에서 폼페이오 장관이 먼저 리용호에게 다가가 어깨를 두드리고 악수를 청하자 리용호도 웃으며 반기는 모습을 노출했다. 

성 김 주필리핀 미국대사는 이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보내는 친서를 리용호에게 전달했다. 하지만 리용호는 ARF에서 11개국과 양자회담을 하면서도 강경화 장관, 폼페이오 장관과의 공식 회담은 거부했다. 

강 장관이 이 외무상을 3일 만찬장에서 만났을 때 이 외무상은 "(북한은) 기본적으로 외교당국이 나설 때가 아니라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이는 남북 외교장관 회담을 거절한 이유에 대한 답변이었다. 북한에서 그간 핵협상을 담당해온 것은 외무성이나, '지금은 외교당국이 나설 때가 아니'라고 한 것은 북한이 비핵화 협상을 본궤도에 올릴 뜻이 아직 없다는 태도로 보인다.

한기호 기자 rlghdlfqjs@pennmike.com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작권자 © 펜앤드마이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