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정부 엠바고 27일째 현지매체가 피랍 밝혔는데 김의겸은 "우리 국민 한달 다돼 생존 전해와"
"피랍 첫날 文 구출 지시" 홍보하며 "그의 조국과 대통령은 결코 안잊었다"
"정부 노력 믿고 마음 모아주시면 한줄기 소나기가 우리 기다려…"
외교부도 "억류중" 확인뿐 구출 진전이나 무장단체 요구사항 불명
피랍 29일째 리비아 현지매체서 '동료석방 목적 납치' 가능성 제기
같은날 靑은 공식페이스북에 "책과 자연이 있는, 대통령의 휴가"

지난 7월6일 리비아 내 무장단체에 납치된 한국인(왼쪽 첫 번째).(사진=리비아 현지 '218NEWS' 페이스북)
지난 7월6일 리비아 내 무장단체에 납치된 한국인(왼쪽 첫 번째).(사진=리비아 현지 '218NEWS' 페이스북)

우리 국민 1명이 리비아 무장단체에게 납치돼 한달 가까이 억류된 사실이 이달 1일에야 리비아 현지 매체 '218뉴스' 페이스북을 통해 공식화했는데, 한달 가까이 한국 언론에 '엠바고'(보도유예)를 걸었던 정부가 사실상 '손 놓은' 대응을 보이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납치된 국민은 "대통령님, 제발 도와주십시오"라고 공개된 영상 속에서 외쳤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물론 임종석 비서실장 등 청와대 요인 대부분이 지난달 30일부터 휴가를 떠난 상황이다.

피랍 28일째인 이달 2일 청와대가 김의겸 대변인을 통해 낸 공식 입장은 "리비아에서 납치된 우리 국민이 한달이 다 돼서야 생존 소식을 전해왔다"는 언급으로 시작했다.

국민의 생존 여부를 정부가 파악해 낸 게 아니라, 현지 매체의 자의적 공개로 엠바고 유지가 불가능한 상황에 이르렀는데 '소식을 전해왔다'는 언급에서 안이한 태도가 엿보인다는 지적이 나온다.

게다가 피랍 첫날 문 대통령의 "구출에 최선을 다하라"는 지시가 있었다면서도 그동안 구출 작업에 얼마나 진척이 있었는지 알기 어려운 말들로 가득했다.

무엇보다 논평 대부분이 납치된 국민의 신변을 걱정하는 '문학적 수사' 투성이어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하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자조적인 비판마저 나오는 상황이다.

김의겸 대변인은 피랍 국민의 신변에 대해 "얼굴색은 거칠었고 목소리는 갈라졌지만 다친 곳은 없어 보여 참으로 다행", "(아내와 아이들의 정신적 고통을 걱정한 건) 오랜 기간 거친 모래바람을 맞아가며 가족을 지탱해 온 아버지의 책임감이 느껴진다", "총부리 앞에서도 가족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 등을 논평에 담았다.

또한 "사막 한 가운데 덩그러니 내던져진 지아비와 아버지를 보고 있을 가족들에게는 무슨 위로의 말을 전해야 할지 난감"하다며, '대통령님, 제발 도와주십시오. 내 조국은 한국입니다'라는 호소에는 "그의 조국과 그의 대통령은 결코 그를 잊은 적이 없습니다"라는 답변을 내놨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

그러면서 "납치된 첫날 '국가가 가진 모든 역량을 동원해 구출에 최선을 다해달라'는 대통령의 지시가 내려졌다"며 "정부는 사건 발생 직후부터 지금까지 그의 안전과 귀환을 위해 리비아 정부 및 필리핀 미국 등 우방국들과 긴밀한 협력체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원론적인 언급을 덧붙였다.

김 대변인은 거듭 "그를 납치한 무장단체에 대한 정보라면 '사막의 침묵'에도 귀를 기울이고 있다"고 문학적 수사를 뽐낸 뒤 "특히 아덴만에서 임무수행 중이던 청해부대는 수에즈 운하를 거쳐 리비아 근해로 급파돼 현지상황에 대응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우리는 그가 '타들어가는 목마름을 몇모금의 물로 축이는' 모습을 보았다"며 "아직은 그의 갈증을, '국민 여러분의 갈증'을 채워주지 못하고 있다"고 비유했다.

이어 "하지만 정부의 노력을 믿고 그가 건강하게 돌아오기를 빌어달라"며 "그렇게 마음을 모아주시면 '한줄기 소나기'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논평을 끝맺었다.

같은날 외교부는 피랍 국민은 리비아에서 근무하던 중 현지 무장단체에 납치돼 28일째 억류 중이라고 확인했다.

외교부는 이미 지난달 6일 출입기자단에 엠바고를 요청하면서 "리비아 서부 자발 하사우나(Jabal Hassawna) 지역에서 우리국민 1명과 필리핀인 3명이 무장민병대에 납치된 것으로 확인했다"고 알린 바 있다.

외교부는 당시 "피랍 국민 소속 회사 관계자는 무장민병대가 회사 캠프에 침입해 물건을 강탈하고, 직원들을 납치했다고 (당일) 신고했다"며 "주리비아대사관은 신고를 접수한 직후 대사를 반장으로 하는 현지 비상대책반을 가동하고, 리비아 외교부 및 내무부 등 관계당국을 접촉해 사건해결을 위한 협조를 요청했다"고 설명했다.

주리비아대사관 대사와 공관 직원을 항공편으로 리비아 현지로 급파한다거나, 재외국민보호대책본부를 가동하고 관계부처 대책회의 등을 가진다고 예고했지만 이후 구출 작업에 뚜렷한 진전이 나타난 사례는 없다.

납치 세력이 지금껏 정체를 드러내거나 직접 요구사항을 밝히지 않고 피랍 사실을 쉬쉬해 온 가운데, 리비아 유력 매체인 218뉴스는 1일 페이스북 계정에 피해자로 보이는 4명의 모습이 담김 2분43초 분량의 영상을 게재했다.  

영상에서 자신을 한국인이라고 밝힌 중년 남성은 영어로 "대통령님, 제발 도와달라. 내 조국은 한국이다"라며 "너무 많이 고통 받고 있고, 아내와 아이들의 정신적 고통이 심하다"고 구조를 요청했다.

'백일장'을 방불케 하는 청와대 논평이나 외교부의 사건 공식 확인은 그 다음 일어난 일이고, 이미 대통령은 '순수한 휴식'을 테마로 조용히 여름휴가를 떠난 상태다.

통상 국민 피랍사건 발생 시 '사건의 주목도가 높아지면 대응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사건 종결 전까지 엠바고를 유지한다고는 하나, 세간의 공표된 후에도 정부는 무장단체의 요구사항이 무엇인지조차 여태껏 밝히지 못했다.

피랍 29일째인 3일에는 정부가 아닌 리비아 현지 매체를 통해 "무장세력들이 자신들의 동료석방을 목적으로 이번 납치를 자행했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이에 외교부는 이날 "사건발생 초기부터 재외국민보호대책본부를 24시간 운영하면서 비상근무태세를 유지하고 우리 국민의 조기 무사귀환을 위해 최대한의 노력을 경주해 오고 있다"고 원론적 조치를 강조했을 뿐이다.

우리 국민이 리비아 현지 무장단체에게 납치된 이후 29일째인 3일, 청와대가 페이스북 공식 계정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이 충남 계룡대에서 휴식을 즐기는 모습을 소게했다.
우리 국민이 리비아 현지 무장단체에게 납치된 이후 29일째인 3일, 청와대가 페이스북 공식 계정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이 충남 계룡대에서 휴식을 즐기는 모습을 소개했다.

이런 가운데 청와대는 오는 4일 업무 복귀 예정인 문 대통령이 충남 계룡대에서 휴식 중인 모습을 담은 사진을 '책과 자연이 있는, 대통령의 휴가'라는 제목의 글과 함께페이스북에 게재하는 등 여전히 한가로운 모습이다.

한기호 기자 rlghdlfqjs@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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