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ul Johnson의 '유대인의 역사' [유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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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승인 2018.08.03 10:30:37
  • 최종수정 2018.08.03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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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ul Johnson의 [유대인의 역사]는 제1권 - 구약성서 속 역사 이야기, 제2권 - 유대인들의 방랑기, 제3권 - 이스라엘 건국 과정 이렇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세 권 모두 읽어볼 만한 가치가 충분하지만 굳이 하나를 선택한다면 1910년의 한일합방에서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수립까지의 과정과 1897년 제1회 시온주의 총회로부터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 건국까지의 과정을 비교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제3권- 이스라엘 건국 과정>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우리나라 독립운동을 하던 분들과 이스라엘 건국의 아버지들을 비교해 보면 유사한 인물들이 있어서 책을 읽는 재미도 상당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해방 당시 한국인들의 무능에 기인한 것인지 시운이 따르지 않아서인지 누구도 예상하지 못 하였던 남북 분단의 비극에 이른 반면에 이스라엘의 경우 유대인들이 국제정세를 읽는 혜안이 있는 것인지 신께서 선택 받은 민족을 도와주시는 것인지 이스라엘 건국을 위한 외부여건들이 계속 유리하게 진행됩니다.

이스라엘과 대한민국은 각각 1948년 5월 14일과 1948년 8월 15일에 세워진 70년의 역사를 가진 국가입니다. 지난 5월 14일은 이스라엘 건국 70주년 기념일이었고 다가오는 8월 15일에 대한민국은 건국 70주년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스라엘의 초대 국가지도자는 벤 구리온 수상, 대한민국의 초대 국가수반은 이승만 대통령입니다.

유럽 내의 유대인들이 스위스 바젤에 모여 유대인 국가의 설립을 결의하였던 1897년 8월 29일 (제1회 시온주의 총회 개막일)과 조선의 독립운동가들이 중국 상하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하였던 1919년 4월 13일도 건국 기념일은 아니지만 반드시 기억되어야 할 기념일입니다.

이하에서 시오니즘에 입각한 유대인들의 이스라엘 건국과정을 (대한제국의 멸망 4년 후) 제1차 세계대전의 시점부터 연대기 순으로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현대 이스라엘 건국과정을 자세히 살펴보면 대한민국 수립에 이르기까지 35년간의 우리나라 독립운동은 정말 되는 일이 없었던 불운의 연속이었다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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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에는 전통적으로 유대 민족을 멸시하고 탄압하는 데 더하여 학살하기까지 하는 제정 러시아를 군사력으로 제압하고 있던 독일과 그 동맹국을 편드는 유대인들이 많았으나 민족 지도자 중 한명인 바이츠만은 영국이 주도하는 연합국의 승리가 확실하다고 보고 외교전에 주력하여 영국으로부터 팔레스타인에 유대인들의 나라 (이스라엘)를 건설하게 해 주겠다는 약속을 받아내는 데 성공한다. (벨포어 선언)

2. 당시 영국 외상 벨포어가 너희 유대인들은 예전에 우리가 우간다의 미개척 토지를 그냥 주겠다고 해도 싫다고 하였고 뉴질랜드나 아르헨티나에서 무제한 이민을 받아주겠다고 해도 싫다고 하면서 도대체 왜 척박한 사막에 위치한 팔레스타인에 그렇게 집착하느냐고 묻자 바이츠만이 "장관님은 날씨도 좋고 아름다운 파리를 받을 수 있으면 런던을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주는데 찬성하십니까? 전세계 사람들이 런던보다 파리가 좋다고 하지만 영국인에게는 런던이 최고의 도시가 아닙니까? 유대인에게는 예루살렘이 아니면 의미가 없습니다." 라고 대답하였다고 한다.

3. 전쟁 후에 미국과 유럽에 거주하는 유대인들은 각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번영하게 되어 이스라엘 건국에 대하여 거의 망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대공황 이후 독일에서는 히틀러가 집권함 에 따라 유대인들은 기존의 직장에서 축출되고 재산이 압류당하는 등 고난의 세월이 시작된다.

4.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면서 독일과 그 주변지역의 유대인들은 나치에 의하여 전례 없는 민족적 대학살을 당하게 된다. 그런데 유대인들의 나치에 대한 저항이 너무 미약해서 영국, 미국 등 에서는 홀로코스트의 존재를 믿는 사람이 전쟁이 끝날 때까지 거의 없었다. 우수한 인재들이 많은 유대 민족이 속수무책으로 예정된 죽음을 받아들일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특히 미국의 유대인들은 대규모 전쟁 수행을 위한 필요에 의하여 유럽 대륙의 일부 유대인들이 집단수용소에 수용되거나 강제노동을 하게 될 수는 있어도 설마 문명국 독일에서 유대 민족을 계획적으로 죽이기야 하겠느냐고 생각했다.

5. 그 사이 신변의 위협을 느낀 유대인들이 유럽 대륙에서 탈출하여 당시 영국이 관리하던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하면서 - 현지의 아랍인들과의 사이에 토지와 관련된 분쟁이 격화되기 시작한다.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한 유대인들은 비무장 난민이어서 아랍인들에게 일방적으로 공격을 받아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다.

6. 이 때, 바이츠만이 영국의 윈스턴 처칠 수상에게 면담을 요청하여 무기만 주면 유대인들을 모아 군사조직을 만들어 독일을 공격하겠다고 하니 그 용기에 감동받은 처칠은 팔레스타인에 있는 유대인들에게 무기를 공급하기로 한다. 하지만 실제로 무장한 유대인들이 독일군과 전투를 벌인 사례는 많지 않았고 자신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데 급급하였다.

** 참고로 한일합방 이전에 고종 황제가 영국과 미국에 밀사를 보내어 일본으로부터 조선을 지켜달라고 하니 당시 두 나라 지도자들은 자기 집에서 마누라가 일본 깡패들에게 칼에 맞아 죽어도 복수할 생각도 없이 도망가기 바쁜 놈을 우리가 왜 도와주냐고 비웃었다고 합니다.

7. 한편, 미국의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은 사우디 아라비아 이븐 사우드 국왕과의 면담에서 석유 이권을 영국 기업이 아니라 미국측에 넘겨 준다면 유대인 국가의 건설을 저지하겠다고 약속한다. 몇 달 후 루즈벨트가 이러한 밀약에 대하여 각료들에게 설명하지 않은 상태에서 갑자기 사망하여 해리 트루만 부통령이 새로운 미국 대통령에 취임하게 된다.

8. 팔레스타인의 유대인 사회에 벤 구리온(이스라엘의 이승만?)과 베긴(이스라엘의 김구?)이라는 새로운 지도자들이 등장한다. 벤 구리온은 "팔레스타인 지역을 관리하고 있는 영국 정부에 협조하여 유대인 국가를 건설하는 것이 최선이다. 하지만 영국인들은 언제든지 유대인들을 배신할 가능성이 있는 인간들이니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베긴은 "이스라엘 건국을 방해하는 놈들에게는 말이 필요 없고 폭력으로 버릇을 고쳐놓아야 한다"고 하면서 유대인 국가 건설에 반대하는 영국군 및 아랍인 등에게 무차별 테러를 감행한다.

** 대외적으로 미국과의 동맹을 강조하면서 각론에서는 미국 정부와 사사건건 논쟁을 벌이면서 모든 일을 자신의 뜻대로만 하려고 하였던 이승만 대통령과 독립을 위해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테러, 암살 등을 감행하던 김구 주석에 해당하는 인간형이 이스라엘 건국의 아버지들 중에도 각각 한 명씩 있었습니다.

9. 소련의 이오시프 스탈린 서기장은 미국 정부 내에 침투시켜 놓은 간첩을 통하여 루즈벨트와 이븐 사우드 사이의 밀약을 전해 듣고 미국이 아랍인들의 편을 든다면 소련은 그 반대편을 지원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체코에서 생산된 최신 무기들을 유대인들에게 대량으로 공급하기로 한다.

10. 루즈벨트의 사망으로 대통령직을 인수받은 트루만은 사우디 아라비아 국왕과의 밀약에 대하여 아는 것이 없고 미국 내 유대인들은 모범적 시민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스라엘 건국을 지지하기로 결심하고 무기와 각종 군수품을 지원하기 시작한다.

11. 독일과 일본의 항복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주요 승전국들인 미국, 소련, 영국, 프랑스, 중국은 모든 전후 처리 문제를 국제연합을 통하여 논의하여 결정하는 것에 원칙적으로 합의한다.

12. 이 시점에 베긴 등 "미친 놈들"의 무차별 공격에 질려버린 영국 정부는 팔레스타인 문제를 국제연합에 넘기고 군대를 현지에서 철수시켜 버리는데 결과적으로 미국, 소련, 영국 등의 주요 강대국들이 모두 이스라엘의 건국을 적극 지지하는 것이 되어 버린다.

13. 팔레스타인 내에 거주하던 아랍인들은 이러한 사태의 진전에 분노하여 주변 아랍국들의 군사지원을 받아 유대인들을 공격하지만 미국, 소련, 영국에게 받은 무기를 이용하여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을 무장시키는 방식으로 편성된 이스라엘 정규군에게 패배한다.

14. 국제연합에서는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어버리면 안 된다"고 하여 아랍인과 유대인 사이의 팔레스타인 분할을 제안하지만 아랍인들은 끝까지 싸우다가 가자 지역을 제외하고 전지역을 유대인들에게 빼앗기고 오히려 자신들이 난민이 되어 버린다.

** 이스라엘 국내 정치에서 주목할 점은 벤 구리온이 만든 정당과 베긴이 만든 정당이 현재 이스라엘 양대 정당의 모태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벤 구리온의 후계자들이 좌파, 베긴의 후계자들이 우파로 분류되며 벤 구리온과 베긴 모두 이스라엘 수상으로 일했던 적이 있습니다.

15. 벤 구리온 수상은 독일과의 화해를 통하여 받아낸 배상금으로 이스라엘의 경제성장에 주력하면서 이집트의 나세르가 주도하는 아랍 연합군을 여러 차례 격파하고 미국, 영국, 프랑스 등과의 동맹 체제를 구축하였다.

16. 베긴 수상은 이집트와의 평화협상을 통하여 전쟁 중에 점령하였던 시나이 반도를 돌려주는 대신 아랍 국가들로부터 이스라엘에 대한 완전한 외교적 승인을 받아내는 업적을 남겼다.

17. 그 이후에도 미국과 소련은 경제 지원과 인력 공급이라는 (결코 의도하지 않았던) 각각 다른 방식으로 신생국가 이스라엘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게 된다.

18. 미국은 독일 등에서 이주한 유대인들이 사회적으로 성공하기에 너무 쉬운 나라여서 뉴욕 등 대도시 지역에서 자수성가한 유대계 미국인들이 미국 정부를 설득하여 이스라엘에 지속적인 군사적, 경제적, 문화적 지원을 하게 한다.

19. 소련은 자국 내의 유대인들을 너무 심하게 억압하여 우수한 유대인들이 대규모로 이스라엘로 이주하게 되는데 결과적으로 이스라엘의 두뇌를 공급하는 중대한 역할을 수행한다.

유태선 시민기자 (개인사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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