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지하도상가 관련 조례 개정...‘임차권 양수·양도 전면 금지’
상인들, 권리금 회수 불가해지나...금전적 손실 불가피해질 우려에 반발
서울시 “기존 조례, 공유재산 관련 상위법과 위반돼” 당위성 강조
영동대로 지하공간 개발 등 市행정사업, 인근 상인들 내쫓는 결과로 이어질 우려제기돼
박 시장,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신화 걷어내고...모두 행복하게 만들 수 있어”
내쫓길 위기의 상인들, 박 시장의 발언과 괴리된 정책 행보 지적하는 목소리도

지난 29일 서울시는 1년여간 이어진 논란 끝에 을지로·명동·강남·영등포 등 서울의 지하도상가 총 25곳, 점포 2,788곳의 임차권 양수·양도를 전면 금지했다. 이에 따라 장사를 그만두더라도 권리금을 받고 임차권을 팔 수 없게 된 상인들 사이에서 반발이 거세다. 일각에서는 “건물주 위에 조물주”라며 임차인의 편에서 건물주에게 날선 비판을 하던 박원순 서울시장을 겨냥해 ‘실제로 서울에서 가장 위에 있는 '갑질 건물주'는 서울시가 아니냐’는 냉소도 나왔다.
 

현재 옥탑방에 입주해 생활하는 박원순 서울시장(사진=연합뉴스)

지난 19일 서울시가 공포한 '서울특별시 지하도상가 관리 조례 일부개정조례'에는 지난 20년간 허용됐던 지하도상가 임차권 양수·양도를 금지한다는 점이 명시됐다.

이에 따라 지하도상가에서 영업을 하던 상인들은 장사를 그만두더라도 권리금을 받고 점포를 넘겨주고 넘겨받는 등 임차권을 팔 수 없다. 빈 점포는 경쟁입찰로 새 주인을 찾게 된다.

이에 상인들은 권리금을 이제 와서 금지하는 것은 재산권 침해이며 ‘대안없는 무리한 행정처리’라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많게는 수억원의 권리금을 주고 입점한 경우에도 임차권 양도가 막히면 이를 회수할 방법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지하상가에서 영업하는 상인들 사이에서는 "회사를 나오면서 받은 퇴직금 전액을 권리금으로 주고 들어와 가게를 일궜는데, 권리금을 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한다니 억울하다"며 "지금은 지하도상가 경기가 예전 같지 않아서 강남, 영등포 등 일부 상가를 제외하고는 권리금이 많지도 않다"고 말했다. 또한 상인들은 ‘비용을 들여 점포를 리모델링하고, 상가 가치를 높인 점을 인정해 권리금 회수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는 요지의 의견을 시의회에 제출했다.

특히 이같은 서울시의 정책이 지난 2015년 이후 권리금을 합법화하며 이를 보호하겠다는 정부 입장과 배치된다고 문제삼는 목소리도 나온다. 민간부문에서는 권리금을 인정해주는 방향을 추진하는데 공공은 인정하지 않겠다는 발상은 불합리하다는 게 상인들의 주장이다. 한 상인은 "권리금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법 개정을 한다고 해놓고, 이번 서울시의 조례는 시대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서울 내 지하도상가 대부분은 민간이 도로 하부를 개발해 조성한 상가를 장기간 운영한 뒤 서울시에 되돌려주는 기부채납 형태로 생겼다. 서울시는 1996년 지하상가가 반환되자 1998년 ‘임차권 양도를 허용한다는 조항’이 포함된 지하상가 관리 조례를 제정했다. 이에 지하도상가 상인들 사이에서는 고액의 권리금을 주고받는 임차권 거래가 관행적으로 이뤄졌다.

반면 서울시는 이같은 조례 개정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시는 조례 개정 이유로 "임차권 양수·양도 허용 조항으로 불법권리금이 발생하고, 사회적 형평성에 배치된다는 외부의 지적과 지방자치단체의 조례로 임차권리를 양도·양수하는 것은 상위법(공유재산 및 물품관리법)에 위반된다는 행정안전부 유권해석이 있었다"며 상위법에 맞게 조례가 개정되어야 한다는 당위성을 설명했다. 서울시는 "지하도상가는 공유재산이기에 매매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또한 불법전대(轉貸‧재임대)에 따른 문제점과 공유재산을 수십년 간 독점하듯 운영하는 실태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지난해 논란이 이어질 당시 정인대 전국지하도상가 상인연합회 이사장은 "지하상가 양도 금지는 대다수 상인의 의견을 배제한 서울시의 행정 편의적 조치"라며 "2015년 5월 개정된 임대차보호법이 권리금을 합법적으로 인정하고 있는데도 감사원·행자부 지적을 모면하기 위한 면피 행정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양측의 입장차이가 선명한 가운데, 권리금의 회수 불가 시 금전적 손실과 직결되는만큼 지하도 상가의 상인들과의 반발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시의회는 권리금 금지에 따른 충격 최소화를 권고했다. 시의회 조례 심사보고서에는 "임차인의 이런 입장을 고려해 충격을 최소화하면서 양도·양수 금지를 실현할 수 있는 합리적 방안 모색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연합뉴스 그래픽] 2023년 영동대로 지하 복합환승센터 조성. 서울시와 국토교통부는 2017년 6월 29일 '영동대로 지하공간 복합개발사업' 기본계획안을 발표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역점사업으로 불리는 ‘영동대로 지하공간 복합개발’ 사업에 대해서도 일대지역 상인들 사이에서는 원망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서울시 주도의 대규모 사업에 따라 해당 지역 부동산 시세가 오르고, 그만큼 임대료 부담도 더욱 늘어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부동산업계 안팎에서 향후 개발이 진행되며 임대료 상승폭이 앞으로도 커질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어 인근 지역 상인들의 고충 역시 심화될 전망이다. 정부는 현재 소상공인들의 임대료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상가 임대료 인상률을 5%로 제한하고 있지만 계약 기간을 쪼개 법을 위반하지 않을 정도의 인상률을 지속적으로 적용하면 결국 누적 인상률은 상당한 수준에 달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부동산업계의 시각이다.

보행친화·도시재생 등 박 시장의 시정 기조에 따라 추진된, 노후화된 고가도로를 리모델링해 ‘보행길’로 만든 ‘서울역 7017프로젝트’와 관련해서도 엇갈린 평가가 나온다. 도심 한가운데 위치한 전망 트인 고가공원에 대해 기대감을 나타낸 이들이 있는 반면, 공원 주변 봉제공장과 전통 수제화거리 상인들은 공원 설립으로 인해 생존권을 위협받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인근 지역 상인들은 서계동 지역 봉제공장이 고가도로를 이용해 남대문·동대문 시장 등으로 의류를 납품해왔으나 도로가 없어지면서 일감이 급감했다고 주장했다.

박 시장은 지역 상권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전망을 피력했으나, 상인들 사이에서는 ‘장점’들만 홍보하면 문제가 될 사업은 이 세상에 없다며 온도차를 보이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생계를 호소하는데도 불구하고 다수의 만족을 위해 고가철거 사업을 강행한 것은 물론 추가 연계 도보로 확충사업에 대해서 ‘정치적 행보’가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왔었다. 박 시장이 ‘MB의 청계천’과 견줄만한 사업을 ‘걷는 도시’로 택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다.
 

서울역고가 공원 조성 반대 추진협의회에 참여하고 있는 남대문시장 상인과 고가 지역 일대 주민들이 서울역 고가 공원화 사업에 반대하는 집회를 열고 있는 모습(2014년 11월 24일)

한편 일장일단이 있는만큼 행정사업 자체에 대해 과도하게 비판하는 것은 무리하다는 지적도 있다. 부작용에 대한 중재를 도모하는 와중에 사업의 단점만을 강조해 개발사업을 차단해야한다는 식은 무리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행정사업과는 별개로 ‘친(親)서민’을 자처해온 박 시장의 발언과 역행하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는 실태를 꼬집으며, 상인들 사이에서는 박 시장이 스스로 책임있는 행보를 보여야 한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건물주‧대기업 등을 속칭 ‘갑(甲)’으로 규정하며 ‘친(親)서민적 행보’와 사회적 연대를 강조해왔는데, 이러한 발언과 괴리된 서울시 정책행보와 관련해 갑질이라고 질책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서민과 상생’을 강조하는 발언과 달리 서울시가 추진하는 행정 사업들이 기존 자영업자들을 내쫓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앞서 '임대료 문제'와 관련해 수차례 '조물주 위에 건물주'는 표현을 활용하며 건물주를 비판하는 한편 '임차인'과 서민의 편을 자처해왔다. 그는 최근 최저임금 및 임대료 논란 당시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여러차례 건물주를 겨냥했다. 그는 지난 12일 페이스북을 통해 "조물주 위에 건물주가 있다는 말이 유행어가 되고 높은 임대료를 받는 건물주들이 젊은이들의 선망이 되는 사회에는 미래가 없다"며 "이는 전적으로 불공정한 임대차 관계를 방치한 정치의 책임"이라고 비판했다. 지난 17일에도 '언제까지 최저임금 탓만 하고 있으실 겁니까?'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프랜차이즈 본사의 각종 갑질을 제거하고,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신화를 걷어내고, 수익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는 카드수수료를 제로화한다면 지금의 최저임금 인상은 모두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지 않겠습니까?”라며 건물주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견지해왔다. 또한 이달 초 취임 기자간담회에서는 “서울시장의 힘이 가장 필요한 지역으로 시장실을 옮기겠다”고 말했다. 이어 “현장출퇴근은 물론이고 지역주민과 숙식을 함께하며 눈물 나는 시민들의 삶을 살피겠다”며 '친(親)서민적 행보'를 강조했다.

이세영 기자 lsy215@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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