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유엔 안보리 제재리스트 올리기 전 선제조치 결정" 정부 관계자 전언
외교 소식통 "美 작년부터 北석탄 韓 반입 감시, 올해 1월도 관련내용 통보"
금융사 2곳 "北석탄 거래인줄 몰랐고, '별다른 문제 없다'는 금감원 따랐을뿐"
외교부, 기업·금융사 4곳 조사 진행 사실상 인정···美행정부 우려 제기는 부인
문화일보, 소식통 인용 "北석탄 수입업체 '여러 곳'···관세청 조사 곧 마무리" 시사
정규재 대표, "'北석탄 최종수요처는 현대제철·남동발전' 소문 진위 밝히라" 촉구

북한산 석탄 밀반입 의혹을 받고 있는 문재인 정부가 최근 국내 기업 2곳과 금융기관 2곳의 개입 사실을 파악하고, 검찰 고발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위원회 자진 신고 등 후속 조치에 들어갈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미국 행정부가 해당 기업과 금융기관을 유엔 안보리 결의를 위반한 것으로 보고 제재 리스트에 올리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진 데 따른 '선제 조치'라고 한다. 외교부도 관련 조사가 진행 중이라는 사실은 부인하지 않고, 후속 조치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고 있다.

세계일보는 30일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정부가 북한산 석탄이 국내 반입되는 과정에서 국내 기업 두 곳과 금융기관 두 곳이 연루된 내용을 파악했다"고 보도했다.

이 관계자는 "미국 정부나 유엔 안보리에서 해당 기업과 금융기관을 제재 리스트에 올리기 전에 우리 정부가 먼저 조치를 취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안다"면서도, 해당 기업과 금융기관에 적용되는 구체적 혐의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이는 최근 북한선박에 국적을 빌려주는 방식(편의치적)으로 북한산 석탄 9000여톤이 러시아를 경유, 원산지 세탁 후 국내에 반입된 정황을 알고도 방치해왔다는 의혹을 받던 정부가 뒤늦게 '셀프 적발' 조치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세계일보는 정부가 선제 조치를 취하기로 한 배경에 대해 "최근 대북제재의 철저한 이행을 강조하는 미국 정부의 기류가 심상치 않은 데 따른 결정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북한산 석탄 유입을 한국 정부가 알면서도 묵인하고 방치한 것으로 국제사회가 오해할 소지를 차단할 필요성도 느꼈기 때문"이라고 짐작하기도 했다.

안보리 대북제재위 산하 전문가패널 보고서는 최근 러시아에서 옮겨 실은 북한산 석탄이 '스카이 엔젤호'와 '리치 글로리호'에 실려 지난해 10월 각각 인천과 포항으로 들어온 사실을 공개했다. 안보리는 지난해 8월말 북한산 석탄 수입을 전면 금지하는 대북제재 결의(2371호)를 채택한 바 있다.

외교 소식통은 "미국은 지난해부터 북한산 석탄의 한국 반입 동향을 집중적으로 감시해왔고, 해당 기업과 금융기관에도 관련 내용을 지난해에 이어 올해 1월에도 통보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가 된 두 곳의 기업은 북한산 석탄이 아니라 러시아산 석탄인 줄 알고 반입했다고 소명했으나, 미 행정부는 위성자료 등 여러 증거를 토대로 불인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금융기관 두 곳도 북한산 석탄의 국내 반입·거래 과정에서 금융 거래 활동을 지원했으나, '북한석탄 관련 거래인줄 몰랐다'고 해명한 것으로 관계 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외교 소식통은 "두 금융기관은 '해당 금융 거래가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 금융감독원의 사전 설명과 관계기관의 협조 요청에 따라 처리했을 뿐이라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그동안 미국은 대북제재를 위반한 중국기업의 경우 벌금을 부과하고 미국 내 자산동결 및 거래 금지 조치를 가했다. 미국 기업·기관과의 거래도 막았다.

한국기업과 금융기관까지 미 행정부가 대북제재 위반에 따른 '제재 리스트'에 올린다면 그와 마찬가지의 불이익에 직면할 전망이다. 국제 신인도에 악영향을 끼칠 우려도 제기된다.

세계일보는 "미국 정부는 북한석탄 반입 문제를 심각하게 보고 있다"며 "지난해부터 해당 기업에 미리 경고했는데도 이런 일이 벌어진 데 대해 우리 정부가 눈감지 않았다면 어려운 일이었다는 의구심을 갖고 있는 것같다"는 외교 소식통의 언급도 보도했다.

미국이 북한석탄 반입 연루 기업에 지난해부터 경고하고, 밀수출 루트까지 알려줬음에도 문재인 정부가 묵인으로 일관했다는 의미다.

북한석탄 반입 과정에 개입한 의사결정 책임자를 비롯한 해당 기업·기관의 관련 인사도 미국 내 자산동결이나 금융거래 중단 등의 처분을 받을 수 있어, 정부의 '셀프 조사' 유인이 됐을 것으로 분석된다.

미국의 동맹국이더라도 제재 리스트에 오를 위험도 적지 않다. 6.12 미북정상회담 이후 북한 비핵화 협상에 진전이 없는 만큼 대북제재·압박 기조가 재차 강화되는 상황이다. 미국은 최근 모든 국가에, 예외 없이 제재를 이행하라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발신하고 있다.

최근 방한한 마크 램버트 미국 국무부 동아태 부차관보 대행이 지난 25일 코레일과 포스코, 코오롱, 개성공단 업체 관계자 등을 만나 비핵화까지 대북제재를 이행해야 한다는 미 행정부 입장을 직접 설명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25일(미 현지시간)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이례적으로 조명균 통일부 장관에게 전화해 북한 비핵화가 더딘 상황에서 남북 경협이 앞서가지 않도록 당부한 사례도 있다.

세계일보는 전직 외교·안보 고위 관료 언급을 통해 "미국은 평창동계올림픽 기간에도 대북제재 예외를 인정해주는 것을 마뜩찮아 했지만 한국 정부의 입장을 고려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 것"이라며 "북한의 추가 비핵화 조치가 없는 상황에서 동맹국이라도 제재이행 이탈 사례를 묵인해주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했다.

외교부는 30일(이하 한국시간) 북한석탄 반입에 국내 기업과 금융사 4곳이 연루됐다는 세계일보 보도 관련, 출입기자단에 문자메시지를 보내 "북한산 석탄 반입 의심사례에 대해 현재 관계기관에서 조사가 진행 중"이라며 "결과에 따라 필요한 조치가 취해질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처럼 정부 차원의 조사 진행 중이라는 사실 관계는 확인하면서도, 미 행정부 측이 한국 정부의 북한석탄 수입 방관을 의심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조사대상은 북한산 석탄 반입 혐의가 있는 수입업체로 알고 있다"면서 "미국 정부는 이 건과 관련 우리 측에 어떠한 우려도 표명한 바 없다"고 부인했다. 

이런 가운데 북한석탄을 수입한 국내 기업이 2곳에 그치지 않고 '여러 곳'이라는 정황도 제기됐다.

석간 문화일보는 30일 정부 소식통을 인용해 "러시아를 거쳐 국내 반입된 것으로 의심되는 북한산 석탄을 수입한 국내기업이 '여러 곳'이며 해당 기업들에 대해 정부는 석탄 수입과정 등을 수사 중"이라고 보도했다.

다만 정부는 아직 북한석탄 '원산지 세탁'에 관여한 러시아 측에 경위 조사 등을 요청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정부 관계자는 "현재 관세청이 조사 중인 북한산 의심 석탄 수입에 대한 최종 결론이 내려져야 경위 조사 요청이 가능하다"고 했다.

관세청은 경위 조사를 곧 마무리하고 해당 기업들을 관세법 위반 등 혐의로 검찰에 송치할 예정이라고 이 신문은 전했다. 이밖에도 북한에 정박했던 선박이 국내 항구를 3차례 이상 드나든 사례가 추가로 밝혀져 대북제재 이완에 따른 정부 책임론 제기가 잇따를 전망이다. 

VOA는 지난해 7월과 8월 북한 남포항에서 석탄을 선적해 중국, 베트남 등으로 운반한 벨리즈 선적 신성하이호가 같은 해 10월 인천과 부산, 포항에 입항했으나 제지를 받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한기호 기자 rlghdlfqjs@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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