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화 "오는 9월 UN총회서 南北美 종전선언 추진" ... 일각에선 '제2의 몰타선언' 기대
그러나 現정세 데탕트 시대와 달라 ... 美中, 유럽 NATO-러시아 간 신냉전 부활 중
北, 한반도 냉전체제 해체 위해 구체적인 비핵화 시간표 제시하는 진정성 보여야

김태우 객원 칼럼니스트
김태우 객원 칼럼니스트

한국의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지난 7월 18일 런던에서 가진 한국특파원들과의 간담회에서 "9월 유엔총회 동안 남북미 3국 간의 정상회담이 열릴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판문점 선언에서 명시했던 대로 금년 내로 종전선언을 추진하겠다"고도 했다. 강 외교장관의 이런 발언들을 놓고 학계 일각에서는 유럽이 1989년 미소가 몰타 선언을 통해 유럽의 냉전 종식을 선언했듯, 남·북·미 정상회담이 한반도 냉전체제 해체를 알리는 이정표가 될 수도 있다는 기대감을 나타내고 있다.

당연히 4.27 남북 정상회담, 6.12 미북 정상회담 그리고 이후 빈번해진 남북 소통과 대화의 분위기가 이런 기대감을 키우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지난 6월 1일에는 남북 고위급회담에서는 개성공단 내에 연락사무소를 빠른 시일 내에 열기로 합의했고, 2007년 12월 이후 10년 6개월 만에 열린 6월 14일의 남북 장성급회담에서는 서해 북방한계선 일대의 평화수역화, 군 수뇌부간 직통전화 개설, 비무장지대 내 유해발굴 등이 논의되었다.

6월 18일에 개최된 남북 체육회담에서는 8월 인도네시아에서 열리는 아세안게임 개폐식 공동입장과 일부 종목 단일화에 합의했으며, 7월 4일 평양에서 남북 통일농구경기를 개최하기로 합의했다. 농구대회는 남북 선수들을 섞어서 팀을 만드는 방식으로 진행되어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이어서 6월 22일 금강산에서 열린 남북 적십자회담에서는 오는 8월 20~26일 금강산에서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가지기로 했는데, 그렇게 된다면 2015년 10월 이후 2년 10개월 만에 열리는 이산가족 상봉이 될 것이다. 현재는 남북 간 경의선 연결을 위한 협의가 한창이다. 하지만, 이런 활발한 남북대화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한반도의 냉전종식을 선언하는 아시아판 몰타 회담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인 것으로 보인다.

유럽 냉전체제 종식의 시발점은 1975년 8월 헬싱키에서 열린 유럽안보협력회의(CSCE) 정상회담이 채택한 헬싱키 선언이었으며, 이 선언이 나오도록 발동을 건 것은 1970년 3월 19일 서독 빌리 브란트 총리의 '동방외교' 선언과 이어서 개최된 동서독 정상회담이었다. 서독이 자신들만이 유일 합법정부임을 주장하는 할슈타인 정책을 포기하고 동독을 정상국가로 인정한 것이며, 이것이 유럽의 데탕트에 불을 지핀 것이다.

소련은 1946년 동베를린 노동자 폭동, 1956년 헝가리 자유운동, 1968년 체코 '프라하의 봄' 운동 등을 탱크로 짓밟은 공산진영의 종주국이었다. 그러나 1975년 헬싱키 선언으로 양 진영은 군사분계선의 국경선 인정, 공산권 진영의 인권문제 개선, 양 진영 간의 상호 경제 및 인적교류 향상 등 '3개 바구니'를 진전시키기로 합의했고 소련도 이에 동참했다. 현 군사분계선을 국경선으로 인정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소련군 점령지역을 영구화하는 것이라는 이유로 서방측이 불만족스럽게 생각했지만, 인권 개선을 위한 논의는 후일 독일 통일과 소련의 인권을 개선하는 견인차 역할을 했다.

1989년 여름 동독인들은 '여행의 자유'를 외치며 대탈출을 시작했고, 그 바람이 결국 1989년 베를린 장벽의 붕괴, 1990년 3월 18일 동독 최초의 민주적 총선거 및 서독과의 흡수통일을 지지하는 기독민주당의 압승, 1990년 10월 3일 독일통일 등을 이끌어내고, 이어서 1991년 말 소련연방이 해체된 것이다.

그 과정에서 서방 7개국은 1989년 7월 소련의 고르바초프 대통령과 프랑스의 미테랑 대통령과의 정상회담과 이어서 열린 G-7 정상회담의 합의에 따라 공산권 경제지원을 위한 동구개발은행(EBRD) 창설했고, 이 은행을 통해 1,000억 달러를 소련과 동구권 나라들에게 지원함으로써 동유럽 국가들의 시장경제 체제로의 전환을 가속화시켰다.

이런 대변화의 바람 속에서 독일통일 직전인 1989년 12월 말 미국의 아버지 부시 대통령과 소련의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몰타에서 만나 "이제 미·소는 더 이상 적이 아니며 냉전은 끝났다"고 선언했다. 그리고는 1990년 11월 21일 파리에서 열린 CSCE 장상회담은 유럽의 냉전체제 종식과 독일통일을 마무리하는 파리헌장을 채택하게 된다.

부시·고르바초프 대통령을 위시한 서방 및 공산진영 34개국 지도자가 서명한 파리헌장은 "이제 유럽에서 대결과 분열의 시대는 끝났다"고 선언했고. 이로서 1975년부터 불기 시작한 변화의 바람은 16년 만에 마무리되고 유럽의 냉전종식과 독일통일은 새로운 기정사실로 자리매김되었다.

그래서 오늘날 한국의 학계에서는 유럽의 냉전청산 역사를 회상하면서 지난 6월 12일 미·북 정상회담과 9월 유엔에서 열릴 지도 모르는 3국 정사회담이 한반도의 대결과 긴장을 청산하는 아시아판 몰타 회담이 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희망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당장 북한이 해야 할 일들이 너무나 많다.

우선은 현재의 동아시아 정세는 데탕트 바람이 불기 시작했던 당시의 유럽과는 너무나 다르다. 지금은 중국의 팽창주의 대외기조와 러시아의 강대국 복귀 시도로 인하여 동아시아에서 미·중 간 그리고 유럽에서는 나토(NATO)와 러시아 간 신냉전이 부활하고 있는 중이다. 이런 가운데 중국, 러시아, 북한 등 사회주의 블럭이 미일동맹을 주축으로 하는 서방세력에 대항하기 위해 전략적 제휴를 모색하는 중인데, 이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양호한 여건이 아니다.

또한 지금 전문가들은 미·북 정상회담 이후에도 북한이 여전히 ‘완전·검증가능·불가역적 비핵화(CVID)’나 비핵화 일정에 관해 어떠한 약속도 내놓지 않는 가운데 미군 유해송환, 종전선언, 남북대화 소식 등이 신문지면을 장식하고 있는 것에 주목하면서 이를 본말전도(本末顚倒)로 보고 있다. 즉, 북한이 명시적인 핵폐기 약속을 하지 않으면서 자신들이 원했던 결실들을 거두어가고 있음을 주목하고 있다.

북한은 평화공세를 통해 미국의 군사행동 가능성이라는 소낙비를 피했고, 비핵화의 대상이 북한이 아닌 한반도라고 주장함으로써 미 핵우산 및 한미동맹 해체를 요구할 명분을 얻었으며, 연합훈련 중단이라는 가시적 성과도 챙겼다. 북한의 지도자가 최강국 미국과 중국으로부터 최상의 예우를 받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평양정권의 국내정치적 위상도 강화된 것으로 보인다. 계속 이런 식이라면 북한이 미국을 직접 위협하는 핵능력만을 동결하는 선에서 미국과 타협하면서 체제보장을 명분으로 제재 해제, 경제지원, 한미동맹 약화 등 원하는 것을 다 얻으려 하는 아니냐는 의심을 떨칠 수가 없다. 즉 북한정권의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미·북 정상회담과 유엔에서 열릴지도 모르는 남·북·미 정상회담이 한반도 냉전체제의 해체를 알리는 이정표가 되기 위해서는 북한이 너무 늦지 않게 비핵화에 대한 구체적인 약속과 일정을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남과 북에 살고 있는 한민족 모두의 열망이자 국제사회의 열망이다.

김태우 객원 칼럼니스트 (전 통일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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