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임시주총 열어 盧·文측인사 이정희 씨를 상임감사겸 사내이사 선임 예정
국제의결권 자문기관이 반대하자 정부 산하 연기금·공제회 압박
투자업계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취지 무색하게 하는 행위"

한국전력공사가 노무현 정권이었던 2006년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 실무위원(차관급)과 작년 1월 초 출범해 '문재인 후보 지지모임'을 표방했던 광주(光州)지역 시민단체 네트워크인 '포럼광주'의 공동상임이사를 맡았던 이정희 대한변호사협회 사법평가위원을 사내(社內)이사이자 상임감사위원으로 선임하려다 국제 의결권 자문기관의 반대에 부딪히자 정부 산하 연기금과 공제회에 도움을 요청한 것으로 드러났다.

23일 관계당국과 업계에 따르면 한전은 오는 30일 전남 나주 본사에서 기업 경력이 전무한 '친문(親文) 인사'로 분류되는 이정희 위원을 사내(社內)이사이자 상임감사위원으로 선임하기 위해 임시주주총회를 열 예정이다.

일반적으로 공공기관 감사는 기획재정부 장관의 제청을 거쳐 대통령이 임명하지만 증시에 상장된 시장형 공기업인 한전의 상임감사는 주총에서 결정된다. ISS 등 국제 의결권 전문사가 이정희 위원의 감사 선임 안건에 '반대 의견'을 내면서 지분 28.33%를 가진 외국인 투자자들이 반대에 나설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한전은 주주 중 연기금과 공제회 등 공적기금에 이정희 위원의 감사 선임에 찬성해달라는 설득작업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한전은 삼성자산운용(0.46%), 기타 기관 및 개인 주주(14.43%) 등으로부터 8.55%(정부·산업은행·국민연금 의결권 3% 제외)의 찬성표를 모아야한다. 

최대주주의 독단을 견제하기 위해 제정한 '3% 룰'이 한전의 낙하산 인사를 막고 있다. 현행 상법은 감사 선임 안건에 대주주가 행사할 수 있는 의결권을 3%로 제한하고 있다. 감사위원 선임 안건이 주주총회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의결권이 있는 지분 25%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한전의 대주주인 산업은행(32.9%), 정부(18.2%), 국민연금(5.68%)의 실질 의결권이 3%로 한정되는 것이다. 

한전은 "주주총회 참석을 독려하는 차원의 활동"이라고 항변했지만 한 공제회 관계자는 "주주총회에 참석해 찬성표를 행사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고 전했고 또 다른 공제회 관계자 역시 "한전의 대주주는 정부이고 스튜어드십 코드(stewardship code)의 기본 취지를 무시한 채 관치 인사를 앉히기 위해 공적기금을 압박하고 있다"고 말했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연기금과 자산운용사 등 기관투자가의 의결권 행사 지침이다. 주인의 재산을 관리하는 집사(스튜어드)처럼 고객 돈을 운용하는 기관투자가가 정치·경제 권력으로부터 독립해 투자 기업 의사결정에 적극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모범규준을 말한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낙하산 인사를 심는 데 공적기금을 동원하려 한다"며 "기관투자가들의 독립적인 주주활동이라는 스튜어드십 코드의 도입 취지를 무색하게 하는 행위"라고 지적한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정부 입김 아래 있는 연기금에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하면 정책 수단으로 이용될 것이란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다"며 "이러려고 정부가 스튜어드십 코드의 전면 도입을 추진하는 것이냐"고 비판했다.

한 자산운용사 대표는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 선임에 청와대가 개입한 사건에서 보듯 연기금의 독립성을 훼손하려는 시도가 잦아지고 있다"며 "정부가 낙하산 인사를 앉히기 위해 공적기금을 활용한다면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하는 명분마저 무너져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한전은 올 2분기 4999억원의 영업손실을 본 것으로 추정된다. 정부가 지난해 전력 생산비용이 가장 저렴한 원자력발전소 가동을 멈춘 탓에 연료비 지출이 대폭 늘어났다.

윤희성 기자 uniflow84@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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