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고라Agora’, 2009
다수가 외치면 거짓도 진실이 되는 민주주의란 이름의 괴물
선동당한 군중이 괴물의 이름을 외치며 저지르는 만행, 여론재판
죽음과 공포와 파괴뿐인 세상에서 진실을 아는 것은 왜 중요한가?
자유로운 아고라를 꿈꾸며 적폐로 살아가는 이 시대 수많은 히피타아를 위해

김규나 작가

1600여 년 전,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거리에서 한 여성이 폭도에게 붙잡혀 머리채가 뽑히고 발질질을 당하고 옷이 발가벗겨졌다. 광분한 군중은 욕설을 하고 침을 뱉으며 돌을 던졌고 칼과 전복 껍질로 그녀의 살을 갈기갈기 찢어발겼다. 목숨이 붙어 있던 그녀를 마차에 묶어 질질 끌고 다니다가 피투성이가 된 사지를 절단, 불에 던져 넣어 태워버렸다. 천재 수학자이자 철학자, 천문학자였던 히파티아의 최후는 그토록 참혹했다. 그녀가 혹독한 죽음을 맞아야 했던 이유는 대중과 생각이 다르다는 것, 그런데 여성이라는 것, 더구나 지나치게 똑똑하다는 것이었다.

“지구는 평평해. 지구가 둥글다면 아래쪽 사람들은 왜 안 떨어질까. 옆에 붙은 사람은 왜 안 미끄러지지? 생각을 해봐.” - 영화 <아고라> 중에서.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고 믿던 시절, 사람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진실이라 확신하며 부끄러운 줄 모르고 큰 소리로 떠벌였다. 학자들조차 두 발을 딛고 서 있는 거대하고 평평해 보이는 땅 덩어리가 둥글다거나 태양 주위를 끝없이 돌고 있다는 가설을 정신 나간 소리로 치부했다. 하지만 히파티아는 궁금했다. 별들의 밝기는 왜 변하는 것일까. 계절이 바뀌면 태양의 크기는 왜 달라질까. 지금 알고 있는 것이 정말 진실일까. 세상이 진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 것을 향해 히파티아는 용감하게 질문을 던졌다.

“(우주의) 비밀을 풀 수 있다면 기꺼이 죽어도 좋아.”

아름답고 총명했던 그녀에겐 많은 구혼자들이 있었지만 결혼하지 않았다. 그녀의 머리와 가슴을 뜨겁게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진실에 다가갈 수 있게 해줄 학문에 대한 열정뿐이었다. 그렇게 히파티아는 그때까지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지구와 태양의 관계, 즉 지구가 태양 주위를 타원 모양으로 돌고 있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추론해낸 최초의 천문학자였다. 하지만 그녀가 이단이라는 이유로 광신도들에게 난폭하게 살해당하고 저서들이 불살라진 그날 이후, 히파티아가 발견했던 우주의 진실은 어둠 속에 깊이 묻혀버렸다. 코페르니쿠스가 이론을 정립하여 지동설을 주장하고 갈릴레이가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은, 독일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가 행성의 궤도가 타원임을 입증하게 된 것은 그녀가 죽고 약 1200년이 지난 뒤에야 가능한 일이었다.

“믿음을 강요해선 안 돼. 그러지 마. 절대로. 절대로.”

히파티아에게는 많은 제자가 있었다. 유대인도 있었고 기독교도도 있었으며 노예도 있었지만 종교나 신분, 생각의 차이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녀의 수업에서는 누구나 의견을 발표할 수 있었고 질문할 수 있었고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자신들의 믿음만을 강요하는 무리의 세력이 커지면서 생각이 같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 배척과 폭압은 나날이 심해졌다. 무엇보다 ‘여자인 주제’에 감히 하늘에 대해 이야기하고 남자들 앞에서 두 눈 똑바로 뜨고 자기주장을 펼치는 히파티아는 권력층에게는 한낱 이단자였고, 군중의 무지를 깨워놓을까 두려운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그러한 이유로 권력은 그녀에게 불경한 창녀와 요망한 마녀라는 죄목을 뒤집어 씌었다.

권력과 학식을 가진 자들의 비뚤어진 신념과 그들에게 세뇌된 군중의 광기가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 생각할 수 있다면, 1600년 전 떼로 달려들어 비열한 살인을 저지르던 폭도의 행태가 최근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또는 벌어지고 있는 소위 적폐사냥과 쌍둥이처럼 똑같다는 사실에, 아니 더 지독하고 악독하고 추악하다는 사실에 소름이 끼칠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를 다만 여성 지식인에 대한 역사적 폭압의 기록으로 축소 해석하기에는 생각해봐야 할 더 중요한 문제들이 있다.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아고라는 고대 그리스 통치자들과 자유시민들이 한 자리에 모여 토론하고 민주적으로 의견을 결정하던 곳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진실과는 무관하게 다수의 의견만을 광신하게 된 민주주의는 ‘자유와 선택에 책임질 줄 아는 개인’이란 의미를 깨우치지 못한 대중들이 비겁하고 잔인한 폭력을 저지르도록 추동하는 흉측한 괴물로 변해갔다. 그렇게 로마제국 치하의 이집트에서 히파티아가 살해당했고, 그녀의 이름과 연구가 지워졌으며, 약 100만 권의 장서를 소장했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함께 불에 타 파괴됨으로써 찬란했던 헬레니즘 문화는 소멸의 길을 걷게 된다.

자유통일 대한민국이란 번영의 꿈 또한 숫자 맹신 민주주의가 불사른 촛불 덕에 깊은 어둠 속으로 침몰하고 있다. 수출과 내수 지수는 반 토막이 나고, 태양열발전을 한다며 파헤쳐 놓은 국토는 중금속으로 황폐화되어가고 있으며, 국가 안보 또한 국정원 무력화, 전방 군 철수, 병력 50만 단계적 감축 및 국군기무사령부 폐지 검토 수순으로 치달으며 급속히 무너져가는 중이다. 일자리가 줄어들고 물가와 세금이 치솟아 국민의 한숨은 깊어만 가는데 자국민이 허리 졸라매고 낸 세금으로 이슬람 난민을 수용하고 복지 혜택까지 누리게 해주어야 한다는 주장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무엇보다 평양 퍼주기에 주력하던 저들이 국제유엔 안보리 금수품목인 북한산 석탄을 실어 나르던 배를 국내에 아무런 제재 없이 11차례나 입항시킨 사실이 드러나면서 자동차와 철강 관세 인상에 이어 우리 경제는 더욱 강경한 제재의 나락으로 곤두박질 칠 위기에 처해 있다.

대한민국은 이대로 무너지고 마는 것일까, 심장이 졸아드는 심정으로 많은 국민들이 사태를 주시하고 있는 이때, 국가적 위기관리에 여념이 없어야 할 국무총리라는 사람은 “백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도자가 마침내 출현했다.”며 북한의 김정은에게 찬양가를 바쳤고, 한때 정치인이었던 유 모 씨는 “큰 기업의 2,3세 경영자들 가운데 김정은만한 혁신가가 있느냐.”며 그를 본받아 개혁을 이루어야 한다는 발언을 쏟아냈다.

인간은 아는 만큼 볼 수 있고, 믿는 크기만큼의 세계에서만 살아갈 수 있다. 우리가 알지 못하고 믿지 않는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히파티아와 그녀의 연구를 파묻어버린 탓에 자그마치 천 년이 넘는 시간동안 지구는 납작하고 평평한 채 어둠 속에 정지해 있었고 태양은 지구라는 네모반듯한 나무궤짝 주위를 열심히 맴돌았다. 이것이 당시 사람들이 진실이라 믿었던 거짓이었다. 이러한 거짓을 믿지 않으면 마녀나 이단으로 몰려 화형당하거나 사지를 절단당하며 죽어가야 했다. 만약 히파티아의 연구가 계속될 수 있었다면, 그래서 인류의 지성과 과학이 쉼 없이 축적되고 발전해왔다면 우리는 지금쯤 저 먼 안드로메다로 여름휴가를 다녀올 수 있을지도 모른다.

영화나 과거의 먼 나라에서만 가능한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세계의 중심은 핵무기로 장난치는 평양이며, 대한민국은 김정은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저들은 이제 아무런 수치심도 없이 천명하고 있다. 그들이 추종하는 신념에 반대하는 국민은 모두 적폐이자 마녀로 처단해도 되는 세상이 왔다고, 그러니 누구도 감히 저항하지 않을 거라고 자신 있게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북한 체제로의 동화를 두 팔 벌려 환영하고 있다. 선과 악, 올바름과 그릇됨, 진실과 거짓에 대한 근본적 가치를 우리 사회가 오랫동안 교육하지 못한 탓이다. 그 결과 대다수의 국민이 평화라는 말에 현혹되고 우리 민족끼리라는 말에 세뇌되어 공산주의와 김일성 전체주의 체제에 대한 비판 능력을 완전히 상실했기 때문이다.

“현실은 죽음과 공포와 파괴뿐이에요. 지구가 돌든 말든, 사람들이 그러한 진실을 아는 것이 왜 중요하죠?”

권력층에게 무릎 꿇지 않으면 죽게 될 거라며 제자가 설득할 때에도 히파티아의 귀에는 죽음과 공포와 파괴라는 말은 들리지 않았다. 그녀의 관심사는 오직 어떻게 하면 진실을 찾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진실에 한발 더 다가갈 수 있을까 하는 고민뿐이었다.

“다시 시작해야겠어. 새로운 관점으로 사고방식을 바꿔야지. 발상을 전환해야 돼.”

이 영화는 우주에서 바라본 지구의 모습으로 시작했다가 알렉산드리아 거리로부터 차츰 멀어져 다시 우주에서 바라보는 지구의 모습으로 끝을 맺는다. 천문학자였던 칼 세이건이 이야기한 것처럼, 드넓은 우주를 떠도는 작은 행성, 그 속에서 편견에 사로잡힌 채 좁디좁은 영역을 서로 차지하겠다고 벌이는 인간의 피비린내 나는 살육이란 얼마나 하찮고 어리석은 것인가, 묻고 있는 것 같다. 우주에서 보면 티끌만도 못한 행성에서 겨우 두 발을 딛고 살아갈 뿐이지만 저 높은 곳에서 반짝이는 별을 바라보는 인간의 눈빛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까치발을 들고 진실이란 별에 다가서려는 인간의 마음은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본성은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역사는 끝없이 반복된다는 말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진창 속에서 연꽃이 피어나듯 거짓의 시대를 살아가며 이제야 우리는 분명히 알게 되었다. 진실은 찾지 않으면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것이 진리다, 저것이 진실이다, 세상이 떠드는 대로 믿는다면 무지한 군중의 한 사람으로 전락할 뿐이라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나의 믿음을 강요해선 안 되지만 개인은 저마다 자신의 바른 신념을 굳건히 지키며 살아가야 함을.

무엇보다 우리는 저들에게 붙잡힌 이 시대의 히파티아를, 자유와 개인과 진실을 외친다는 이유로 조롱당하고 모함당하고 협박당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직장에서 해고되고 고소, 고발까지 당하며 정신적, 물질적 사지死地에서 외롭게 싸우고 있는 이 땅의 히파티아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그들을 지켜내고 빼앗긴 아고라를 되찾으려는 노력이 대한민국을 바로 세우는 초석이 되어야 한다. 거짓을 이기고 진실을 이야기해야 한다는 자각이 미래의 수많은 히파티아가 새롭게 태어나고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게 할 희망의 터전이 되어야 한다. 내 손으로 열매를 딸 수 없을지라도 오늘 씨앗을 심고 뿌리내리도록 가꾸어야 할 책임이 나와 당신에게 있다.

깨어나라, 개인이여! 일어나라,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이여!
TMTU. Trust Me. Trust You.

*‘TMTU. TRUST ME. TRUST YOU’는 김규나 작가가 ‘개인의 각성’을 위해 TMTU문화운동을 전개하며 ‘개인이여, 깨어나라!’는 의미를 담아 외치는 캐치프레이즈입니다.

김규나 객원 칼럼니스트(소설가, 소설 <트러스트미>, 산문집 <대한민국의 시계는 거꾸로 간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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