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성 1호기 조기 폐쇄하던 한수원 "정비 빨리 마무리해 원전 가동률 높이겠다"
탈원전·석탄하던 文정부, 아쉬울 때 원전·석탄 찾아···"에너지정책 일관성 부족"
탈원전 '손발' 역할하던 백운규·정재훈···전력비상 들어닥치자 뒤늦게 현장 점검
전국 곳곳에서 전력수요 폭증으로 정전사고 일어나···서울 부산 광주 등 아파트

최근 며칠째 폭염으로 전력수요가 급증하면서 탈(脫)원전 정책을 밀어붙이던 문재인 정부가 결국 원자력발전소에 SOS를 쳤다.

지난달 15일 월성 원자력발전소 1호기를 조기 폐쇄하겠다고 밝히면서 신규 원전 4기 건설 계획까지 백지화했던 한국수력원자력은 22일 여름철 전력수요 급증에 대응하기 위해 현재 정비 중인 원전을 재가동하고 일부 원전은 정비 시기도 여름철 이후로 미룰 것이라고 발표했다.

한수원은 이날 "현재 정지 중인 한빛 3호기와 한울 2호기를 전력 피크 기간인 8월 2∼3주차 이전에 재가동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고 한빛 1호기와 한울 1호기의 계획예방정비 착수 시기를 전력 피크 기간 이후로 조정하겠다"며 "이를 통해 전력 피크 기간 내 총 5개 호기, 500만kW의 추가 전력공급이 가능해질 전망"이라고 밝혔다.

한빛 3호기는 지난 5월 11일 계획예방정비를 시작했으며 계획대로라면 다음 달 8일 마칠 계획이고 한울 2호기는 지난 5월 10일 계획예방정비를 마쳤지만, 지난 12일 갑자기 정지해 현재 복구 작업을 진행 중이다.

한빛 1호기와 한울 1호기의 계획예방정비는 원래 각각 다음 달 13일, 15일 시작할 예정이었지만, 각각 18일과 29일로 조정됐다. 최근 계획예방정비를 마친 한울 4호기는 지난 20일부터 다시 가동을 시작해 오는 24일 100% 출력을 달성할 예정이다.

현 정권의 탈원전 정책에 앞장서던 주무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도 원전의 가동률을 높이는 방안에 대해서 "탈원전은 현재 운영 중인 원전의 가동 중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므로 동·하계 전력수급에 원전이 기여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한수원은 과거에도 전력수요가 급증하는 시기에 충분한 전력공급을 확보하기 위해 원전 정비 일정을 조정한 바 있다"고 말했다.

산업부와 한수원이 탈원전을 무색케 하는 원전 가동률 증대 조치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기록적인 폭염으로 전력수요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주 최대 전력수요가 산업부가 이달 초 발표한 올 여름 최대 전력수요(8830만kW, 8월 둘째주~셋째주)의 99%를 넘어섰다.

원자력 발전을 줄인다는 탈원전이 전력수요를 맞추지 못한다고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꾸준히 반대했던 에너지업계는 전력 당국이 폭염에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두고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지난 겨울에 이어 올 여름에도 정부의 최대 전력수요 예측이 빗나가고 있다"며 "작년 말 무리하게 탈원전·탈석탄을 제시하면서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상의 최대 전력수요를 낮게 잡은 결과"라고 설명했다.

원전과 석탄발전을 가동하면 안정적인 전력수급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밝힌 산업부에게 탈원전·탈석탄한다는 정부가 아쉬울 때는 원전·석탄을 찾는다면서 에너지 정책의 일관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일고 있는 것이다.

사진 위부터 문재인 대통령, 아래 왼쪽 백운규 산업부 장관, 정재훈 한수원 사장.(연합뉴스 제공)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시행하던 백운규 산업부 장관, 정재훈 한수원 사장 등은 전력수요에 비상이 걸리자 이번 주말(21~22일) 전력현장 점검에 나섰다. 백 장관은 22일 서울 광진구 한전 뚝도변전소와 인근 아파트를, 정 사장은 21일 경북 울진군 한울 4호기와 한울 2호기를 방문했다.

백 장관도 작년 12월 발표한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월성 1호기와 신규 원전 6기를 제외했고 정 사장은 지난달 15일 아직 운영허가 기간이 남은 월성 1호기를 조기 폐쇄하기로 결정했고 설계 또는 부지 매입 단계에서 중단된 신규 원전 4기 건설도 백지화했다.

한편, 지난주 전력 사용량은 8658만㎾까지 치솟았다. 이는 여름철 최고치였던 2016년 8월 12일 8518만㎾를 뛰어넘는 수치다. 지난 5일 정부가 내놓은 하계 전력수급대책이 전망한 올 여름 최대전력 수요를 8월 2∼3주에 8830만㎾였다. 현시점에서 볼 때 조기에 최대 수요를 넘길 가능성이 크다.

노무현 정부에서 미래 전력수요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하면서 이명박 정부였던  2011년 9월 15일 블랙아웃(대정전) 사태가 일어난 바 있다. 일각에서는 '또다시 블랙아웃이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하지만 블랙아웃보다 대규모 공동주택 등에서 부분적인 정전사태가 잦을 것이라는 전망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아파트 등 공동주택의 전기시설 노후화는 전력 사용량이 집중될 경우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최근 대구의 한 백화점에서는 폭염으로 배관이 달궈지면서 스프링클러가 작동하는 사고가 났다. 이 스프링클러는 배관 온도가 70도 이상일 때 작동하는데 이날 36도를 훌쩍 넘긴 더위에 금속 배관의 온도가 급격히 오르자 불이 났다고 오인한 것이다.

전국 콘크리트 도로도 더위의 공격으로 휘어버렸다. 대구 달성군의 콘크리트 도로는 차들이 다니지 못할 정도가 됐고 서해안고속도로도 더위에 울퉁불퉁해진 구간이 곳곳에서 발견됐다. 

소방청의 구급 출동은 작년에 비해 폭발적으로 늘었다. 소방청에 따르면 폭염 관련 구급 출동은 지난 10일까지는 전년도와 비슷한 양상을 보였으나 11일 이후 1주일간 전년 대비 295%의 증가율을 보였다.  

한편, 한낮 최고 기온이 37도에 육박하면서 전력 수요가 급증하면서 전국에서 정전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한국전력공사(이하 한전)에 따르면 지난 21일 서울 강서구 일대 아파트 1600여 세대에 2분 정도 전기 공급이 중단됐다. 노원구 상계동의 한 아파트 단지 690여 세대도 정전을 경험했다. 동대문구 청량리동 한 아파트의 1000여세대도 정전을 겪었다.

광주광역시 남구 봉선동의 한 아파트에서도 이날 정전이 발생해 9개동 756세대에 전기가 끊겼다. 한전 관계자는 "아파트에 전기를 공급하는 변압기에 과도한 전력이 몰리면서 일부 회선이 불에 타는 등 고장나면서 정전이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부산의 주택가에서도 정전으로 200여가구가 불편을 겪었다. 역시 변압기 과부하가 원인인 것으로 추정됐다.

윤희성 기자 uniflow84@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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