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는 옳고 우파는 무조건 그르다”는 고정 관념
 자유한국당이 개혁 성공해도 이 ‘철옹성’ 못 깨면 희망 없다
 문재인 인기의 허상과 거품 서서히 드러나는 중
 ‘사실 전달’ ‘거짓 파괴’에 비장한 각오로 투쟁 나서라    

홍찬식 객원 칼럼니스트 (언론인)
홍찬식 객원 칼럼니스트 (언론인)

현 정부 들어 ‘공론화 결정’이란 것이 새로 등장했다. 시민들을 1박2일이나 2박3일 합숙시키면서 정부 정책에 대해 찬성과 반대 주장을 들려준 뒤 표결에 부치는 것이다. 지난해 10월 신고리 5,6호기 원전 공사를 중단하느냐 계속하느냐를 놓고 처음 공론화위원회가 가동됐다. 대학입시 제도를 바꾸는 일도 다음 달 공론화를 통해 결론내기로 했다. 최근에는 교육부가 초중고 학생생활기록부를 개선하겠다며 시민 100명을 동원한 바 있다.

이런 식의 정책 결정은 누가 뭐라고 미화(美化)해도 정부의 책임 회피에 불과하다. 정부가 의도하는 방향대로 결론이 나면 시민들이 지지한 정책이라고 선전할 수 있고, 반대의 결정이 나도 정부가 책임질 일은 없다. 불순한 속셈과는 별개로 흥미로운 사실이 발견된다. 시민들이 정부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신고리 5,6호기 원전 공사의 경우 공론화 이전 여론조사에선 ‘건설 중단’ 쪽이 약간 우세하거나 ‘건설 중단’과 ‘건설 지속’ 의견이 각각 팽팽했다. 탈원전을 내세운 문재인 정부의 뜻은 물론 ‘건설 중단’이었다. 하지만 공론화에 참여한 시민들은 59.5%가 ‘건설 지속’ 쪽을 지지했고, ‘건설 중단’ 의견은 40.5%에 그쳐 19% 포인트의 큰 차이로 ‘건설 지속’ 쪽 손을 들어줬다. 최근 학교생활기록부의 공론화 결정에서도 교육부는 ‘수상 경력’ ‘자율 동아리’ 등을 사교육을 부추긴다는 이유로 학교생활기록부에서 삭제하고자 했으나 시민참여단은 ‘현행 유지’를 선택했다.

시민들 생각이 달라진 이유는 전후 사정을 알고 나서 판단이 변했기 때문이다. 신고리 원전 공론화위원회의 보고서에는 ‘원전 공사 중단 의견은 토론을 거듭할수록 줄어들었고 중립적인 입장이던 시민의 다수는 건설 재개 쪽을 선택했다’고 나와 있다. 막연한 인상과 선입견에서 나온 의견과, 내용을 상세히 파악한 뒤 도달한 결론은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이 같은 ‘공론화 결정’의 역설은 막다른 골목에 몰려 있는 우파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난해 탄핵 사태 이후 형성된 집권 세력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은 ‘단단한 철옹성’을 연상시킨다. 집권 세력의 잘못과 실패, 오만과 불통이 곳곳에서 드러나도 지지를 철회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집권 세력에 쓴 소리를 하는 쪽에 적대감을 드러낸다.

반면에 우파는 아무리 옳은 말을 해도 귀를 기울여주지 않는다. 우파의 잘못이 드러나게 되면 그것이 집권 세력의 계산된 정치적 술수이더라도 무조건 우파에게 채찍과 몽둥이를 들이댈 기세다. 최근 비상대책위를 출범시킨 자유한국당이 맞닥뜨리고 있는 위기의 본질이 바로 이것이다.

설령 자유한국당이 뼈를 깎는 개혁을 성공시킨다고 쳐도 국민들 사이에 팽배한 ‘좌파는 선(善), 우파는 악(惡)’이라는 인식의 장벽을 극복하지 못하면 당분간 설 땅은 없다. 이런 막막한 상황에서 ‘공론화 결정’의 역설은 분명 희망적 메시지다. 국민들에게 어떻게든 정확한 사실과 객관적 정보를 전달할 수 있다면 반전이 가능함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전달’과 ‘거짓 파괴’라는 과제는 말은 쉬워도 좌파가 입법 행정 사법 지방권력까지 모두 장악한 현실에서 한판 전쟁을 치른다는 각오 없이는 달성할 수 없다.

좌파 진영은 현 국면을 즐기듯 “서구 기준으로 하면 더불어민주당은 중도우파”라면서 “앞으로 민주당이 중심 정당이 되고 정의당이 그 왼편에 좌파로 자리 잡을 것”이라고 떠들고 있다. 당연히 자유한국당은 한국 정치에서 소멸할 것이라는 의미다. 일부 여론조사 회사는 여기에 맞추기라도 하듯 정의당이 자유한국당을 제치고 정당 지지율 2위에 올라섰다는 통계를 내놓는다. 여론조사의 신뢰도 문제를 떠나 이처럼 조롱거리로 전락한 것이 우파 정당의 비참한 처지다.

절망적인 단계는 아니다. 시중에는 “문재인 정부가 다른 건 잘하는데 일자리 정책은 형편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인기는 높은데 최저임금 정책은 잘못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다 좋은데 교육정책은 최악이다”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오고 있다. 문재인 인기의 실체가 없다는 얘기다. 지금 국민들에게 문재인 정부가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잘 하고 있는가를 물으면 뾰족한 대답이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동안 국민적 관심을 집중시켰던 북핵 이벤트는 비핵화에 회의적인 시각이 확대되면서 반응이 예전 같지 않다. 집권 세력이 경제 운영 실패를 가리고, 우파에 대한 ‘분노 마케팅’를 이어가기 위해 적폐 청산 카드를 계속 꺼내들고 있으나 약발이 떨어지고 있다.

좌파의 공고한 틀을 깨는 일은 현 단계에서 계란으로 바위치기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차피 길거리로 나앉게 될 우파 야당이 투쟁심마저 포기한다면 그 어떤 미래도 없다. 이 대결은 기본적으로 ‘허상’과 ‘현실’ 사이의 승부다. 집권 세력에 대한 지지는 상당 부분 거짓된 허상에 기반하고 있다. 허상은 결코 현실을 이기지 못한다. 승산은 충분하다.

홍찬식 객원 칼럼니스트(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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