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푸틴과 정상회담 전후 "(대북협상은) 수십년간 계속된 것"이라며
속전속결, 일괄타결, 탑다운, CVID, 원샷, 트럼프 모델 모두 수사에 그치나
한국당 "文정부는 좌시만 하지말고 트럼프 진의 확인해 국민에 밝혀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6일(현지시간) 북한 비핵화 협상 과정을 "서두를 필요 없다"고 말했다. 6.12 미북정상회담 전후 미국이 그동안 강조해 온 '일괄타결' '탑다운' 방식을 뒤로 하고, 대북 선(先)비핵화 압박도 완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전후해 미 CBS 방송과 가진 인터뷰에서 '6·12 회담 이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회담 결과 이행을 위해 얼마나 빨리 움직이고 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이것은 수십 년 간 계속돼 온 것이지만 나는 정말로 서두르지 않는다"며 "그러는 동안 막후에서 아주 긍정적인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정상회담 후 미 폭스뉴스와 한 인터뷰에서도 푸틴 대통령이 북한 문제에 도움이 되고 싶다고 밝혔음을 거듭 강조하며 "우리가 북한과 잘하고 있어서 아직 시간이 있다. 수년간 계속된 일인 만큼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입장을 재확인했다.

그동안 북한 비핵화를 '과정'(process)이라고 표현하며 시간이 걸릴 수 있음을 시사해온 트럼프 대통령이지만, 이처럼 명시적으로 '서두르지 않겠다'고 공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 "알다시피 우리는 인질들을 돌려받았다. 지난 9개월 동안 실험이나 핵 폭발도 없었고 일본 상공을 날아가는 로켓도 없었다"고 '성과'를 자평했다. 그는 "북한과의 관계도 매우 좋다"며 "김정은이 보낸 친절한 편지도 보지 않았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히려 푸틴 대통령이 북한 비핵화 관철에 관심이 있다는 듯 "내 생각엔 좋은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지만 푸틴 대통령은 그 모든 일이 일어나도록 하는 데에 매우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초 북한 비핵화와 체제보장 문제를 일거에 맞바꾸자며 '속전속결'식 일괄타결론을 강조해 왔다. 과거 행정부들처럼 이행단계를 설정하고 단계별로 비핵화 조치와 상응조치를 동시적으로 실행에 옮기는 접근방식을 피하겠다는 판단이었다. 

지난 3월 미북정상회담 수락 초기에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를 내세우며 '빅뱅' '원샷' '일괄타결' '트럼프 모델'이라는 수사(修辭)를 동원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였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5월 말 미북정상회담을 준비하는 실무협상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점차 유연한 입장을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미북정상회담을 앞둔 지난달 1일 미국으로 내방한 김영철 조선노동당 중앙위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을 접견한 뒤 이번 회담을 '상견례', '과정의 시작'이라고 표현하며 회담에 대한 기대 수준을 낮춘듯한 모습을 보였다.

미북정상회담 이후 후속 고위급회담을 거치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비핵화가 시간이 걸리고 일정한 단계가 필요하다는 식의 인식을 드러내면서 '자세 전환'을 꾀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가 이번 푸틴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계기로 비핵화 협상의 속도를 조절하겠다는 입장을 공개 표명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13일(현지시간) 영국에서 열린 테리사 메이 총리와의 공동기자회견에서 북한 비핵화 문제와 관련, "그것은 과정이다. 아마도 사람들이 바라는 것보다 더 긴 과정이 될 수 있다"고 시사한 바 있다.

결국 그동안 전임 행정부 때부터 거듭된 실패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입장에도 불구하고, 북한 비핵화는 제자리 걸음에 머무르는 모양새다.

지난 6~7일(한국시간)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6.12 회담 후속 고위급 협상차 세번째 방북한 뒤 얻은 비핵화 성과 역시 협상을 맡을 실무진 구성이 유일하다. 그러나 이마저도 협상의 주된 의제가 6.25 참전 미군 유해송환에 집중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11월 중간선거라는 대형 정치일정을 앞둔 트럼프 대통령이 결국 '판'을 깨지 않기 위해 북핵 협상문제에 대해 최대한 신중하게 접근할 수 밖에 없다는 시각을 드러내고 있다.

외교가에서는 푸틴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이 일정한 영향을 줬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대북 협상 국면에서 북한과의 경제협력 규모가 큰 중국은 물론이고 북한에 대해 정치적 영향을 가진 러시아의 역할과 협조가 긴요하다고 본다는 것이다.

협상의 틀이 미국의 대북 1대 1 비핵화 압박이 아닌, 다자가 개입하는 북한 체제 안전보장 논의 국면으로 흘러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러시아는 비핵화 프로세스의 일부로 북한에 안전보장을 제공하는 데 참여할 준비가 됐다"고 말했다.

한편 국내에서는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이 "국민은 북한의 신속하고 완전한 비핵화를 간절히 소망한다"고 호소했다.

윤영석 한국당 수석대변인은 17일(한국시간) 오후 "대한민국 국민은 한반도의 진정한 평화와 남북 공동번영을 위한 북한의 신속하고 완전한 비핵화를 간절히 소망하고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11월 중간선거와 재선 도전 등 미국 국내 정치일정과 미북 간의 특수한 이해관계 및 자국의 국익에 따라 비핵화 추진을 장기화하겠다고 했을지 모르나, 문재인 대통령과 우리 정부가 이러한 것을 결코 앉아서 보고만 있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문 대통령과 정부는 대한민국 국민의 명운이 걸린 북한 비핵화 해결을 장기화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대한 진의를 정확히 확인해 국민들에게 밝히고, 북한의 신속하고 완전한 비핵화를 어떻게 실현해 나갈 것인지 구체적인 해결방안을 제시하라"고 촉구했다.

한기호 기자 rlghdlfqjs@pennmike.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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