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조의 이른바 '참교육' 아래 학창시절…대학에선 최루탄 가스 마시며 투쟁
취업 후에는 노조가입…'떼쓰면 다 되는구나'라는 생각 자리잡았다
노조 집행부 현업 배치돼도 업무하지 않아…비정규직 처우에는 침묵

변영빈 씨.

저는 1977년에 서울에서 태어났고 아직까지 서울에서 살고 있는 사람입니다. 중랑 천 뚝방에서 친구들과 뛰어놀며 어린시절을 보냈으며 초창기 전교조 선생님에 의해 국민(초등)학교에서 수업하였고 당시에는 왜 이런 노래를 음악시간에 불러야 하는지 이유도 모른 체 선생님의 오르간 반주에 맞추어 동요대신 개똥벌레를 불렀던 기억이 납니다. 전교조의 참교육이란 구호아래 국정 교과서 대신 별도 인쇄된 종이로 수업을 하였던 기억도 있습니다. 또한 중학교에 올라가서는 수업 현장보다 시위 현장에 더 많이 나가 계시는 분께서 담임 선생님이셨으며 결국 징계를 받으시고 학기 중간에 다른 담임 선생님을 맞이 한 경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학창시절 나름 열심히 공부하였고 그 결과로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습니다.

대학교 1학년, 철없이 친구들과 술 마시고 놀던 시절, 대부분의 학생이 그러하였듯이 선배들의 손에 이끌려 PD계열이 어떠니 NL 계열이 어떠니 하며 교육도 받았으며 시위 현장에도 가보고 최루탄 가스도 마셔가며 마치 의식 있는, 깨어 있는 시민 인양 어깨를 으쓱거리며 세월을 보내다가 시나브로 좌파 이념이 나의 머리속에 스며들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지내던 시절에 맞이했던 IMF는 지금 생각해보면 나도 모르게 스며들었던 좌파 이념이 더욱더 확장되는 계기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가게가 어려워져 다니던 학교를 휴학하고 당구장으로 놀이공원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비를 벌었고 그러면서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라는 불만이 그저 세상이 뒤집어졌으면 하는 생각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저의 첫번째 민주시민으로써 투표권 행사는 김대중 정권 출범에 일조하였고 그 이후로도 줄곧 지금의 민주당 후보에게만 나의 한 표를 주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학창시절을 보내고 가난으로 인하여 당장 취업을 하여야 했었기에 모든 사람들이 우선 대기업에 지원하던 시절, 저는 저 자신을 잘 알았던 것인지 중소기업에 지원하여 당당하게 제일 먼저 취업을 하였습니다. 물론 친구들은 저를 부러워하지 않았지만 중소기업에서 기술을 배우고 무역도 배우며 해외에 파견까지 다녀온 저는 지금 생각해봐도 그때가 제일 열심히 일했던 기간이었고 가장 많이 배운 시기였음에 스스로 자랑스러워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소중한 경험을 바탕으로 현재 다니고 있는 대기업으로 이직할 수 있었습니다.

대기업으로 이직 후 얼마가 지나지 않아 노조에 계신 분들과 신입사원 간담회를 가졌습니다. 말이 간담회였지 노조에 대한 교육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민주노총에 대한 설명과 민주시민으로서의 역할, 그것은 대학교 1학년때 선배의 손에 이끌려 가 들었던 내용과 별반 다름이 없었습니다. 아직 나도 모르게 좌파 이념에 사로잡혀 있던 저는 당연히 제일 먼저 노조에 가입하였고 그들과 가깝게 지내면서 적극적이진 않았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친 노조 성향을 보이며 노조 찬양을 하고 다녔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그 노조로 인해서 제가 좌파이념을 탈출하는 계기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적극적으로 노조일에 참여하던 저는 많은 것을 실제로 경험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거대한 자본에 대항하여 맞서 싸우는 멋있는 노동자들이구나 란 생각을 했습니다. 중소기업에서는 전혀 체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경험 이였습니다. 협상자리에서 사장 및 경영진들을 질타하고 비난하는 홍보지를 만들어 배포하고 그리고 해마다 파업을 주도하는, 중소기업에서는 상상도 못하는 일이 벌어지는 별천지였습니다. 이게 과연 받아들여질까 라는 의문도 잠시, 떼쓰고 파업하면 그냥 다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이렇게 떼쓰면 다 되는구나'라는 생각이 저에게도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중소기업에서 일한 값진 경험이 그들과는 다른 길을 가게 된 이유가 된 것 같습니다.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노조에 관련된 사람들은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일을 하지 않는데 각종 수당이 더해져 임금은 더 많이 받아갑니다. 그리고 더한 것은 노조 집행부에서 내려와도 일을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그렇게 비난 하는 전관예우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이렇게 그들의 말과 행동이 불일치 되는 것은 쉽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말로는 차별 없는 세상을 외치면서 정작 비정규직에 대한 사안은 외면합니다. 아니 정규직 자리를 비정규직에게 뒷돈을 받고 판매합니다. 말로는 경영진의 고통분담을 얘기하지만 정작 본인들의 잇속은 내려놓지 못합니다.

이러한 예는 수도없이 많습니다. 제가 아는 어떤 노조 집행부 출신은 회사에 근무하는 30여년 동안 무슨 일을 했는지 모릅니다. 물론 지금도 일은 안하고 선거철만 되면 정치권에 뛰어들곤 합니다. 떨어지면 다시 회사에 돌아오고 다시 나갔다가 돌아오기를 반복합니다. 그가 거쳤던 정당만해도 3개가 넘는 것으로 압니다. 그리고 어떤 위원장은 밤늦은 귀가길에 교통사고로 명을 달리했는데 노조가 열사라 칭하고 해마다 추모를 합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번에 회사가 어려워 법정관리 위기에 놓였는데도 노조는 파업 운운합니다. 아마 회사가 없어질 때까지 싸우려 나봅니다. 이 회사에 다니면서 민주노총에 대한 너무 많은 사건들을 직접 보게 되었습니다. 일일이 다 열거할 수도 없을 만큼 많은 것들을 보고 겪으면서 서서히 그들이 저에게 심어 놓았던 좌파이념들이 '이런 것이었나'라는 생각이 들게 되었습니다.

열심히 일을 해야 돈을 많이 벌게 되고 부자가 됩니다. 이 문장은 언제나 제 머리속에서 떠나지 않았던 간단한 진리입니다. 그런데 민주노총이 얘기하는 것은 자본가는 노농자의 노동을 착취해서 부를 쌓은 것으로 말합니다. 그런 생각에 사로잡혀 있으면 본인은 절대 자본가가 되지 못합니다. 저는 열심히 일하고 새로운 것을 창출하여 부유하게 살고 싶습니다. 그저 남 탓하고 남의 것을 빼앗아 잘 살고 싶지 않습니다. 이러한 경험과 생각들이 좌파이념을 탈피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계기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좌파이념을 탈피하면서 많은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철없이 촛불을 얘기하고 세월호를 들먹이고 역사를 이야기하는 친구, 선후배들과 술자리에서 당당하게 토론을 하려면 자연스럽게 공부를 하여야 했습니다. 지금까지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던 역사에 대해서도 찾아서 익히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알게 된 사실은 지금 제가 글에도 썼 듯이 아주 오래전부터 서서히 좌파 이념이 내 생활로 들어온 것이기에 바꾸는 것이 쉽지는 않겠구나라는 것입니다.

우리 아이 위인전집에는 김구는 있어도 이승만 대통령은 없습니다. 제 주변에 어느 역사책에도 독도는 우리 땅 이라고만 되어있지 왜 일본이 자기네 땅이라고 하는지에 대한 서술은 없습니다. 많은 민간인이 희생된 점만 부각되는 4.3사건, 산업화애 대한 것보다는 독재를 강조하는 서적 뿐입니다. 따라서 아직 일일이 찾아 공부하는게 많은 노력이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역사에 관심이 많은 초등학교 4학년 아들에게 책에서 볼 수 없는 많은 부분을 설명해 줄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얼마 전에는 철원으로 가족과 함께 안보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저도 처음으로 본 것들에 대해서 놀랐습니다. 말로만 들었던 백마고지, 피의 능선, 그리고 아이스크림 고지 등등 우리 대한민국의 국군과 UN군의 희생이 없었다면 지금 대한민국은 어떻게 되었을까를 생각하면 아찔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제2땅굴을 들어갔을 때의 분노. 지금의 평화공세가 사실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그것이 가짜일 수도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준비를 해야 한다고 아이에게 말했습니다. 이렇게 뒤로는 어떠한 짓을 할지 모르는 북한에게 한번 당했으면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역사공부와 함께 지금은 자유시장경제 체제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특히 경제 관련 통계수치는 꼼꼼히 들 여다 보고 있습니다. 경제 신문에서 조차도 통계의 오독이 많은 걸 확인하고부터는 제목만 보고 판단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직은 미흡하지만 이렇게 관심을 가지고 보다 보면 나 자신도 좀 더 발전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그래서 적어도 경제신문정도는 읽고 이해하며 비판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고자 합니다.

또한 좌파의 세계관에서 강조하는 상대적 박탈감에서 빠져나오면서 나의 행복은 내 스스로가 노력을 통해 얻을 수 있다는 진리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1% vs 99%, 재앙적 소득 격차 등 그들이 말하는 것에 함몰되어 있으면 상대적 박탈감, 노력해도 소용없다는 패배감에 빠져 불행해 질 뿐입니다.

좌파이념을 탈피한 지금 기분이겠지만 스스로가 전보다 똑똑 해졌다는 것과 더욱 행복해 졌음을 느낍니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열심히 일하고 새로운 것을 익히며 아들에게 자랑스러운 아빠가 되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변영빈(42·회사원) gmdaewoo2004@gmail.com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작권자 © 펜앤드마이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