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파 찾기 힘든 대학 캠퍼스…나 역시 좌파로 살았다"
"운동권 선배들의 가짜 정의감에 매료…편향된 세계관 형성"
지방출신, 자취로 스스로 책임지는 삶 배우며 우파 가치관 관심
2016년 국정농단 촛불시위 나가는 친구들 수준보고 확실히 전향
"다수라는 파도에 맞설 용기…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때 확인"

장려상 수상자 김시민 씨.

저는 졸업을 앞두고 있는 20대 대학생 남성입니다.

대한민국에서 대학생이 우파인 경우는 찾기 힘듭니다. 대학에서는 워낙 좌편향적 풍토가 지배적이기 때문에 교수들도 친구들도 모두 좌파입니다. 물론 저도 남들과 뇌 구조가 특별히 다르지 않은 평범한 대학생이라 영락없이 좌파로 청춘을 보낼 뻔했습니다. 그런 제가 어떻게 우파로 돌아서게 되었는지에 대해 자기 분석한 이야기를 공유하려고 합니다.

저의 20대 초반은 대학에서의 좌파 이념에 대한 흠모의 시기였습니다. 그 당시 저희 대학에서는 포스트모더니즘 사조의 인문학 강좌들이 필수 교양 과목이었고, 교수들도 대부분 좌익적 성향을 띠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저는 좌익적 가치에 매료될 수 밖에 없었죠.

저는 교과 과정을 넘어 맑시즘, 페미니즘 등을 공부하며 자연스럽게 반기업적, 반기독교적, PC적 정서를 체득했고, 좌파 이념의 충실한 졸병 말로 거듭났습니다. 생산활동도 제대로 해보지 않았지만 노동자에 행해지는 자본권력의 갑질이 무엇인지 아는 것만 같았고, 연애도 결혼도 해보지 않았지만 남성 젠더권력에 시달리는 여성들의 고통을 공감한다는 듯한 오만한 착각에 빠져 살았습니다.

캠퍼스 안에서만 생활했으니 제 편향된 세계관은 어떠한 도전도 받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저는 평등주의에 집착할 수록, 저 같이 충실한 좌익이 많을수록 세상이 정의로워질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머리띠를 두르고 화염병을 던지고 각목을 휘두르다가 전경들에게 양팔이 묶여 연행당하는 와중에도 민주주의를 부르짖으며 끌려가던 운동권 세대 선배들의 정의감(으로 포장된 이미지)을 간직하겠다는 허황된 의지를 품고 몇 년 간 대학을 다녔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제 무의식 한 구석에는 우파적 자아가 자라고 있었는데, 그 영양분은 바로 자취 생활이었습니다.

저는 고향이 지방이기 때문에 대학 입학 때 상경해 지금까지도 혼자 살고 있습니다. 물론 부모님으로부터 지원을 받기도 해서 완전한 독립이라고 하기엔 좀 민망한 수준입니다. 하지만 처음으로 가족들과 물리적으로 단절되어 홀로 자취방에 남았을 때 느꼈던 그 고독감을 잊지 못합니다. 누구의 도움 없이 혼자 생활을 헤쳐나가야 한다는 두려움이었습니다.

저는 낯선 서울 환경에 대비하기 위해 스스로를 무장해야 했습니다. 밥해 줄 사람이 없으니 요리법을 공부했고, 돌연 쓰러지면 돌봐줄 사람이 없으니 꾸준히 운동을 했고, 달마다 관리비를 내야 하니 틈틈이 돈을 버는 방법도 익혔습니다. 가정이란 보호막 없이 살다보니 크고 작은 문제들이 어떠한 필터에도 걸리지 않고 곧장 저에게 부딪혀 왔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해결해나가는 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스스로에 대한 신뢰감을 탄탄히 길렀습니다.

좋은 성적을 받지 못해도 경쟁 과잉의 대학교육 시스템을 탓하지 않았습니다. 취업 면접에서 떨어져도 나의 능력을 알아봐주지 못하는 면접관들을 나무라지 않았습니다. 저는 인생에 대한 주인의식이 투철했고, 자기 안에서 해결책을 찾는 연습이 되어있었기 때문입니다.

자취 생활은 ‘내 인생의 문제는 내가 해결해나가야 한다’는 모토(물론 좌파였을 때는 저런 류의 문장을 떠올린 적이 없었습니다)를 온몸으로 체감시켜준 계기입니다. 훗날 제가 우파적 이념을 거부감 없이 수용할 수 있었던 것은, 이렇게 길러졌던 우파적 마인드가 밑바탕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좌파 탈출을 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2016년 촛불 시위 열풍입니다. 국정 농단 사태로 나라가 한창 떠들썩할 때였습니다. 대한민국이 빠르게 좌경화되어가는 것에 하루하루 놀랐습니다. 대학 캠퍼스에서는 그 속도가 세 배쯤으로 느껴졌구요.

어느 날 수업이 끝나고 친구들과 학교에서 나가던 중, 광화문 촛불 시위 참여 계획을 짜는 그들의 대화를 들었습니다. 저도 물론 그들이 시위에 간다면 같이 따라갈 의향이 있었습니다. '보수 정권은 타도의 대상’이라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국정 농단에 대해서 토론을 하던 그들의 대화를 오랫동안 듣고 있자니, 아무도 제대로 알고 나간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그저 사실관계도 검증 안 된 찌라시 뉴스들을 들먹이며 그들이 박근혜 정부에 분노해야 할 이유를 억지로 만들어내고 있다고 생각했죠.

친구 중 한 명이 저에게 넌 촛불 시위에 안 가느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문득 생긴 궁금증을 풀어 반문했습니다. 우리가 시위에 나가는 목적이 올바른 사실관계에 의해 정당화되는지 생각부터 해봐야하는 건 아니냐고요. 그게 전제되지 않는다면 내 개인 시간을 써가면서까지 시위에 나갈 만한 정치적 절박함을 느낄 필요가 없지 않느냐고요.

제 대답을 듣던 친구는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 때문에 나라가 발전이 안 되는 거야'라고 한 마디 무심하게 뱉었고, 다른 친구들도 비웃듯이 그에 동의했습니다. 아무도 저에게 촛불 시위에 나가야하는 납득 가능한 설명을 해주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광화문으로 갔고, 저는 자취방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저는 광화문으로 향하던 친구들의 뒷모습을 떠올리며, 좌파로 살던 저의 뇌구조를 처음으로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좌파적 세계관이 붕괴되며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저 어두운 광화문에서 벌어지는 역사적인 순간에 섞이고 싶어하는 저들이구나. 어둠을 몰아내고 정의를 쟁취해내는 비장한 전율을 느끼기 위해 몰려다니는 저 친구들이 곧 나구나. 저들이 손에 쥘 촛불은 진실 없는 공허한 정의겠구나. 그런 정의감에 이끌려 행동하는 사람들, 지적 허장성세를 좋아하고 자기검열을 상실한 사람들, 분노를 위해 분노하는 사람들을 키워내는 게 좌익 세뇌 교육이구나라고요. 그 날 저는 '좌익 독재'가 무엇인지 처음으로 깨달았습니다.

저의 좌파 탈출은 좌파 친구가 무의식적으로 툭 던진 말을 트리거로, 여러 생각들이 연쇄반응을 일으키며 완성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사고흐름은 어쩌다 운 좋게 일어난 게 결코 아니었습니다. 대학 입학 때부터 고독감을 삶의 일부로 안으며 살아왔고, 개인에게 닥친 문제들을 고독하게 해결해내면서 우파 친화적인 사고회로가 발달했던 탓입니다. 다수라는 파도에 떠밀려가지 않을 용기, 다수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의문을 품을 수 있는 용기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용기를 갖고 있다는 것을 저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 사태 때 확인했던 것입니다.

김시민(27·대학생/장려상 수상자) syukran@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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