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동반한 '1987' 띄우기, '택시운전사' 홍보전보다도 노골적

문재인 대통령이 '극장 정치' 행보를 노골화하고 있다. 탈(脫)원전 영감을 얻었다는 '판도라', 독일인 기자가 5·18의 중심으로 인도된 과정을 각색한 '택시운전사'에 이어, 6월 항쟁과 그 기폭제인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386 학생 운동권 시각에서 조명한 '1987' 띄우기에 나섰다.

공교롭게도 모두 현 정권의 존립을 공고화할 소재인데다, 작품 내에 진위는 물론 편향성 시비에서 자유롭지 않은 요소가 부지기수다. 특히 운동권 학생의 죽음을 배경으로 한 1987은 지난 7일 대통령이 "내내 울면서 뭉클한 마음으로 봤다"는 감상평을 내놓으면서 점입가경이다.

바로 다음날인 8일 집권여당이 공개 회의에서 "1987이 온 국민을 울리고 있다"(이개호 최고위원)고 띄우기에 가세했다. 5·18을 "6월 항쟁의 근본적인 시작"(양향자 최고위원)이라는 의미 부여도 아끼지 않았다. 친(親)정부 포털과 언론은 연일 1987 관련 미담 보도를 연일 쏟아낸 가운데, 8일 이른 오후까지도 네이버 '뉴스토픽' 상위권에 길다란 "문재인 대통령 영화 1987 관람" 문구가 오르내렸다.

많은 언론들이 극중 고(故) 이한열 역을 맡은 배우 강동원이 '대통령 옆에서 눈물을 쏟았다'거나 '이한열 열사 모친과 함께 묘소를 찾았다' 등의 감성적 보도를 받아쓰고, 퍼 날랐다. 마치 4년 전 '어린 10대 학생들의 죽음'을 기폭제로 삼았던 세월호 추모 열기를 되살려 6월 항쟁 주축인 386 운동권으로 돌리려는 듯한 양상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월7일 오전 서울 용산 CGV에서 열린 6월 항쟁을 소재로 한 영화 '1987'을 관람하기 위해 입장, 관람객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월7일 오전 서울 용산 CGV에서 열린 6월 항쟁을 소재로 한 영화 '1987'을 관람하기 위해 입장, 관람객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압제로 인해 누군가가 죽어간 사건에 눈물이 뒤따르는 건 이상할 게 없다. 그러나 6월 항쟁의 불을 당긴 '인민민주주의' 세력의 일원이 추앙 대상으로 바뀌는 건 '본질 흐리기'라는 비판이 나온다. 김철홍 장신대 교수는 최근 PenN 칼럼을 통해 1987에서 박종철은 순수하게 군부독재에 반대한 민주화 투사로만 묘사될뿐 이면이 가려져 있다고 지적했다.

칼럼에 따르면 6월 항쟁은 직선제 개헌론을 놓고 민중민주(PD)계와 대립하던 민족해방(NL)계가 PD계 박종철의 희생을 등에 업고 주류 '민주화 세력'으로 약진한 사건으로 요약된다. NL은 "반전반핵(反戰反核) 양키고홈"을 외치던 주체사상파다. 당시 순수하게 군부독재에 반대해 항쟁에 가세한 '넥타이 부대'는 이들의 '호헌철폐·독재타도' 구호에 "속았다"고 김 교수는 분석했다. 아울러 넥타이 부대가 진정한 자유민주주의 세력이며, "거짓에서 깨어나 각성된 시민"으로서 지난해 탄핵 반대 시위를 위해 거리로 나섰다고 평가했다.

이런 역사의 이면은 대통령의 "내내 울었다"는 한 마디에 묻히고, 방향성이 불투명한 "세상을 바꾸자"는 구호가 난무하게 됐다. 문 대통령은 "우리가 함께 힘을 모을 때, 연희(극중 배역)도 참가할 때 세상이 바뀐다는 것"을 영화가 보여준다고 언급했다. 1987을 계기로 '세상을 바꾸는 데 동참하라'는 메시지를 남기는 것은, 대통령 스스로가 30년 전 운동권식 '혁명투쟁'에 현 시대 국민을 끌어들이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살 만하다.

이에 앞서서도 문 대통령은 영화 관람 후 극중 상황을 현재에 반영하려는 언급을 남기는 사례가 많았다. 지난해 10월15일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미씽 : 사라진 여자'를 관람한 후 페미니즘(여성주의)을 지지하는 감상평을 남겼다. 문 대통령은 당시 "제목에 아주 이중적인 뜻이 있다"며 "실제로는 한매(극중 배역)가 사라진 것인데, 우리 사회에서 '여성들이 아주 소외되고 있다', '여성들의 목소리가 사라졌다'는 의미도 담고 있는 것 같다"고 평했다.

같은해 8월13일에는 '택시운전사'를 독일 기자 고(故) 위르겐 힌츠페터의 부인 에델트라우트 브람슈테트와 함께 관람한 뒤 "아직까지 광주의 진실이 다 규명되지 못했다. 이것은 우리에게 남은 과제"라고 주장했다. 이런 관점에서 문재인 정부는 5·18 당시 '헬기 기총소사'와 '행방불명자 암매장' 등 의혹을 대대적으로 거론하며 규명에 나섰지만 별다른 물증을 찾아내지 못 했다. 영화 자체도 힌츠페터를 광주까지 데려다 준 실존인물 김사복을 홀아비에 소시민인 개인택시 운전사로 묘사한 게 '각색을 넘어 왜곡'이라고 지적할 만한 정황이 적지 않게 발견됐다.

문 대통령은 집권 이전부터도 눈물을 동반한 '극장 정치'를 해왔다. 지난해 제19대 대선 더불어민주당 경선 중이던 2월24일에는 '약촌오거리 살인사건 재심'을 다룬 영화 '재심'을 관람한 후 "얼마 전에 국정원이 탈북자 유우성씨(국가보안법 위반 무죄, 여권법 위반·탈북자 위장·사기 유죄)를 간첩으로 조작해 엄청난 고초를 겪었다"고 주장했다.

2016년 12월18일에는 비(非)전문가가 만든 원자력 발전 재난영화 '판도라'를 관람하고 "비록 (원전 사고) 확률이 수백만 분의 1밖에 안 되더라도 사고 발생 가능성이 있다면 우리가 막아야 한다"며 "원전 추가 건설을 막고 앞으로 탈핵·탈원전 국가로 가야 한다"는 감상평을 내놨다. 문 대통령은 실제로 집권 직후 "일단 공사는 중단하자"(지난해 6월27일 국무회의)는 말 한마디로 신고리 5·6호기 공사를 멈췄으며, 3개월여 '공론화위원회' 운영을 강행한 뒤 1000억원 넘는 손실을 보고 공사를 재개하는 촌극을 자초했다.

이밖에 문 대통령은 앞서 2014년 1월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변호사 시절 맡은 부림사건(부산 학림사건)을 다룬 '변호인' 관람에 나서 "국민이 피와 땀으로 이룩한 민주주의가 다시 위기에 처했다"는 정치적 주장을 했다. 두 해 전인 2012년 18대 대선 기간 극장에서 '광해, 왕이 된 남자'를 본 뒤에는 "노 전 대통령 얼굴이 저절로 떠오른다"고 했다.

한기호 기자 rlghdlfqjs@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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