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친구 보며 노무현·문재인 버렸다[남택동]…좌파탈출기③우수상
삼성전자 친구 보며 노무현·문재인 버렸다[남택동]…좌파탈출기③우수상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학 자퇴…과외교사로 오랜시간 활동 '일반적 삶'에서 스스로 멀어졌다"
"불안·패배감 우울의 절정에서 삼성전자 다니는 고교동창 치열한 삶보며 반성했다"
"이론-논리-통계로 설득되는 사람은 이미 좌파 아니다…그래도 우리는 답을 찾을 것"
우수상 수상자 남택동 씨.

저는 1979년에 경기도 성남에서 태어나 27년간을 살다가 지금은 경기도 광주에 살고 있습니다.

98년도에 아주대에 입학했어요. '대리 출석'이 만연했고, 매일 갖은 핑계의 술판만이 기억납니다. 공강 시간에 도서관 가다가 만난 선배에게 '요새 1학년은 왜이리 공부를 열심히 하냐'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그냥 씁쓸했던 기억이 나네요. 대학교에서 처음 치른 '공학 수학'시험이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옆에 앉은 내가 느낄 정도로 주위 사람들은 컨닝을 했지만 언젠가 술자리를 같이 했었던 조교 형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였습니다. 최근에는 논문표절 문제가 이슈인데, 컨닝 같은 것은 누구나 하는 일상의 일이라 괜찮았던 것일까요. 2차례 학사 경고와 씁쓸한 기억만 남아있는 대학생활은 대우가 망한 것을 핑계 삼아 끝냈습니다.

IMF 시기여서 그런지 제 친구들은 유독 군대를 빨리 갔습니다. 대학에 대한 미련도 없었던 저는 순차적으로 군대를 가는 친구들의 술 상대를 수년간 했습니다. 한 놈 들어가고 그 다음 놈 들어가고, 또 다른 놈 들어가면, 한 놈 휴가 나오고. 그렇게 2년 정도 술을 마시니 간에 탈이 나서 정작 저는 공익근무요원으로 군복무를 했습니다.

제가 근무했던 곳은 건강보험공단의 지역 지사였습니다 .20명 남짓의 직원들이 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 때 건강보험공단에는 노조가 있었습니다. 공기업에 노조가 있다는 것도 의아했지만, 지역 노조, 직장 노조 2개의 조직이 다르다는 것이 더 놀라웠습니다. 각각의 노조 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매일 각각의 ‘노조 회의실’에서 낮잠도 자고, 차도 마시고, 회의도 했었는데 6시에 칼퇴근 하던 것이 가장 충격이었습니다. 11월부터인가는 동절기 적용으로 5시 퇴근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때의 경험 때문에 저에게 있어 노조와 공기업은 방만, 나태의 이미지로 자리잡았습니다.

그 즈음 치뤄진 대통령 선거에서 노무현을 뽑았습니다. 뚜렷한 정치관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공약을 본 것도 아닙니다. 당시에 인터넷 커뮤니티 여론이나 친구들 여론에 휩쓸려 그냥 뽑았습니다. 큰 고민은 없었고, 친구들과 어울리는 술자리에서 오히려 자랑스럽게 말했던 기억이 납니다.

공익근무를 마치고, 뚜렷한 목표 없이 수학 과외를 통해 돈을 벌고 살면서 2004년 말부터 2010년 7월까지 인터넷과 게임에 빠졌습니다. 하루 2~3시간 일하고 나머지 시간은 '히키코모리', '방구석 폐인'으로 지냈습니다. 수많은 밤을 원색적인 욕설이 오가는 '키보드 배틀'로 보내고, 각종 커뮤니티를 돌아 다니면서 수많은 분쟁과 사건 사고를 봤습니다. 그 당시의 경험들로 소위 '박제' 당할 위험도 있고, 인터넷에 쓴 글로 인해 현실에서 사건 사고가 일어날 위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2006년 이후 불특정 다수가 보는 사이트에 글을 쓰지 않고, 쇼핑몰 이외에는 가급적 회원가입도 안하고 있습니다.

이 때의 경험들로 다양한 사람들, 다양한 사고방식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됐고, 이를 통해 새로운 일이나 사람을 대할 때 편견 없이 대하는 편입니다. 이러한 깨달음들과는 별개로 현실 속의 저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과 패배감에 망가지고 있었습니다.

불안, 패배감 등으로 우울함이 절정이었던 2010년 7월 어느 금요일 고교동창 A와 술을 마셨습니다. 삼성전자에 다니던 A는 부지런하고 성실하고 친화력이 있는 사람이에요. A가 결혼 전 성남에 살 때에도, 결혼 후 수원에 살면서 성남 본가에 올 때에도 한달에 한 두 번은 밤 10시, 11시에 저의 집 앞에서 만나 술을 마셨습니다. 그날도 그렇게 술을 먹다가 A는 와이프가 처갓집에 갔다며 수원 자기집에 가서 한잔 더 하자 하길래 따라가서 새벽3시까지 먹다가 잠이 들었죠.

그런데 새벽 5시 A의 전화 알람이 시끄러워서 잠에서 깼습니다.알람을 끄고 다시 자다가 10시쯤 일어나 아침을 먹으면서 A에게 '꼭두새벽에 알람을 왜 맞춰?'라고 구박하듯이 물어봤어요.

A는 '평소에 출근 준비 하던 시간이야. 쏘리'라며 멋쩍게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망치로 머리를 맞은 것 같았습니다. 거짓말처럼 패배감, 우울함은 사라지고 '이 친구처럼 열심히 부지런히 사는 사람은 대기업 다니면서 잘 살 수 있구나' '나는 열심히 살아 보지도 않고 패배감에 젖었구나, 나도 다시 열심히 살아보자'라는 생각이 들며 A가 참 자랑스럽고 고마웠습니다.

그 길로 바로 취업 준비를 해서 2010년 9월 중소이불회사에 생산관리직으로 취직을 했습니다. 처음엔 생산관리였지만 1년차부터 영업관리 업무, 총무 업무 일부까지 맡으면서, 1년 반 후 주임을 거쳐 대리로 승진했습니다. 회사 생활은 한국통신에서 인터넷 설치 업무, 두산주류에서 전수조사 알바 관리 등을 짧게 나마 해봤기 때문에 큰 어려움은 없을 줄 알았는데 아주 큰 오산이었습니다. 입사하고 일을 하면서 겪었던 몇가지가 저를 정말 힘들게 했습니다.

첫번째는 관리자부터 말단 직원에 이르기까지 전부 오너를 욕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저에게는‘남의 돈 먹는게 쉬운 일이 아니다’란 마인드가 있었기 때문인지 또는 오랜 과외 경험 때문인지 몰라도 일자리를 주고 월급도 주는 사람을 욕하는 것이 선뜻 이해가 안됐습니다.

일을 해나가면서 이유를 알게 됐는데, 오너는 약간 조급할 뿐 상당히 합리적 사람이었고 욕을 먹을 정도의 나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중간 관리자들은 업무 조율이나 명확한 지시는 하지 않고 말단 직원처럼 수동적으로 일하려 들고, 말단 직원들도 자기일 이라고 생각하는 것만 하고 업무에 변화를 주면 적응을 못하는 (당시의 제 생각에는 일부러 안한다고 느껴질 정도로)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두번째는 무책임한 태도입니다. 자기들 일이 힘드니 저보고 노조를 만들어 오너와 관리자에게 대항해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많이 힘들어서 그러는가 보다'라고 생각해서 처음에는 그냥 웃으며 넘겼지만, 나중에는 저를 총알받이로 세우고 뒤에 숨으려는 무책임한 태도에 질려 단호하게 거절했습니다.

세번째는 부도덕한 행태입니다. 생산관리를 할 때 재고가 맞지 않아 수차례 창고 정리도 하고 전산 작업도 하며 고생했는데, 동료 몇몇의 집들이를 갔을 때 포장도 뜯지 않은 우리 제품이 장롱 뿐 아니라 한쪽 구석에 쌓여있는 것을 보고 재고가 맞지 않던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수동적이고 무책임하고 부도덕한 행태들을 보며 '가난한 자는 선, 부자는 악'이라는 생각도 버리게 되었고, 이런 환경에 적응해가는 제 모습이 싫어서 2013년 초 회사를 그만두었습니다.

2012 대선에서는 문재인을 뽑았습니다. 제가 보던 인터넷 여론과 회사사람들은 물론 제 친구들까지 모두 그랬으니까요. 지금 다시 생각하면 제 스스로도 웃긴 것이 그 회사 사람들의 모습이 싫어서 회사를 그만 뒀는데 투표는 아무 생각없이 그들처럼 뽑았네요.

회사를 그만두고 주식 전업 투자를 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지인의 권유로 주식 투자를 할거면 다양한 정보가 필요할 테니 사람들을 많이 만나면서 일할 수 있는 보험 영업을 시작했습니다. '기왕 시작한 거 제대로 해보자!'라는 마음 반, 대학을 못 마친 자격지심 반으로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고 명함 열심히 돌리고 다니기 시작한 2013년 말쯤 고등학교 친구 B에게 일간베스트와 정규재tv를 한번 보라는 소개를 받았습니다. 개업 약사인 B는 깐깐한 꼰대 스타일이라 쉽게 친해지기는 힘들지만 뭔가를 파면 전문가 수준으로 깊히 있게 파서 신뢰할 수 있는 친구입니다. B에 대한 신뢰감과 편견 없이 새로운 것을 대할 수 있다는 제 나름의 자신감에도 불구하고 일간베스트는 너무 거부감이 심했습니다.

그래서 여러 사람을 만나려면 온갖 것들을 견딜 수 있어야 된다는 마인드로, '그저 공부다'라는 마인드로 보기 시작했습니다. 모독, 비하, 욕설의 대상(이 부분은 대상이 박정희, 이명박, 박근혜에서 김대중, 노무현으로 대상만 바뀌었을 뿐 10년전부터 다른 사이트에서 충분히 많이 봤었습니다, 물론 저는 이런 것들이 옳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을 제쳐놓고 보기 시작하니 역사관, 경제관, 세계관 등에 대한 새로운 관점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때부터 자연스럽게 제가 알고 있던 것들에 대한 검증을 하기 시작했고, 이를 위해 정규재 tv의 다양한 영상들과 tv토론들을 챙겨보고 관련 자료들을 찾아보면서 공부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저는 대학시절 경험한 편법과 꼼수가 만연한 사회가 아닌 개개인이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는 공정한 법치국가를 원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공익 시절 경험한 방만한 공기업, 나태한 노조들에 의해 몰락한 세계 여러 사례들을 통해 자유 시장경제를 추구하는 작은 정부를 원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사회생활을 통해 우리사회 전반에 걸친 정치적 올바름, 언더 도그마 등의 군중심리에 함몰된 무책임, 무정견의 집단주의가 아닌 독립적인 주체로서 개인주의, 자유주의를 원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저에게 깨달음을 주었던 친구 A, B 를 비롯한 여러 친구들과 저의 가족이 있는 우리나라를 지키고 싶었습니다.

'혼자서 빠져나가면 그냥 도망 아닌가? 싸워보지도 않고 도망치지는 말자!'라는 개똥 철학이 문득 떠올랐고 이때부터 저의 본격적인 좌파탈출기를 시작했습니다. 제 생각. 의욕과는 다르게 초반부터 벽에 부딪쳤습니다. 공부한 이론, 논리, 통계 등으로 얘기를 나누고, 제 사고방식으로 대화를 하다 보면 돌아오는 대답은 '너 일베충이지?'였습니다.

특히. 저에게 삶을 되돌아보게 해주고 열심히 살아갈 동기를 준 친구 A가 소위 '강남좌파'가 되어 원색적인 비난,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십 몇 년 만에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아직도 그 때를 생각하면 가슴 아프네요. 다양한 분야에 대한 지식이 부족했고, 견문도 얕았고, 토론 스킬도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더욱 필사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했고, 견문을 넓히기 위해 해외 여행, 국내 여행도 많이 했습니다.

토론 스킬도 부족해서 정규재 선생님이나 여러 우파 논객 분들의 영상도 보면서 공부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쉽지는 않았어요. 대부분 술자리에서 술안주 삼아서 이야기를 진행하다 보니 명확하게 설명하기도 힘들고 쓸데없는 감정 싸움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또, 그냥 식사 자리나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면 초기부터 계속 나온 "너 일베충이지? 니가 일베충이라 그래"라는 대답만 들었습니다. 적어도 제 경우엔 이론, 논리, 통계 등으로 설득되는 사람이면 이미 좌파가 아니더라구요.

그래서 전 요새 이론, 논리, 통계는 알아서 찾아보라고 하고 될 수 있으면 가볍게 웃을 수 있는 농담이나 감성을 자극할 수 있는 화두를 던지려고 노력합니다.

영화를 좋아하는 친구에겐 어벤저스3 번역 논란을 예로 들어 "'이미 끝난 게임'이 아니라 '계획의 마지막 단계'인데 번역 한 줄로 영화의 색깔이 완전히 바꼈잖아. 니가 아는 현재 대한 민국 상황은 좋은데 왜 나는 안좋다고 생각할까?" 게임을 좋아하는 친구에겐 스타크래프트2를 예로 들어 "신경삭이 오염 되어 있네! jtbc라는 신경삭을 짤라야 돼!" 이런 식으로 언론의 문제점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고 여행을 좋아하는 친구에겐 "필리핀 마닐라 갔더니 5성 호텔을 기관총 들고 지키고 있고, 50미터 정도 나오니까 헐벗은 어린애들이 떼로 몰려다니면서 구걸하고 있더라. 예전에는 우리나라보다 잘살았다는데 마음이 안 좋더라." 이런 식으로 역사관, 세계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있습니다.

비교적 상대가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로 진행하니 듣는 상대도 상대적으로 예전보단 편하게 듣는 느낌입니다. 2016년 말부터 이어진 일련의 사태들과 이미 수 년 전부터 경고 하셨던 대기업의 엑소더스, GM사태 등등을 보며 잊고 있었던 좌절감, 알 수 없는 패배감 같은 감정을 느끼면서도 '내가 그릇된 가치관, 생각을 가진 것을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많은 위안을 얻고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 저는 그냥 도망이 아닌, 싸울 힘을 비축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베트남 진출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철이 없고, 공부해야 할 것도 많은데, 낯선 땅에서 새로운 시도까지 하려니 정답도 없고, 참 많이 두렵습니다. 그래도 영화 인터스텔라 대사처럼 "우리는 답을 찾겠죠. 늘 그랬듯이"

20년전 대학 입학 논술 이후에 장문의 글을 써본 것은 처음이라 너무 어색하고 어렵네요. 저에게 지식과 용기를 나눠 주신 정규재tv에 큰 감사의 마음을 담아 열심히 써봤습니다.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남택동(40·개인사업/우수상 수상자) want2happy@naver.com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7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