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내 1당·여당인 민주당, 의장·운영위에 법사위까지 한국당에 요구
김성태 "한국당, 운영위·법사위 다 준다고 한 적 없다…與 상식에 안맞는 주장"
與, 법사위 제도 개선 언급 나오지만 속내는 '한국당이 내놓으라'는 압박
한국당 19대 국회 1당·여당·과반의석에도 민주당에 법사위 넘긴 전례 있어
"법사위 상원 노릇한다"는 與, 19대 땐 북한인권법·테러방지법 법사위 파행으로 지연

여야 원내대표가 9일 20대 국회 후반기 원(院)구성 협상 '최종 합의'를 회동을 가졌지만, 빈손으로 마무리되고 원내수석부대표간 실무 협상으로 넘어갔다. 원내 제1당이자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 국회의장과 운영위원장을 이미 접수한 데 이어 법제사법위원장까지 가져가겠다는 입장을 갑자기 강변하자,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에서 '청와대 하명 의혹'까지 제기하며 강력히 반발하면서다.

원구성 협상이 막판 난항을 겪고 있는 것은 법사위원장 자리 때문이다. 범(汎)여권은 이른바 '개혁입법'을 명분으로 각종 좌편향·정부 관심법안 처리를 추진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왔는데, 한국당이 '입법 수문장' 격인 법사위원장을 가져가면 걸림돌이 된다고 간주하고 있다. 범여권 '개혁입법연대' 시도를 "입법 권력 독점"이라고 비판해 온 한국당은 과반 의석에 못 미치는 여당이 의장, 운영위, 법사위까지 접수하는 데 대해 "일당 독주 체제" 기도로 보고 있다.

국회 원내교섭단체 원내대표들이 9일 오전 국회에서 20대 국회 하반기 원구성을 위한 회동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평화와 정의' 장병완,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자유한국당 김성태, 바른미래당 김관영 원내대표.(사진=연합뉴스)
국회 원내교섭단체 원내대표들이 9일 오전 국회에서 20대 국회 하반기 원구성을 위한 회동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평화와 정의' 장병완,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자유한국당 김성태, 바른미래당 김관영 원내대표.(사진=연합뉴스)

김성태 한국당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는 이날 회동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집권당의 배려와 양보가 정리되지 않았다"고 전제, "민주당이 상식에 맞지 않는 주장을 하고 있다"면서 "한국당은 (20대 전반기에서 가져갔던) 운영위와 법사위를 다 준다고 한 적이 없다"고 못박았다.

전반기 국회 원구성 당시 한국당이 차지했던 운영위원장과 법사위원장을 모두 양보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전반기 원구성 협상 때는 20대 총선 결과 기준 민주당(123석)이 한국당(당시 새누리당, 122석)을 1석 앞서, 한국당은 결국 국회의장을 양보하는 대신 법사위원장을 내 준 바 있다.

운영위원장직의 경우 여당이 갖는다는 관례를 확실히 하면서 한국당이 보유했었다. 전반기 도중 지난해 민주당은 집권여당이 됐고, 올해 6.13 지방선거와 함께 치러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결과 130석을 확보해 113석의 한국당과 의석 숫자 차이를 더욱 벌렸다.

여당이자 원내 1당으로서 협상에 나선 민주당은 여세를 몰아 의장, 운영위원장, 법사위원장을 모두 접수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20대 전반기 국회 직전인 19대 하반기 국회에서는 새누리당이 원내 1당이자 여당에 과반 의석을 점유했음에도, 법사위원장은 민주당 이상민 의원에게 양보한 바 있다.

19대 하반기 국회 이상민 법사위원장은 지난 2016년 2월 11년 만에 여야 합의로 국회 본회의 통과를 앞둔 '북한인권법'은 물론, 시행 이후 최근 'IS 추종 시리아인 체포'로 첫 성과를 낸 '테러방지법' 본회의 상정에 반대해 독단적으로 법사위 전체회의 개의를 거부해 본회의 자체를 결렬시킨 전력이 있다.

법사위원장 권력을 합당한 입법 발목잡기에 한껏 활용했던 민주당은 20대 국회 들어서는 태도를 바꿔 줄곧 한국당 소속 권성동 법사위원장에 '강원랜드 의혹'을 빌미로 사퇴를 종용하는 등 흔들기에 나섰었다.

후반기 원구성 협상 국면에서는 "국회가 너무 비효율적으로 운영된다"며 법사위 권한·제도 자체를 문제삼는 듯 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여당에 위원장을 내놓으라'는 압박으로 일관하는 모양새다.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가 협상 내용 관련 지난 8일 "법사위원장은 한국당, 운영위원장은 민주당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고 언급하자, 민주당은 그 직후 곧장 "사실무근"이라며 "20대 국회 전반기의 전례와 같이 법사위는 집권여당인 민주당이 맡는 것이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박경미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법사위가 옥상옥으로 상원 아닌 상원 노릇을 하고 있다"면서 "개혁입법이 사사건건 법사위에서 발목 잡히는 등 비효율적인 상임위 운영의 극치를 보여준 한국당은 법사위를 맡을 자격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김성태 권한대행은 앞서 오전 원내대책회의에서 "민주당이 최소한의 견제 장치인 법사위마저 가지려는 것은 일방 독주체제를 갖추려는 탐욕적이고 비민주적인 발상"이라며 "개혁입법연대를 한다며 입법 권력마저 독점하려 한다"고 비난했다.

김 권한대행은 그러면서 "법사위를 놓고 민주당 내부의 갑론을박 때문이라면 모르겠지만 만약 청와대로부터 시작된 것이라면 묵과할 수 없는 심각한 사안"이라고 '청와대 개입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런 원내대책회의 발언이 당일 원내대표 회동 중 김 권한대행의 페이스북에 게재되면서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 등 참석자간 고성이 오가기도 했다.

홍영표 원내대표는 회동 결렬 직후 "(법사위원장 등) 국회 원구성 협상에 청와대가 무슨 관계가 있나"라며 의혹을 극력 부인했다. 

이날 오후 2시쯤 국회 운영위 회의실에서 원내수석간 협상이 재개됐으나, 40여분 만에 한국당 윤재옥 원내수석이 퇴장하는 등 별다른 진전이 없는 모양새다. 수석간 협상 도중 홍 원내대표가 김 권한대행과 별도 접촉도 가졌지만, 두 줄기의 협상 모두 법사위원장직을 놓고 이견을 좁히지 못해 빈손으로 끝났다.

한기호 기자 rlghdlfqjs@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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